[제13호] 오바마의 승리와 미국 풀뿌리 진보의 부활

이 글은 지난 4월 30일 참여사회연구소가 발간한 <시민과 세계> 13호에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 진보세력의 부활? : 재창조를 위한 긴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오바마 승리의 원동력이 된 미국의 풀부리 진보세력의 기나긴 부활의 과정과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이 글은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 · 진보세력의 부활? : 재창조를 위한 긴 여정

홍일표 _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1. 2008년 대선, 미국 민주당은 다시 백악관을 차지할 것인가

2008년 봄,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를 정하는 기나긴 장정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공화당은 “이단아(maverick)”라 불렸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일찌감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반면, 2008년 3월 말까지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피 말리는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나 분위기는 2008년 대선 승자가 민주당에서 나올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미군 전사자 숫자가 4000명에 달하고, 매달 100억 달러 넘는 엄청난 전비를 쏟아 붓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해법이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어느새 미국의 ‘경기침체’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로 최대 이슈가 전환되고 있다. 연일 치솟는 원유가격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미국 주택시장-신용회사-은행의 위기적 상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주식시장 폭락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미국 국민들의 ‘위기’와 ‘불안’ 그리고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고, 이는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결집되고 있다. 또  풍부한 국정경험과 인적 자원을 이유로 자신이야말로 ‘해법(solution)’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힐러리 클린턴과, 지금이야말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변화(change)’의 시점임을 호소하는 버락 오바마라고 하는 걸출한 두 후보의 존재는 민주당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2008년 대선 과정에서 확인되는 미국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 그동안 계속 떨어지던 투표율의 상승,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열기, 엄청난 선거자금 모금액 등은 뛰어난 두 후보자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던 것인가? 아니면, 극도의 “반反부시” 정서가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가? 과연 그것이 다인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 이후, 1994년 중간 선거 이후,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많았던 민주당과 자유주의․진보 세력이 2008년 현재 시점에 ‘부활’ 또는 ‘귀환’을 논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특히 이 글에서는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창립을 포함한 미국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동향과 그것의 함의를 중심으로 그 이유를 짚어 볼 것이다.

2.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오랜 혁명’
 
2004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미국 서점가에는 ‘공화당의 영구 지배’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담은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칼 로브를 필두로 하는 뛰어난 선거 전략가의 존재, 남부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n church)들의 강력한 동원력, 폭스 뉴스와 같은 케이블 텔레비전, 러쉬 림버우(Rush Limbaugh)와 같은 보수적 라디오 호스트들의 여론 조작과 장악,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적 싱크탱크들과 미국납세자연맹과 같은 보수적 사회운동조직들의 긴밀한 협력, 공화당 주도의 담론적 틀짜기, 케이 스트리트(K Street)의 갱들이라 불리는 거대로비집단들의 지지 등 ‘공화당 영구지배’ 가능성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었다(David Brock, 2004 ; Matthew Continetti, 2006 ; Donald Critchlow, 2007 ; Thomas Edsall, 2006 ; Paul Pierson and Theda Skocpol(eds.), 2007 ; Mark A. Smith, 2007). ‘강력’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공화당-보수 세력의 환원구조는 결코 쉽게 패배를 허락하지 않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그려졌다. 