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01] ‘역사 판단’ 말하는 박근혜, ‘심판의 역사’ 두려워하라

[시민정치시평 101]

 
‘역사 판단’ 말하는 박근혜, ‘심판의 역사’ 두려워하라
: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하여

조흥식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서울대 교수

세월은 참 빠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프레시안>에 고정란으로 글을 기고한 지가 벌써 101호 째를 맞이했다. 그 글들은 역사의 한 축으로 앞으로도 고스란히 이어갈 것이다. 이미 100호까지는 과거라 할 수 있지만 각 글들이 던져 준 의미는 현재에도 그 맥이 흐르고 있다. 과거는 그 의미를 현재에 비추어볼 때 제대로 해석할 수 있고, 현재는 과거에 비추어볼 때야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막강한 대선후보인 여당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한 회의적인 얘기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아버지 대통령 시절에 함께 한 정치적 행적에 대해 물음을 받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 것이다. 비록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딸은 독립된 인격체라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적 처우를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 시절에 함께 한 행위에 대한 심판은 결코 과거사의 일만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느 정도 산업화에 의한 경제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빛’ – 아직 역사적 심판이 명확히 내려진 것은 아니다 – 과,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이라는 ‘어둠’을 동시에 남겨 놓았으므로 박근혜 후보로서는 그 공과를 분명히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대선 후보가 누구든 모든 후보자에게 유권자인 국민들은 후보자의 역사관에 대해 분명히 물어 볼 권리가 있으며, 후보는 유권자에게 반드시 답해야 할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2012년 올해 들어와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면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에 대해서도,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을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는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11일 오전에도 국회 본회의장 입장에 앞서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대법원 판결’ 외에 ‘조직원 증언’을 첨가하여 재심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새누리당 조윤선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서 1975년에 유죄판결이 있었고, 2007년 재심을 통해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며 “새누리당은 이 사건과 관련된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하지만, 재심판결이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존중한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박후보는 역사의 판단 운운하면서 독재와 쿠데타의 역사를 옹호하는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과 표현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잘못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이 보이지 않아 아직 과거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단계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함께 사는 공동체 정의는 제쳐 놓더라도 경제적 성과가 좋으면 다 좋지 않으냐 하는 독단적 성과주의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한 가지 성과만 내면 좋다는 식의 이러한 역사관은 초헌법적인 헌정질서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정해진 성과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용인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파괴도, 독재도, 불법사찰도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성과에 의해 용납되기 때문이다. 법치국가를 뒤흔드는 초헌법적인 발상으로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흔히 역사의 판단이니 심판이니 하는 말은 ‘심판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하며,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할 때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 우리가 줄기차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것도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반인권과 정의에 대한 심판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역사의 참된 가치는 과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현재성’을 통해, ‘현재의 미래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고, 심판의 역사가 이뤄져야 비로소 인간은 역사 앞에 겸허해지며, 사회를 제대로 작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게 하는가. ‘온고지신’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의 해답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E. H. 카는 일찍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올해 말 대선은 어느 때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선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회는 분명 아니지만 심판의 역사를 만드는 계기는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앞에는 양극화 해소, 실업문제 해결, 부동산문제 해결, 반값등록금 실시, 자살문제 해결, 범죄와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한일관계 등 당장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행복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유신 때처럼 민주주의나 인권을 파괴하면서까지 초헌법적으로 해 나갈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의 역사관은 대단히 중요하며, ‘역사의 판단’은 ‘심판의 역사’가 따를 때 비로소 역사의 중후한 무게가 빛을 발함은 분명한 진리이다.

누구든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대통령이 되자고 한다면 ‘심판의 역사’ 앞에 두려워하고 진실해야 하며, 단순히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도피적이고 회피적인 자세 대신에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준엄한 판단은 유권자의 몫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심판의 역사’ 앞에 설 날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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