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10.29이태원참사 2024-01-24   124

[편지] 이태원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지 말아주세요

참사 발생 438일 만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당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이었지만, 여당은 끝내 표결을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의 뜻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특별법 공포를 애타게 기다리는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시민들에게, 하늘로 간 자녀에게 전하는 말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기자말]

▲ 광화문 사거리에서 유가족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글쓴이 : 김상민, 희생자 김연희의 아빠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던 모습이 항상 대견했고 현재의 삶에 자부심을 지닌 듬직한 아이였다. 그러던 딸의 인생이 참사로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다. 참사 직후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비정함에 분노가 쌓여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협의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끔찍한 참사, 충분히 예견했고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참혹한 참사로 인해,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하고도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날부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밝혀내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특별법 논의를 방해하고 진상조사를 막으려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비정한 현실 속에서 정부와 여당에게 크나큰 실망과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가 세계적인 참혹한 참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4개국에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있고, 전세계가 한국의 사후 처리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며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를 설립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적절한 권리보장과 추모를 제공하고, 재발 방지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야당의 단독 표결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시민들과 여당 권은희 의원 그리고, 야당 의원들의 지지와 노력 덕분입니다. 우리는 이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이제 특별법의 운명은 윤석열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대통령은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염원은 물거품이 되고, 참사의 진상과 책임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잔인한 처사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공정과 상식이 사라지고,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정쟁과 갈등을 스스로 조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가오는 서울의 봄은 과거의 불행했던 서울의 봄이 아니고, 공정과 상식이 살아있는 희망찬 새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님,
우리는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헤아려 주시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신상필벌이라는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하여 특별법을 즉각 공포해 주세요.

우리는 당신이 특별법을 공포하고,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출범시키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재난을 예방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안전한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한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에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글쓴이 : 박지연, 희생자 조예진의 엄마

참사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예진이도 하늘의 별이 됐다.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 호강시켜주겠다던 착한 딸이었다.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 분명 긴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참사 발생 1년 넘어 본회의에 올라온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당 요구로 국회에서 수정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많이 답답했다. 그래서 더욱 거부권만큼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해 펜을 들었다.

3일의 산고 끝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랬던 내 새끼가 건강하게 자라 자기 꿈과 목표를 향해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다, 너무도 허무하게 차가운 길바닥에서 생명의 빛이 꺼져버렸다는 사실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꺼져버린 내 새끼의 생명의 빛을 제 가슴 속에 품고 죽는 그날까지 남은 인생을 절규와 통탄, 분노 그리고 피 맺힌 한을 가지고 살아야겠지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회피와 무시를 일삼는 정부를 향해 저격수의 마음가짐으로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실물없는 총탄을 날리려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더이상 당신들의 정치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 득과 실이 되는지 재지 마십시오. 다만 유가족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것을 꼭 인식하고 당신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해주십시오.

국가를 위한 국민인가?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깊은 상념에 젖어 듭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문제에 거부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요. 기계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 있고, 머리가 달려 있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고, 이번 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 간절하게 빌어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편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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