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들과 함께 서명을] 여러분 광장은 공원이 아닙니다!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광장을 찾기 위한 42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인턴 8명은 2009년의 뜨거운 여름을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과 함께 했다. 경찰차벽으로 둘러쳐진 광장에 경악한 우리들은 광장을 되찾기 위한 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광장을 열어달라고 소리쳤고, 시민들에게 격한 호소를 했다. 수많은 인파속에서 시민들을 일일이 만나 광장을 열기 위한 소중한 서명을 받았다. 때론 무심히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꾸지람에 억울해 하기도,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계속 광장을 열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여러분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진정한 광장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오리엔테이션 첫날, 20여명의 인턴들은 이름도 낯선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팀에 참여할 지원자 모집 소식을 들었다. 주저주저. 아직은 낯선 ‘참여연대’ 인턴, 그런데 더 낯선 ‘조례개정팀’ 지원이라니.

게다가 뜨거운 여름에 거리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고생할 수도 있다는 친절한(?) 멘트까지! 그러나 내 손은 이미 지원서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왜였을까? 막힌 광장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지원하는 친구들이 맘에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울광장’과 함께한 42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광장은 왜 열려야 하지? 데모하려고?


급식조례운동, 학자금이자지원조례운동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쉽게 와 닿는 내용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시행하면 누구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은 어떤가? 사실 우리들도 왜 광장이 열려야 하는지 몇 일간 고민을 했다.

도대체 광장은 왜 열려 있어야 할까? 좀 더 직접적으로, 왜 누구든지 집회를 열고 자기의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하는 것일까? 바로 이점이 서명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힘들게 한 점이기도 하다. 시민들에게 이 운동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맞습니다. 데모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의 핵심은 서울광장에서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무엇이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은 이 말에 되묻곤 했다.

“그냥 시민들이 조용하게 휴식하는 장소로 놔두면 안 되나? 굳이 여기서 데모를 해야 하나?”
 
그러나, 민주주의는 결코 평화로운 정치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들의 의견이 묵살되고 일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독재체제가 겉으로는 더욱 일치되고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그에 반해 민주주의는 누구든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받는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합의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을 한다. 100분 토론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거, 절대 조용하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은 직접민주주의로 시민들 모두가 정치를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국회의원, 시의원, 대통령 등이 대신하는 대의제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시민의 의견에 반하는 정치를 할 때는 어찌해야 할까? 헌법은 이러한 간접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보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헌법 제 21조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제는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은 누구든지 모여서 자신의 의견을 말 할 권리를 가진다.




(사진: 오마이뉴스 남소연기자)


“여러분 광장은 공원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광장은 이러한 집회를 가능케 하는 소통의 장이었다. 이것이 광장이 가진 본래적인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항쟁, 6.10민주항쟁 모두 광장에서 이루어진 민주주의를 위한 과정이 아닌가?
 
서울광장의 잔디? 물론 보기에는 아름답다. 하지만 애초에 서울광장의 디자인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 서울시장(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를 잔디광장으로 바꾸고 이제는 잔디보호가 구실이 되어 시민들의 출입에서부터 합법적인 집회까지 막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은 그놈의 잔디 덕분에 서울광장을 공원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광장은 공원이 아니다. 광장이 휴식의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지만 그 본래적 기능은 언제나 소통의 장이어야 한다.


헌법<법률<명령<조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당시 서울광장은 경찰차벽으로 막혔었다. 공권력에 의해 언제든 광장이 닫힐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였다. 이유는 서울광장 사용에 관한 조례에 의해 사용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의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조례에 근거한 합법적 공권력 행사라고 그들은 말한다.

자 그럼 과연 ‘조례’ 란 무엇인가? 법에도 순위가 있다. 헌법이라는 최상위 법규범을 기점으로 해서 법률, 명령, 그 다음이 조례다. 그런데 아까 서울시장이 무엇을 가졌다고 했던가? 집회 허가권? 다시, 헌법 21조로 돌아가보자. 대한민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집회 허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즉, 헌법의 위임을 받은 다른 법률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신고만으로 집회를 열수 있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당돌한 조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 조례는 명백히 잘못된 조례이다.



“이래서 우리가 광장을 열자고 외치는 겁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무관심한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 욕을 하는 사람들. 이 모두에게 광장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그들과의 만남은 너무나 짧았다. 아니 그러기엔 우리의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받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광장을 열자고 소리치며 그 본질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상황들. 보수언론이 덧씌워 놓은 집회에 대한 폭력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큰 장벽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광장을 열자고 외칠 때 반대했던 시민들도 스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진정 믿는다.


(참여연대 인턴 4기 기장 이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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