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25-05-29   10946

[2025대선][논평] 21대 대선 보건복지 공약에 대한 참여연대 입장

비전도 의지도 없이 선언적·나열적 공약으로 마무리하는 21대 대통령 선거

오늘(5/29)부터 21대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가 시작된다. 이번 대선은 탄핵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돌봄중심의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치러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은 공약집 발간을 최대한 미뤄왔고, TV토론회에서는 정책이 아닌 인신공격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자신이 당선되면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 것에 관해 유권자들에게 성실히 설득하는 과정이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 특히,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보건복지 정책은 주요한 공약으로조차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구체적 공약 없이 선언적이고 나열적인 복지 공약만으로 마무리되는 이번 대선 과정이 개탄스럽다. 후보자와 정당들은 공허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 의지를 밝혀, 책임 있는 집권 의지와 방향을 보여주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보건복지 공약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첫째, 이번 대선에서 저소득 취약계층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공약이 뚜렷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14.9%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2023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5%에 불과하다. 특히 생계와 의료급여 수급자는 인구의 3% 수준에 그친다. 이는 빈곤하지만, 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얼마전 생활고를 겪던 익산 모녀의 죽음이 이를 방증한다. 빈곤으로 인한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포함한 제대로 된 빈곤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이에 대한 일절 언급이 없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와 기초생활보장 선정 기준 개선 등을 밝혔으나 명확한 폐지 시점과 재원 마련 방안은 부재하다. 지금과 같이 부자 감세 여파로 재정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행 방안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존엄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공적연금의 강화가 필요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와 관련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OECD 평균 14.2%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상황이다. OECD가 노인빈곤율이 높은 주요 원인으로 공적연금의 미성숙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공적연금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연금개혁을 이슈가 되지 않게 하려는 차원의 두루뭉술한 공약만을 나열했다. 국민의힘은 청년층을 겨냥해 ‘청년안심 국민연금 2차 개혁으로 청년세대 부담 완화’를 내놓았으나 선언적으로만 제시되어 있을 뿐 뚜렷한 내용은 없다. 게다가 모든 세대의 연금액을 삭감할 뿐 아니라 청년층의 연금액을 더 많이 삭감할 것이 분명한 ‘자동조정장치 도입 검토’를 내놓고 있다. 개혁신당은 신구연금 분리를 연금공약으로 내놓고 있는데 이는 공적연금을 민간보험처럼 바라보는 지극히 재정편향적인 데다 실현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만이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여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연금개혁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전국민 돌봄에 대한 비전과 공약은 후보별 차이가 극명하다.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화 소용돌이 속에 누가 우리 이웃을 돌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처한 돌봄 위기는 간병 살인과 고독사 등 심각한 비극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 후보들의 돌봄 공약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먼저 민주당은 아동돌봄과 지역사회통합돌봄만 일부 언급하고 있다. 장기요양과 같은 주요 제도의 재정 책임 확보에 관한 언급도 전혀 없다. 국민의힘은 그나마 간병비 부담완화, 치매관리서비스, 통합돌봄체계, 경로당부식비, 임플란트 지원 등 세부적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프로그램 단위의 소규모 사업일 뿐 전국민 돌봄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공히 공약집에서 돌봄의 국가책임과 공공성 강화 그리고 돌볼 권리에 대한 분명하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편, 개혁신당은 노인과 여성 혐오라는 전략을 취해왔던 후보에 걸맞게 돌봄에 대한 공약 자체가 없다. 다행히도 민주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국민 돌봄보장’이라는 목표로 돌봄국가로의 전환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구체적 내용도 시군구를 돌봄 기능 중심으로 전환하고, 국공립 장기요양시설 확대와 의료복지 주거지원과 같은 돌봄국가에 걸맞은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향후 돌봄 정책은 대상별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모두가 돌봄을 전생애 보편적 권리로 누릴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넷째, 의료분야 공약도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의료의 위기를 한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정작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제시하지 않아,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 민주당은 의대 신설, 응급의료체계 정비 등 일부 정책을 제시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논의된 조치를 재확인하는 수준일 뿐, 현장의 의료공백 심화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특히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가 수준의 종합계획이 부재하고, 일부 공공병원 신·증설 언급 외에는 공공의료체계의 기능 재편·인력 배치 같은 구조적 개혁에 대한 실질적 비전도 부족하다. 의료 대란 대응으로 내세운 ‘국민적 공론화’ 역시, 정치의 책임을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떠넘겨 쟁점을 회피하는 수사에 가깝다. 국민의힘은 이보다 더욱 소극적이다. 의료접근성이나 인력 불균형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드러나지 않으며, 공공병원 확충이나 필수의료 인력 정책은 부재한 수준이다. 의료대란에 대해서도 ‘의사 말을 잘 들으면 된다’라는 수준의 인식을 반복하고 있어, 정부 역할의 수행 의지 자체가 의심스럽다. 개혁신당은 국민의힘보다도 한층 더 퇴행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 축소와 같은 배제적 접근을 공약으로 제시함으로써, 보편성과 형평성을 핵심 원리로 하는 건강보험 체계를 정면으로 훼손하려 한다. 의료 문제에 대해서 독자적인 해법이나 공공적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의사 집단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는 국민을 위한 의료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공공성과 연대의 철학 자체를 부정하는 퇴행적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이들과는 구별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공병원 확대와 인력 확충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밝히고, 의료를 공공재로 재정립하겠다는 방향성은 의료 위기의 본질을 짚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구체적 실행방안과 재정 계획, 인력 운영 구조 등에 대한 설계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으며, 실현 가능한 개혁안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결국, 모든 정당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위기라는 구조적 문제를 단편적 조치에 기대어 문제를 봉합하려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율’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공공성과 형평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스템 전환의 구체적 설계와 실현 의지다. 단편적 확충이나 협의의 프레임으로는 의료체계의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재’로 다시 자리매김 하는 포괄적 개혁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대선은 ‘성장’ 담론이 지배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에서 복지 국가의 비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각 당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선언적 수준의 나열적 공약만으로는 시민들이 직면한 삶의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 이는 단지 정책의 부재를 넘어, 공당과 대선 후보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2.3 내란 이후 광장의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너머 모두가 행복한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 요구에 대한 응답은 견고한 복지체계를 마련해 누구나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정책의 약속과 이행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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