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건설 중단’ 합의까지 ‘시민 16인’의 3박4일

[현장] 시스템보다 한걸음 앞선 이 시대 ‘시민의 힘’

“원자력 발전을 신재생 에너지로 바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천연가스 등을 최대한 활용해 원자력 발전을 점진적으로 대체하면서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원자력 발전이냐, 신재생 에너지냐 이런 식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안 됩니다.”

“그 정도는 이미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 믹스(energy mix)’ 얘기가 나온 거 아닙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신재생 에너지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당장 늘어날 에너지 수요를 신재생 에너지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대안은 원자력 에너지뿐입니다.”

“한 가지 묻고 싶네요. 30~50년 뒤에 그 성과가 나타나는 또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확신도 없는 핵융합 발전에 대해서는 왜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요? 신재생 에너지를 정부가 방치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시민 합의회의' 둘째날인 9일에는 시민패널과 전문가패널이 같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소장 김동광)가 주최한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 합의회의’의 결과가 화제다. 보통 시민들 16명이 감히 30여년 이상 지속돼 온 정부의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No’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3개월에 걸친 교육과 토론을 마치고 낸 <시민 보고서>에서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대안을 모색할 것”을 정부에게 주문했다. 이들의 이런 권고에 대해 정부관계자등 많은 ‘전문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력정책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 보통 시민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평범한 사람들이 에너지 문제에 관심 가지기까지…

“저는 그냥 지방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우리 직장이 하반기에는 좀 한가해요. 그런데 자주 보는 <프레시안>에 시민패널 광고가 떴더군요. 호기심에 한번 지원해봤죠.”

직업ㆍ나이ㆍ지역이 제 각각인 16명의 시민들은 처음에는 다들 ‘호기심’에 시민패널을 지원했다.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호오가 있기는 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전기를 쓰면서도 전력정책은 그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후, 처음 만났을 때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후회가 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전력정책과 같은 어렵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공통의 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기로 했으니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 모임에서 시민패널들에게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 환경단체에서 제공한 많은 분량의 자료들이 주어졌다. 생각을 가다듬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최종결단은 본인 몫이었다.

▲ 전문가패널에게 '송곳'같은 질문을 던진 시민패널 김선혜 씨. 김선혜 씨는 가정 주부다

“받아온 자료도 읽고, 틈틈이 인터넷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반핵국민행동’이나 ‘에너지대안센터’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다들 그렇겠지만 한수원 홈페이지도 처음 들어가 봤고요.”

그렇게 원자력 발전과 전력정책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은 각자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애초 원자력에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원자력이 우리나라 전력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서 새삼 그 중요성을 알게 됐다. 원자력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결코 ‘꿈같은 얘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사실 합의회의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전기가 왜 중요한지, 에너지 문제가 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어요. 원자력도 막연하게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원자력의 진짜 문제는 안전성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라는 내 나름의 시각을 갖게 됐지요.”

3박4일, 숨 가빴던 ‘합의의 현장’

“물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는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시민적 상식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받쳐주는 중요한 계기는 전문가들이 전달하는 정보나 내가 공부했던 지식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과의 토론 과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입장’이라는 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혼자 알아가는 과정이 전부가 아니었다. 시민패널들이 ‘시민 합의회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기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보통 사람들과의 토론이었다. 그들은 2번의 예비모임과 3박4일간의 본 모임을 통해 자기가 듣고, 본 것을 끊임없이 다른 시민패널과 토론했다.

“지금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을 요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긴장감이 흘렀어요. 우리가 결정한 대로 정부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인 목소리를 내는 거니까요. 치열한 찬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경제 성장과 환경에 대한 고려, 기존 전력정책에 대한 평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안 등 많은 것들이 토론됐다. 많은 시간 토론을 진행한 후에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예상해 참가한 사람의 4분의 3 즉 12명이 찬성하면 합의를 한 것으로 간주해 둔 터였다. ①기존 정부의 원자력 정책 유지, ②원전 건설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 ③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는 안, 이렇게 3가지 안을 놓고 무기명 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②번 5표, ③번 11표. 합의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것은 시민패널들에게도 고민되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원자씨

“처음에는 ②번을 찍었어요. 그런데 다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③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단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한 후, 좀 절박한 심정으로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수요관리로의 방향 전환 등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규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부족분은 천연가스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싶었고요.”

시민패널들 사이에 좀더 토론을 해서 합의를 이끌어보자는 의견이 새로 제시됐다. 갑론을박 끝에 무기명 투표를 한 번 더 했다. 결과는 ②번 4표, ③번 12표, 긴 토론 끝에 결국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16명의 시민패널들은 각각 팀을 짜 <시민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결국 <시민 보고서> 작성 작업은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전문가, 시민들과 눈높이 맞추지 않아”

“사실 처음에는 우리들끼리 과연 ‘합의’가 가능하겠는가, 이런 게 걱정이었는데, 지금 찬반으로 나뉜 전문가들의 토론을 듣고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 더 ‘합의’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시민 합의회의’ 본 회의 이틀째 행사가 진행된 지난 9일 오후, 전문가패널과 4시간 동안 토론을 진행하면서 한 시민패널이 던진 따끔한 지적이다. 그의 지적대로 ‘시민 합의회의’ 과정에서 전력정책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은 ‘심각한 장애’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원자력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밤 늦게까지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정부 전력정책을 운영하고 원자력계를 이끌어온 전문가들의 ‘의사소통 능력의 결핍’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토론이 진행된 4시간 동안 그들은 시종일관 기존 에너지 정책의 정당성과 원자력 에너지를 홍보하고, 같이 참가한 환경단체 쪽 전문가들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또 원자력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환경단체에서 나온 전문가를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감시자 역할을 자처한 환경단체 사람도 무시하는데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동안 전력정책에 대해서 한번도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은 사정도 이해가 됐고요.”

그 동안 원자력계가 많은 비용을 들여 원자력 에너지를 시민에게 홍보하는 데는 신경을 썼지만,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원자력계를 대표해 토론에 참여한 한 전문가도 이런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원자력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시민들과 대화하는 법이 미숙한 것은 사실”이라며 “원자력과 관련된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우리 안에서도 이에 대한 성찰이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민들은 환경단체에도 쓴 소리를 내놓았다. 한 시민패널은 “정부나 원자력계의 전문가들보다는 덜 하지만, 환경단체 역시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데 많은 미숙함을 보였다”면서 “전문가들을 상대하면서 반대 운동을 벌이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시민, 무시하지 마!”

3개월에 걸친 ‘시민 합의회의’는 끝났다. 외관상 이번 결과가 정책에 큰 영향을 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정부나 의회가 직접 주관해 그 전 과정을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고, 그 결과도 정책에 직접 반영되는 유럽의 ‘합의회의’에 비해 시민단체가 주관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정책에 직접 반영되지 못하더라도 이번 ‘시민 합의회의’의 성과는 분명히 있다. 16명의 시민패널들은 항상 시스템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간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역량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시민의 힘’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 이 기사는 10월 13일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

프레시안 /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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