이러한 공화당 및 보수 세력에 의한 미국 지배의 연원은 현재까지 많은 보수 세력의 ‘우상’처럼 칭송되는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 승리부터라기보다 오히려 1964년 베리 골드워터(barry Golodwater)의 철저한 패배로부터 살피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지자들의 열광적 응원 속에서 선명한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던 베리 골드워터였지만, 그는 민주당 린든 존슨 후보에게 참담하게 패배하였다(Rick Perlstein, 2001). 그가 내걸었던 보수적 가치에 열광했던 미국의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이 패배한 원인으로 언론과 대학, 출판 문화계 등을 장악한 ‘자유주의 기득세력(liberal establishment)’의 존재를 지목하였다. 이들의 교체 없이 보수 세력의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미국의 보수 세력은 헤리티지재단(1973년)과 케이토연구소(1977년) 등 자신들의 지적 거점이 될 싱크탱크들을 새로이 설립하였고, 후버연구소나 미국기업연구소 등 기존 싱크탱크들의 보수적 성향도 더욱 강하게 가다듬었다. 이러한 노력은 보수적 가치의 확산을 지지하는 보수적 재단들의 적극적 지원을 통해 더욱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홍일표, 2007). 그리고 이들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자신들의 이념을 현실의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얻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보수 세력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 온 많은 가치들을 현실의 정책으로 전환시키려 하였으며, 헤리티지재단과 미국기업연구소 등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아이디어’와 ‘사람’의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James Allen Smith, 1991, David Ricci, 1993). 하지만 막강한 대통령 권력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것이 미국 의회이며, 레이건과 부시 전 대통령 12년 기간 동안 의회 다수당은 여전히 민주당이었기 때문에 공화당의 정책적 주도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Nelson W. Polsby, 2007).
그런 의미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된 1994년 중간 선거 결과는 1980년 레이건 집권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거 당시 원내 총무였던 뉴트 깅그리치 의원은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화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이들은 ‘가치’와 ‘정책’을 결합시켰고, 민주당을 “미국적 가치에 반(反)”하는 존재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호황과 개인 인기에 힘입어 1996년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분할정부는 계속되게 된다. 이후 클린턴 대통령의 잇따른 성추문과 그에 대한 ‘거짓말’을 이유로 특별검사 수사와 하원에서의 탄핵결의안 통과 등 공화당의 ‘파상공세’가 계속되었으나, 오히려 1998년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은 공화당으로부터 하원 의석을 일부 빼앗아 왔고,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의장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사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George W. Bush)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정치적 지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000년 대통령 선거는 칼 로브라는 걸출한 선거 전략가의 진두지휘 하에 남부 복음주의 교회와 보수적 풀뿌리 운동조직, 전국적 이익단체,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긴밀한 협력 하에서 전개되었고, 이러한 선거운동의 구조는 이후 2002년 중간선거, 2004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위력을 발휘하였다(Ryan Sager, 2006 ; 吉原欽一 編, 2005). 특히 9/11 테러 사건 이후 부시 대통령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높은 지지 열기에 힘입어 공화당은 2002년 중간선거 이후 백악관과 상하양원,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전 국가권력을 그들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Tom Hamburger and Peter Wallsten, 2006 ; Thomas Edsall, 2006). 특히 공화당은 자신에게 충성도가 높은 이들의 투표율을 최대한 높이는데 주력하는 “탈중간(Off Center)” 전략을 취하였고(Jacob Kacker and Paul Pierson, 2005), 이로써 미국은 정확하게 ‘붉은 색’(공화당)과 ‘푸른 색’(민주당)의 나라로 나뉘게 되었다는 분석들이 이어졌다(Nivolar, Pietro S. and David W.Brady(eds), 2006 ; Earl Black and Merle Black, 2007).

