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차명거래 집중 단속하라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의 안착 위해 금융감독기구 감독행정 강화 절실

 

차명거래 규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오는 11월 29일 시행에 들어간다. 개정안 통과 이후 금융권에는 타인 명의로 보유해왔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의 이동이 감지되고 있다. 개정안이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징후다. 그러나 실소유주와 명의인의 은밀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차명거래의 속성상 법률개정 자체만으로 불법적인 차명거래를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소장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금융감독기구가 개정안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감독행정을 대폭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이번 금융실명제법 개정에 큰 역할을 했던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감독기구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주목할 만한 정보가 많다. 주가조작 등 주식불공정거래의 61.7%, 저축은행 불법대출 중 87.4%가 차명계좌를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명거래만 차단해도 금융권의 비리와 억울한 금융 피해를 상당히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투명한 거래를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금융권 스스로 차명거래를 주도해 왔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촉발된 삼성그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삼성증권은 756개, 주거래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의 삼성센터지점 53개의 차명계좌를 불법 개설한 이유로 제재를 받았다.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의 경우 지점장 3명과 부지점장 1명이 제재를 받았는데, 3명의 지점장이 모두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과 연루된 차명계좌임을 알고도 개설 또는 묵인한 것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실소유주인 차명계좌를 개설해 주었고, 신한금융지주의 재일동포 주주들에게 차명으로 7개의 계좌를 개설했다. 효성캐피탈이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의 특수관계인에게 1조 2,341억원의 대출을 한 것도 차명계좌를 이용한 것이었다. 우리은행은 주거래기업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계좌 700여 개를 고의로 개설해 주었고, 심지어 사망자의 계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위의 상황을 종합하면 재벌그룹의 주거래은행과 계열 금융기관이 앞장서서 재벌의 불법 차명거래를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과태료가 부과된 금융실명제 위반의 사유별 통계를 보면 전체 45개 과태료 부과 건수 중 금융기관 스스로 차명계좌 개설을 알선하거나 중개한 경우가 4건이나 된다. 금융기관 스스로 차명거래를 조장해 왔다는 혐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통과 이후 금융기관의 PB(Private Banking)센터에 고객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간접 확인된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 회피 차원에서 차명거래를 이용해 왔고 금융기관이 이를 적극 권장해 왔다는 의미인 것이다.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에도 불법 목적의 차명거래가 근절되지 않은 것에는 금융감독기구의 책임이 크다. 금융기관이 주도한 악질적인 불법 차명거래를 적발하고도 금융감독기구는 해당 임직원에게 정직이나 감봉 등의 경징계 처분만 내렸고, 영업정지 등 특단의 제재는 전혀 없었다. 과태료는 평균 159만원에 불과해 차명거래로 인한 이익에 비해 솜방망이 제재에 불과했다. 지난해 금융실명제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선의의 차명계좌가 상상할 수 없이 많다”는 식의 발언으로, 차명거래 차단에 부정적 반응으로 일관했다.

 

개정안은 차명계좌의 재산을 원칙적으로 명의자의 것으로 추정해 양 당사자의 신뢰를 어렵게 하여 차명거래를 일정하게 억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안만 가지고는 불법 목적의 차명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불가능하다. 신뢰관계가 유지되는 차명거래는 여전히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감독기구가 적극적인 감독행정을 펼쳐야 개정안이 안착할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은 모든 금융기관이 개정안에 규정된 의무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감독해야 한다. 특히 재벌그룹의 주거래은행과 계열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기존의 차명거래를 집중적으로 조사해서 제재할 것을 주문한다. 불법성의 정도에 따라 개정안에 규정된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단행하고, 강화된 처벌 규정에 맞춰 검찰 고발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금융기관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거나 ‘검은 돈’이 해외 조세도피처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개정안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빠져나가는 자금이 언제까지 금융기관 바깥에 머물 수는 없다. 또한 해외 조세도피처로의 도피 문제는 선진국처럼 조세도피처와의 국가간 금융정보 공유 등의 방법으로 대처할 문제이지 그것 때문에 지하경제를 이대로 방치할 만한 논거는 될 수 없다.

 

참여연대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의 시행을 환영하며, 금융감독기구가 개정안의 안착을 위해 특별한 감독행정을 펼칠 것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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