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세계 17호] ‘진보적 애국주의’ 논쟁 다시 점화

“민주 공화국만으론 국가 모순 해결 못해”
“보편 가치 결합하면 자본주의 제어 가능”
 
 
     왼쪽부터 서동진, 장은주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도 ‘애국주의’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진보적 애국주의’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지난번 <한겨레> 지면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진보적 애국주의 자체의 성격과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마르크스주의가 개입해 국가를 매개로 한 정치적 기획 자체의 모순을 지적했다.

서동진, 국가틀보다 사회에 주목해야
장은주, 좌파적 순혈주의론 해결못해


최근 나온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여름호는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교수의 ‘과연 공화국만으로 충분한가 : 애국주의 논쟁을 되짚어봐야 할 이유’와 진보적 애국주의를 주창했던 장은주 영산대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와 민주적 공화주의 : 비판과 문제제기에 대한 응답’ 등 두 편의 글을 나란히 실었다. 서 교수가 지난해 말 지상논쟁과 별도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었던 장은주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글을 다시 가다듬어 싣고, 장 교수가 이를 포함한 진보적 애국주의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이번 논쟁에 붙일 수 있는 소제목은 ‘공화국만으로 충분한가’이다. ‘민주공화국’을 명시한 헌법을 내세워 진보적 애국주의를 주장한 장은주 교수는 “애국주의는 특수주의적이지만, 인권을 비롯한 보편적 가치와 결합하는 한 민주주의를 추진하고 확장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공화국의 이상만으로는 보편주의적인 국가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으며, 이것을 간과하고 국가를 새로운 진보 정치를 기획하는 마당으로 삼은 것이 진보적 애국주의의 문제라고 비판한다.


민족 또는 민족을 통해 구성되는 국가라는 공동체는 사람들을 직접적인 삶의 세계로부터 떼어놓고 ‘개인화된 개인’을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로서 이미 보편주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 일본인·프랑스인과는 다른 공동체에 속한다는 측면에서 특수주의적이지만, 계급·성별과 같은 직접적인 삶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와 ‘국적’으로 규정되는 개인이 된다는 점은 보편주의적이란 것이다.
 
서 교수의 이런 주장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이론에 주로 기대고 있다. 발리바르는 근대 국가가 보편적 인권 및 시민권을 확대해왔지만, 다른 한편 ‘국민’이라는 특권적 공동체를 만들어 그 권리를 한정했던 점에 주목한다. 근대 국가는 자본주의와 한 몸인데,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계급투쟁 및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동자·농민이 되기 이전에 시민적 권리를 줘서 국민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자본주의적 보편성과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보편성을 함께 갖고 있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 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 착취와 불평등을 고발하고 거부하기 위해 더 많은 권리나 더 좋은 법에 호소해야 하나, 국가는 그럴수록 효과적인 정치적 공동체로서 구실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만약 진보적 애국주의가 말하듯 “국가가 정치적 공동체로서 보편성을 담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와의 대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장은주 교수는 이런 지적에 대해 “민주적 헌정주의에 대한 좌파주의적 회의”라고 규정하고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급진성을 좌파적 순혈주의의 추구라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완고한 지적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진보적 애국주의의 배경적 이념을 ‘민주적 공화주의’라고 이름붙이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칙이 지닌 참된 해방적 잠재력을 신뢰하는 근본·급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그는 서 교수가 지적한 보편주의적 국가의 모순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며, “바로 그 내적 모순이 끊임없이 국가 안에서 실질적 보편화에 대한 강력한 내적 동학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했다. 곧 인권과 같이 추상적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원칙이 보편적으로 입법화되는 것 자체가 현실적 실천이 이뤄질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제어·규제할 수 있다”며 ‘공화국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반박한다.


두 사람의 시각 차이가 워낙 커 앞으로 논쟁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공화국만으론 안 된다”는 서 교수의 비판은 진보적 애국주의뿐 아니라 최근 관심이 모였던 공화주의 등 정치철학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또다른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는 “‘권리의 정치’를 기반으로 삼다보니 자꾸 대안을 찾아 국가나 헌법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인다”며 “그러다보니 착취와 불평등이 실제로 드러나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사회’가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곧 시민적 권리에 기대느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노동문제도 노동 현장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관에 민원을 넣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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