그러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처럼 보였던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의 위세는 2004년 대통령 선거 승리 이후 2년 만에 확연히 꺾이기 시작하였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상원에서도 실질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순간에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동안 민주당과 자유주의 세력을 “반가족적”, “반미국적”, “유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몰아 붙여 왔던 공화당이지만, 2008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들은 ‘이라크 전쟁’과 ‘경제 침체’, 그리고 ‘부시’라는 이슈를 넘어서지 못한 채 힘겨운 싸움을 벌여 나가고 있다. 
더욱이 공화당은 오바마 지지층을 중심으로 무섭게 결집하는 ‘젊은 세대 유권자’에 대한 매력을 거의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인구학적 변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민자’와 ‘젊은 세대’를 빼앗긴 공화당의 ‘추운 겨울’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공화당의 핵심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를 앞세워 국민적 지지를 모아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집을 가능케 하는 ‘돈’의 규모와 ‘조직’의 활력에 있어 공화당을 압도하고 있다.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 시작된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오랜 혁명’은 아직 ‘종언’을 고하진 않았으나 민주당과 자유주의․진보 세력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음은 분명하다.

3. 민주당과 자유주의.진보세력의 ‘기나긴 부활’

1994년 뉴트 깅그리치가 이끄는 하원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기 전까지 미국 민주당은 1930년부터 약 64년 간 하원을, 1954년부터 40년간 미국 상원을 장악해 왔다.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철저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만큼 강력한 위상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수십 년간 훨씬 더 많은 기간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그 기간 동안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분할 정부’의 구도가 계속되어 왔고, 1994년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잃은 후에도 2000년까지 백악관을 차지함으로써 여전히 ‘분할 정부’의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민주당이 전통적 지지층과 정당으로써의 활력을 잃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체질개선’을 서두르지 않게 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이는 민주당만이 아니라 의회를 통해 입법적 변화를 추구하였던 자유주의적․진보적 성향의 이익단체나 사회운동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정당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지휘를 받아 움직이기보다는, 특정 상임위원회 소속의 개별 의원, 또는 성향을 같이 하는 의원모임(caucus)과의 관계에 ‘적응’해 왔다. 실제로 미국 사회운동, 특히 진보적 사회운동 대부분은 자신들이 다루는 이슈가 현실의 정책으로 실현되는데 주력하였을 뿐,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와 ‘협력’에는 미숙하거나 무관심하였다. 그들은 항상 “내 이슈는 어떻게 되지?(What about my issues?)”라는 고민만 했다는 것이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37~39). 또한 싱크탱크들 역시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와 같은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경우 강력한 ‘종합형’이 많은 것과 달리, 진보적 싱크탱크들 대부분은 ‘단일이슈형’이거나 규모나 영향력이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유주의적․진보적 성향의 재단들 또한, 보수적 재단들의 후원전략과는 달리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단기 지원, 분산 지원의 후원 전략을 취함으로써 진보적 성격의 사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이 ‘단일이슈’에 집중하는데 일조하였다(홍일표, 2007).
이와 같이 ‘단일이슈형’ 사회운동과 싱크탱크의 확산은 의회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 상임위원회 중심의 의회 운영, 정당보다는 개별 의원이나 의원모임 중심의 입법 활동 등의 정치적 조건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튼튼해 보였던 이 구조는, 막상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잃는 순간, 민주당은 물론 자유주의적․진보적 사회운동과 싱크탱크의 입법적 영향력도 급격히 약화되는 다분히 ‘취약한’ 구조였음이 드러났다.

1) 민주적 리더십 평의회 : ‘민주당 내 주류화’와 ‘민주당의 주류화’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시작된 후 미국 사회의 ‘보수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는  강한 국방, 감세, 사회보장 축소와 같은 군사․경제적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낙태’나 ‘동성 결혼’ 문제 등 사회적 이슈들에서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공화당과 보수 세력들은 “자유주의자(liberals)”를 “가족을 무시하고, 애국심이 없으며, 생명을 우습게 하는 자기 멋대로의 존재”로 규정하면서 민주당과 자유주의 세력, 진보 세력을 공격하였다(Mark W. Smith, 2006). 이런 공세에 맞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전략을 취하고자 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기를 꺾는데 성공한 것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Stupid, it’s economy)”라고 소리치며 등장한 빌 클린턴과 <민주적 리더쉽 평의회(Democratic Leadership Council)>(이하 <평의회>)세력이었다.
마치 헤리티지재단 창립과 미국 보수세력 결집이 1964년 베리 골드워트의 패배를 계기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평의회>와 그것의 지적 거점인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 http://www.ppionline.org/)의 창립 또한 1972년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 198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월트 먼데일의 자유주의적․진보적 노선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화당과 보수 세력이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를 더욱 강고히 지키고자 하였던 것과 정반대로, 이들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노동자․서민 중시의 대중주의적(populist) 접근을 비판하며 기업 경쟁력, 자유무역, 개인 책임의 확대 등 공화당이 즐겨 사용하던 가치와 단어들을 오히려 강조하며 등장하였다. 
공화당 집권 12년의 종지부를 찍는데 성공한 빌 클린턴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선출되기 이전 2년간(1990년-1991년) <평의회> 의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George H.W. Bush)가 걸프전 승리라는 대외정책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 악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을 정확히 파고듦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러한 빌 클린턴의 당선을 돕고, <평의회>는 물론 클린턴 행정부 시기 민주당의 핵심적 정책들에 영향을 미쳤던 싱크탱크가 진보정책연구소였다. 진보정책연구소는 <평의회> 창립 당시 두 명의 스탭 가운데 한명이었던 윌 마샬(Will Marshall)에 의해 1989년 창립되었으며, 특히 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경제 정책 보고서(The New Economy Policy Report)’는 <평의회>는 물론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와 ‘자유무역’ 중시의 경제정책 기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1996년 <평의회>계열의 정치가들은 신민주당원 네트워크(New Democrat Network : NDN)이라 불리는 정치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PAC)를 만들었고, 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당선된 하원의원들을 중심으로 1997년 신민주당연합(The New Democrat Coalition : NDC)이 결성되었고 2000년에는 상원에 상원신민주당연합(The Senate New Democrat Coalition : SNDC)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로써 민주당의 연패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하나의 ‘지적 운동’으로써의 <평의회>는 민주당 내 대표적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久保文明, 2005 : 4~5).
그러나 <평의회>가 주도한 1990년대 민주당은 ‘경제 호황’이라는 성과 이외에 진보적 ‘가치’의 재구성이나 운동적 ‘활력’의 재창조에 있어선 그다지 성공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평의회>는 200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당 바깥으로부터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이거나 때로는 부정적이기조차 하였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141~143).

