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10-04-01   3486

[칼럼] 밥, 사회의 선물인가 불평등의 독인가



밥, 사회의 선물인가 불평등의 독인가



무상급식이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무상급식 논란의 중심엔 ‘밥’이 있다. 밥은 단지 먹을거리가 아니다. 일찍이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은 밥을 하느님의 은혜와 선물이라 했고, 밥으로 사랑을 나누는 삶을 실천하자고 했다. 사회학자로서 나는 다석의 철학에서 밥이 사회관계의 결정물임을 배웠다. 밥이 사회적 연대의 산물일 때, 밥은 모든 이웃의 사랑이고 선물이다. 밥이 단지 각인이 구매한 상품일 때, 우리가 먹는 밥의 양과 질은 계급적 불평등과 이윤논리를 반영한다. 우리는 밥에서 불평등과 자연착취의 독을 씻어내고, 사회와 자연의 선물로 밥상을 다시 차리는 큰 변화를 필요로 한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복합적 비전


지금 논의되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론은 교육, 복지, 인권, 식품안전, 국내농업 보호 등 굵직한 생활정치 이슈들을 응축한 복합적 비전이다. 그것은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인한 낙인을 해소하고 동심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토건산업과 전시성 사업에 몰입하는 국가재정구조를 개혁하여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한다. 지자체와 지역 농업의 연계를 강화하여 위탁급식의 안전성 문제와 낭비를 해결하려 한다. 물론 나는 무상급식론이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나눔과 살림의 비전을 가로막는 것은 정책적 장애가 아니라 원리적 저항이다.


첫째, 무상급식을 사회주의라 비난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진짜 쟁점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가 아니라, 공적 원리와 사적 원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다. 대한민국 헌법은 무상 의무교육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노인·청소년 복지향상 등 많은 영역에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공적 행위는 무상이다. 또한 우리는 이미 차도, 인도, 공원, 도서관 등 수많은 설비를 무상으로 이용하고 있다. ‘무상은 곧 사회주의’라는 도식은 국가의 공적 책임, 사회의 공공적 차원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소유적 개인주의다. 만약 우리가 사회에서 받은 것도 사회에 줄 것도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회가 아니다.


둘째, 무상급식론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주장이 있다. 예산상 불가능한데 민심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 등에 수십조원을 들이면서 아이들 먹일 2조~3조원의 단계적 투입은 불가능한가? 법인세, 종부세 인하로 지방재정을 파탄내고 복지, 교육재정을 몇 조원씩 감축시키며 재정 부족을 말하는가? 문제는 무상급식의 현실성 여부가 아니라, 국가재정 분배의 원칙과 가치다. 세금에서 나온 국가재정을 기업이윤 창출에만 쏟을 것이냐,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위해 할당하느냐다.


우리사회 철학·가치에 대한 잣대


셋째, 공공 급식의 질에 대한 우려가 있다. 부담이 되더라도 내 돈 들여 자식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게 부모 심정이다. 하지만 학교와 위탁업체의 연계로 이뤄지는 현행 급식체제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은 오해다. 나아가 여기엔 더 깊은 도덕적 문제가 놓여 있다. 중산층 부모들이 내 자식 급식을 돌보는 동안, 무상급식을 받는 저소득층 자녀들의 열악한 현실을 우리 사회는 외면해왔다. ‘건빵 도시락’ ‘단무지 도시락’ ‘얼음장 도시락’ 사건을 기억하자. 우리는 잠깐의 값싼 연민으로 가슴 아파 하고 곧 잊지 않았는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아이 급식의 그 ‘우리’와 ‘우리 아이’는 더 넓은 사회를 품지 못한다.


무상급식 논쟁은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 도덕적 깊이에 대해 큰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불가의 오관게송(五觀偈頌)에는 ‘이 음식이 온 곳과 그 공덕을 헤아리는’ 대목이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 상품이 온 곳과 그 불평등 메커니즘’을 해부했다. 우리 아이들이 먹을 밥은 어디서 온 것이어야 할 것인가.

신진욱|중앙대 교수·사회학

* 이 글은 경향신문 4월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신진욱 교수는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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