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공계 위기’ 해결하려면…

최근 우리 사회에 ‘이공계 위기’ 담론이 아주 무성하다. 정부에서도 이공계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서 다양한 사기 진작 방안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는 보도도 들려온다.

과연 이공계 위기는 실재하는가?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이공계 위기란 ‘돈되는’ 분야(경영대 의대 약대 등)로 학생들이 집중되는 데서 나타나는 보다 거시적 현상의 일부라고 본다. 따라서 ‘위기’는 이공계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문과 쪽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기피와 집중 현상이 전개되어 왔다. 사실 문과 졸업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은 최근 이공계 졸업생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현재 위기는 분명히 존재하되 그 위기의 본질은 이공계 기피가 아니라 모두 돈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경박한 시장숭배적 행태,즉 학문 및 교육의 시장화 자본화와 그로 인한 기초학문의 황폐화라고 본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대책도 문제가 많다.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이공계에 더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과학기술자들이 더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사기 진작 방안(주로 물질적 보상의 제고)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이 과학기술자는 다른 직종 혹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국가적 공헌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누가 더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지,과연 과학기술자들이 전반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과학기술자만의 사기 진작이 아니라 자연과학,공학 및 인문사회과학 중에서 현재의 시장주의적 학문 및 교육풍토에서 소외받고 있는 모든 기초분야,‘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균형감각 있는 사기 진작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공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와 대학에 더욱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는 시장주의적 광풍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학문과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내부에서 찾으려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과학기술자들 스스로가 내부에서부터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높일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도구화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과학기술이 사회에 중요하다는 점만을 되풀이하여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 과학기술이 와 닿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인식도 그만큼 높아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인문사회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기본 원칙이다.

이 글은 국민일보 12월 23일자 에 실린 글입니다.

이영희 교수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가톨릭대 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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