반면 1994년 공화당이 내걸었던 ‘미국과의 계약’은 ‘가치’와 ‘정책’을 적절히 연결시키고 그것을 ‘정치’로 전환시킨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이들은 개별 상임위원회와 의원 중심의 하원 공화당 운영 메커니즘을 훨씬 더 일괄된 중앙집중형으로 변화시켰다(吉原欽一 編, 2005 : 33). 또한 ‘아메리카와의 계약’이 선거용으로 사용되면서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충분히 반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보수적 기회의 사회’ 그룹은 ‘미국 가족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n Families)를 1995년 별도로 제시하며 정치적․사회적 결집을 새로이 시도하였다.
이처럼 ‘가치’의 재구성과 ‘활력’의 재창조를 중시한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노력은, 이후 2000년 부시 대통령의 승리, 2002년 상하 양원의 공화당 승리, 그리고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집권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선거승리의 튼튼한 뿌리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이 보여 준 ‘가치’와 ‘활력’을 거의 보여 주지 못하였고, 2000년대 이후 계속된 패배는 민주당을 ‘무력’한 정치정당으로 여겨지게 하였다. 민주당과 진보 세력의 변화는 결국, 민주당 주류로 자리 잡은 <평의회>와 민주당의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Matthew R.Kerbel (eds), 2006 ; 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James Carville & Paul Begala, 2006).

2) 민주적 리더십 평의회(DLC)의 한계와 민주당의 경계를 넘어 :
   “풀뿌리”(grassroot)와 “인터넷뿌리”(netroot)의 결합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 접한 웨스 보이드(Wes Boyd)와 조안 블레이즈(Joan Blades) 부부는, 공화당에 의해 주도되는 클린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이에 적극적 대응을 못해내고 있던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2008년 현재, 그들이 만든 <무브온>(MoneOn, http://www.moveon.org)은 미국 대중정치운동을 대표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성장해 있다. <무브온>이 현재 회원 숫자가 3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각종 선거 기간 중에 모금하는 선거자금, 광고자금 액수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지만, 1999년 탄핵반대운동을 시작할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인터넷 상의 ‘청원 운동’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무브온>의 활약상은 지금의 그것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과 운동을 정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였으며,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전쟁’이 아닌 ‘평화’를 통한 테러의 근절을 주창하며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이들은 더욱 분명하게 ‘반전 메시지’를 발신하였고 이들에게 호응하는 이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갔다. 인터넷은 <무브온>이 전국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 운동조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역번호(zip code)만 기입하면 자기 주변의 <무브온> 회원모임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공동행동 또한 쉽게 조직되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소액기부 액수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게 되면서 이들은 목소리는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방송광고를 통한 메시지 전달에 많은 관심을 두었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는 실제로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Byron York, 2005 : 17~47).
<무브온>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장 뚜렷한 반전 입장과 인터넷을 매개로 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한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하워드 딘 후보가 후보경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부시의 재집권을 막고 이라크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운동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2004년 선거에서 존 케리 후보가 패배하고 부시 제2기가 시작되자, <무브온>은 2004년 대선 결과가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이후 오히려 보다 강력한 인터넷 기반의 ‘풀뿌리 운동’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무브온>외에도 다양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2004년 대선 과정에서 하워드 딘의 돌풍은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의 충격과 가능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하워드 딘은 인터넷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만으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였고,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젊은 세대’들을 유세장과 투표장으로 끌어 들이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을 매개로 정보와 열정을 공유하였으며, 엄청난 액수의 선거자금이 인터넷을 통해 모금되었다(Joe Trippi, 2004). 비록 하워드 딘이 중간에서 경선을 포기하였지만, 부시의 재집권을 막는 것을 최우선의 정치적 과제로 설정하였던 수많은 네티즌들과 블로거들은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가능케 했던 조직적 돌파구가 소위 ‘527’ 조직의 활약이었다.
2002년 11월 중간선거 다음날부터 시행된 ‘초당파선거활동개혁법’(Bipartisan Campaign Refrom Actof 2002 ; BCRA)에 따라 정당전국위원회가 연성자금(soft money)을 쓰는 것이 금지되자 미국 국세청 코드 527에 해당하는 조직형식을 택한 단체들이 다양하게 만들어 졌고,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정치변화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특히 액트(America Coming Together, ACT)는 가장 대표적 527단체로써, 조지 소로스 등 일부 거액 기부자들의 자금지원 등에 힘입어 다른 어떤 조직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강한 활동력을 보여 주었다. 527단체들과 정당은 법률적으로 상호조율이 불가하도록 되어 있지만, 사실상 이들은 ‘조율’과 ‘조정’의 과정을 거치며 선거에 임했고 이는 이들 활동의 위력을 더욱 증폭시켰다(Craig Holman, 2006).
뿐만 아니라 전미서비스산업종사자노동조합(SEIU) 등이 주도한 노동운동의 선거 전략 또한 과거처럼 그저 선거자금만 민주당에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략 지역’을 설정하고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투표등록과 투표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의원을 당선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표 등록과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의 조직화와 활력 회복이라는 별도의 효과를 얻기도 하였던 것이다(篠田徹, 2005).
이러한 새로운 흐름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블로그의 힘이다.
미국에는 수많은 ‘정치 블로그’들이 존재하고, 이 가운데는 하루 방문자 수가 수십만인 데일리코스(Daily Kos,http://www.dailykos.com/)나, 보다 오랜 역사와 하워드 딘 캠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정치 블로거 제롬 암스트롱이 운영하는 마이 디디(My DD, http://mydd.com/) 등이 가장 대표적인 정치블로그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엄청난 양과 속도의 정보를 공유하였으며,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진실의 추적과 공유, 현재의 정치 쟁점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뜨거운 토론 등 기존의 정치교육과 정당조직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큰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급성장하였고 이들이 형성한 블로거 세계(Blogsophere)는 현실 세계와 “따로 또 같이” 번창하고 있다(Chris Bowers, 2006).

이처럼 최근 민주당이 보여 주고 있는 활력의 근저에는 “풀뿌리(grassroot)”와 결합된 “인터넷뿌리(netroot)”가 있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특히 이들은 지금까지 민주당과 진보 세력이 “단일 이슈”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져 움직여 왔던 “그 전통”을 변화시키고 있다. 무브온,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America), 블로거들, 전국힙합 정치컨퍼런스(the National HipHop Political Conference), 미국진보센터와 같은 싱크탱크 등 새롭게 등장한 주체들은 모두 “종합형”(multi-issue) 운동에 기반해 있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69). 특히 인터넷에 기반한 “넷루트(netroot)”들은 “풀뿌리 운동의 새로운 활동가들처럼, 더욱더 당파성이 강하고, ‘종합형’ 운동을 중시하며, 보다 넓은 운동의 기반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이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 스스로의 분석이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146).
이것은 민주당을 넘어서는 힘이자 움직임이다.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모두 민주당원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 주류들 가운데 일부는 이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우려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비록 하워드 딘이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되고, 대선 후보자들의 선거모금액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한 소액모금으로 이뤄지며, 웹사이트와 블로그, 텍스트 메시지와 유투브가 젊은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되는 등 “새로운 변화”의 위력은 대단하지만, 민주당과 자유주의 세력, 또는 진보세력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도, 그렇다고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이다. 지난 30여 년간 보수 세력이 잘 ‘조율’되고 ‘조정’된 운동을 통해 그 위력을 증폭시켰듯이, “무브온이나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와 같이, 넷루트와 풀뿌리들의 잘 조정(coordinated)된 노력을 통해 중앙은 물론 지역 수준의 민주당을 민주화시키고,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169).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2008년 현재 시점까지 민주당 바깥과 아래로부터의 활력과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 이 시기 동안, <평의회>나 진보정책연구소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의회>에 속하는 적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평의회>의 이름은 2006년 중간 선거에서 2008년 대선 기간까지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책연구소 역시 그것의 존재 자체가 망각될 정도로 미약한 활동만 보여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진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보수적’, ‘신자유주의적’, ‘신보수주의적’ 성격의 싱크탱크로 분류되는 등, 2000년대 이후 더욱 양극화(polarized)된 미국 정치의 지형 속에서 분명한 자기 위치를 찾는데 실패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이다. 이들은 진보정책연구소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과거 헤리티지재단이 내걸었던 것 방향과 마찬가지의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진보적’ 가치와 이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정책을 만들어 내며, 여기에 “풀뿌리”와 “인터넷뿌리”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변화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창조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표방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진보센터인 것이다(Byron York, 2005 ; Matt Bai, 2007).

4. ‘가치’와 ‘정책’, ‘변화’와 ‘활력’을 연결하는 지적 거점

1) 반(反/半) 주류의 도전과 실험 :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들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이자 민주당 전략가로 손꼽히는 죠지 레이코프(George Larkoff) 버클리대학교 교수는 미국 민주당과 진보세력은 공화당, 보수세력과의 틀짜기 싸움에서 패배했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보수 세력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함으로 인해,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 나아가 진보세력의 독특한 틀짜기와 이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언술의 발명을 강조한다(Geogre Lakoff, 2006).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지 섹시한 ‘8자 구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가치와 이념, 이를 정교히 가공한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싱크탱크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로 미국 보수 세력은 1970년대 이후 공화당의 경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정책과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싱크탱크들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이를 지원함으로써 1980년대 이후 의제와 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Donald T. Critchlow, 2007 : 104~122, 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114~132.). 반면 1990년대 민주당 계열의 대표적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진보정책연구소는 사회운동과의 소통구조를 강화하기보다 클린턴 행정부와 민주당 <평의회>와의 소통에 주력하였고,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진보적 싱크탱크들 역시 자신들이 처한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하였다. 특히 현재 부시 행정부의 경우,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다양한 제언들에 대해 거의 귀를 열지 않았고, 오직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와 같은 몇몇 소수의 보수적 싱크탱크들만이 정책형성에  구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영향력은 더욱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Eric Alterman, 2007 : 43~47).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와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Studies), 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 센터(Center for Budget and Policy Priorities), 경제 및 정책 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등의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전통적 전략을 취하였다. 이들은 평화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 예산감시운동 등 미국 사회의 주요 사회운동세력들에 대해 구체적 정책과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움직임으로써 동원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Mark A. Smith, 2007 : 86~93, 홍일표 : 2008b).
이들과 달리 보다 새로운 접근을 통해 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싱크탱크들도 눈에 띤다.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새로운 미국재단(The New America Foundation)이다. 이들은 1999년에 창립한 신생 싱크탱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기명칼럼 채택건수를 자랑할 정도로 뛰어난 언론 활용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구글(Google)의 현직 최고경영자인 에릭 슈미트(Eric Schumidt)를 재단 이사회의 이사장으로 선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인터넷과 정보혁명의 의미와 가능성을 가장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싱크탱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기존 싱크탱크들이 “비당파(non partisan)”를 선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스스로의 위치를 “탈당파(post partisan)”으로 규정함으로써 훨씬 더 자유로운 가치와 정책의 제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진보적 싱크탱크는 역시 “미국진보센터”라 할 것이다. 2003년에 창립한 미국진보센터는 막강한 자금력, 쟁쟁한 인물들, 뛰어난 인터넷 활용, 풀뿌리 조직들과의 다양한 연계, 확실한 민주당 지지 등을 내세우며 자칭타칭 “진보판/민주당판 헤리티지재단”으로 불리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존 포데스타의 주도로 설립된 미국진보센터는 비록 5년의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민주당 집권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주당 계열의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Byron York, 2005 ; Jerom Armstrong and Markos Moulitsas Zúniga, 2006 ; Matt Bai, 2007).

2)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을 건설하라
   :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http://www.americanprogress.org)는 지난 2003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존 포데스타(John Podesta)의 주도로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것을 주도한 인물이 존 포데스타라는 사실(吉原欽一, 2005 : 69~92),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포함한 민주당의 중심적 인물들이 큰 관심과 호응을 보냈다는 점, 조지 소로스,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 등 민주당 성향의 억만장자들의 거액 기부가 “씨앗 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점 등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이 풍부했기 때문이다(Byron York, 2005 : 189~219). 하지만 이들이 더욱 주목받았던 것은 그들 스스로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 될 것임을 분명히 천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진보센터를 창립한 존 포데스타는 자신들의 구상을 이렇게 설명한다(Matt Bai, 2003).

“매일매일 우파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브리핑이 발표되고, 공격적인 미디어 부서가 자유주의적 사상가들이 케이블 텔레비전에 출연하도록 도울 것이다. 신랄한 내용들로 가득한 웹사이트가 만들어질 것이고, 국내외 이슈들에 대해 강력한 입장들을 발표하는 정책 부서가 움직일 것이다. 내가 요즘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8자 구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차 범퍼에 ‘작은 정부(Less government)’, ‘낮은 세금(Lower taxes)’, ‘적은 복지(Less Welfare)’ 등의 구호를 붙이고 다닌다. 우리는 우리의 ‘8자 구호’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에겐 그것이 참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싱크탱크의 설립 목적은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아이디어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며, 한 세대 동안 미국의 정치적 대화를 지배해 온 보수적 싱크탱크의 ‘거울 이미지’를 재생산하기 위함이다. 배리 골드워터 이래 보수주의자들은 강력한 영향력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춘 싱크탱크들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그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사법부마저 보수주의 정당이 통제할 수 있게끔 하였다.” 

미국진보센터는 창립 5년만에 이미 그 규모(스탭 숫자 125명, 1년 예산 2,000만 달러 이상)와 영향력(언론 보도 빈도 전체 10위권) 등에서 이미 대부분의 다른 ‘진보적’ 싱크탱크들을 앞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주류 싱크탱크들조차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미국진보센터의 창립은 앞서 존 포데스타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듯, 진보 진영에도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깊은 성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Matt Bai, 2007 : 205~206). 앞서 여러 차례 강조하였듯, 미국의 진보적 사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단일이슈형’으로 쪼개져 성장해 온 반면, 보수 세력들의 경우 “가치”와 “정책”, “국내”와 “국제”를 모두 아우르는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들을 키워 왔다. 또한 이들은 이념을 같이 하는 보수적 성향의 ‘단일이슈형’ 싱크탱크나 사회운동, 그리고 각 지역 싱크탱크들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며 그 위력을 더욱 증대시켜 왔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적 사회운동, 싱크탱크들의 상황은 달랐다. 미국진보센터 켄 구드(Ken Gude) 연구원 역시 센터의 창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당은 1994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약 40 여 년간을 의회를 지배해 왔습니다. 1994년 의회를 잃고 난 이후에도 1990년대에는 백악관의 주인이 민주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2000년엔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이 2006년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갖고 있던 민주당으로서는 권력 외부의 자원이나 조직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의 결과는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튼튼한 하부구조가 없다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진보센터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을 한 것입니다. 진보진영에 이념적 좌표를 제시할, 그래서 우파의 헤리티지나 미국기업연구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진보적 조직을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헤리티지재단이나 케이토연구소와 같은 보수적 싱크탱크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튼튼한 조직이 필요하며, 재정후원 또한 단기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5년-10년 정도의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초기 자금 후원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Matt Bai, 2007). 이로 인해 미국진보센터는 매우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갖고 출발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돈을 모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안정적 재정기반과 탄탄한 인력기반 역시 미국진보센터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진보센터에는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렌스 코브(Lawrence Korb),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경제평의회 책임자였던 진 스펄링(Gene Sperling), 정치학자이자 《부상하는 민주당 다수》(The Emerging Democratic Majority)의 저자이기도 한 루이 텍세이라(Ruy Teixeira) 등 33명의 연구위원(fellow)과 전 민주당 원내대표 탐 대슐(Tom Daschle)이 특별 연구위원(distinguished senior fellow)으로 속해 있다. 이외에도 시니어 스탭으로 대표인 존 포데스타를 포함하여 각 프로젝트의 책임자들과 연구소 전체 업무를 책임지는 수석부대표급들 19명이 있고, 정책연구분야, 커뮤니케이션분야, 대외협력분야, 재원개발 부서 등을 통틀어 100명이 훨씬 넘는 연구원과 스탭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거대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미국진보센터의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16명이 배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별도로 15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진보센터가 대중들과의 소통을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진보센터가 비록 신생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이지만 다른 싱크탱크들에 비해 더욱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발달한 정치적 안테나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러한 엄청난 투자에 힘입은 바 크다(John Podesta and John Halpin, 2006). 이들은 마치 헤리티지재단이 “레이건 공항에서 의회 의사당”까지 가는 자동차 안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정책브리핑 자료를 만들어내는 혁신을 이뤄냈듯, 주장의 ‘본질’ 그 자체만큼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 즉 소통 전략(communication strategy)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싱크탱크인 것이다.
미국진보센터가 헤리티지재단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소통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 아니라 인턴쉽 프로그램을 중시하는데서도 확인된다. 센터의 인턴쉽 프로그램의 경우, 2006년 여름에만 모두 55명의 인턴들이 참여했는데 이 숫자는 다른 싱크탱크들의 전체 스텝 숫자보다도 많을 정도다. 이 인턴쉽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순히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함이 아니라 “차세대 젊은 진보적 지도자들을 기르는 것”이며, 이는 “캠퍼스 프로그래스”(http://www.campusprogress.org/)라는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을 센터가 별도로 운영하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 어떻게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과 “진보의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 노력은, 미국진보센터가 진보정책연구소가 아닌 헤리티지재단의 ‘거울 이미지’임을 분명히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진보센터는 1990년대 민주당의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진보정책연구소와 달리, “진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의 재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 사회운동과의 연계를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확대에 능동적이다. 젊은 대학생들을 “미래 세대의 지도자”로 키워 나가기 위한 별도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경륜을 자랑하는 전직 관료와 의원, 전문가들을 싱크탱크 연구원으로 포진시키고 있다. 억만장자의 거액 쾌척이 ‘씨앗 자금’이 되었지만, “넷루트”라 불리는 수많은 정치 블로거들과의 교류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금까지 진보적 싱크탱크와 사회운동이 ‘단일이슈’에 매몰되었던 한계를 넘어 ‘종합형’ 싱크탱크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민주당 바깥의 새로운 힘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는 공화당이라는 경계에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들이 발휘하는 ‘아이디어의 힘’은 공화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과 그 ‘바깥’을 연결시켜 주는 그 ‘사이’에 근거하고 있음을 미국진보센터는 꿰뚫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은 남부복음주의자들이나 전국총기협회가 튼튼히 일궜던 ‘풀뿌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넷루트(netroot)’들과도 어울려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지난 몇 년 간 민주당은 물론 미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은 주역들이었다. 미국진보센터는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진보판/민주당판 헤리티지재단’ 이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5. “조심하라, 워싱턴이여. 자유주의자들(the Liberals)이 오고 있다”

2008년 3월 16일, 워싱턴 포스트 2면에 실린 기사(‘Take Back America’ Conference Is a Change for Democrats to Highlight Progressive Politics)는 위 제목으로 시작하였다.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미국을 되돌리기>(Take Back America, http://www.ourfuture.org/tba-live)컨퍼런스는 <미국의 미래를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America’s Future)이 매년 개최해 오고 있는 미국 진보 세력들의 총결집 행사이다. 3일 간 100여개의 세미나와 각종 이벤트들이 진행되며, 2,000여명이 넘는 자유주의적․진보적 단체와 인물들이 모두 모여 토론과 집회를 이어 나간다. 이 행사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이 글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미국 자유주의․진보 세력의 현재 모습과 상황인식, 그리고 전망의 대강을 확인할 수 있다. 첫날 발표된 보고서들의 제목 ―<진보의 부상-2008 : 면모일신의 획기적 선거>(Progressive Rising-2008 : Sea-Change Election), <보수주의의 쇠퇴>(The Decline of Conservatism), <보수주의가 죽어가고 있다>(Conservatism is Dying)― 에서 알 수 있듯, 2008년 3월 현재 미국 자유주의․진보 세력들은 희망과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이들의 이런 ‘희망’과 ‘자신감’이 부시 대통령의 실정이라는 이유로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와 같은 걸출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존재로 인해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이 글을 통해 살펴보았다. 길게는 레이건 집권 후 28년, 짧게는 부시 집권 8년 동안 이들은 수없이 패배하였고 그보다 더 많이 도전하여 왔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거쳐 이들은 “조정”(coordination)이 갖는 중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각자 알아서 간다”(Go it alone)는 식의 운동은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당의 지도’ 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미국 보수 세력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실행해 왔듯, 운동과 정당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완전히 포섭되거나 종속되는 방식으로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운동과 정당, 운동과 운동, “풀뿌리”와 “넷루트”,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치’와 ‘정책’, 정당과 사회운동과 싱크탱크― 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조율’되고 ‘조정’될 수 있는가라는 사실을,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진보 세력은 오랜 시간의 “아픈 학습”의 과정을 거쳐 배워 온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상황은 새로운 단계로의 질적 전환을 요구받는 한국의 민주주의, 시민사회, 사회운동, 그리고 민간 싱크탱크 등 다양한 영역에 있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참여연대나 경실련과 같은 “종합형” 시민단체의 존재를 ‘후진적’인 것으로, 또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미국과 같이 ‘단일이슈형’ 운동과 조직”으로 ‘발전’해 가야한다고 훈계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동영역이나 조직의 경계를 넘어 함께 ‘연대’하고 ‘조정’하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운동의 전통이, 최소한 미국의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잊은 것은 아닌가? ‘이념’이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정책’을 논하는 것에 비해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1970년대 이후 ‘보수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왔던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이나 2000년대 이후 새롭게 ‘진보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어떻게 보이는가? 아마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더 쏟아져 나올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에서도 “보수주의의 쇠퇴”와 그것의 “죽음”을 논하는 행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때 “진보의 부활”을 자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얼마나 갖추고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시기 우리 운동과 정치에 대한 보다 냉철한 평가, 발 딛고 선 현재에 대한 객관적 분석,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전망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홍일표 (Hong, Il-Pyo), iphong1732@gmail.com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참여연대 연구팀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기로에 선 시민입법 : 한국 시민입법운동의 구조, 역사, 동학》,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사례를 통해 살펴 본 한국 시민입법운동의 동학>,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성정과정과 전략 : 이념, 사람, 조직을 강화하라>, <‘시민사회론의 한국적 변용’에 대한 연구사적 고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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