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9-09-18   1221

2백만 빈곤층의 수급권을 허(許)하라


[의제27 ‘시선’] 친서민-중도실용의 진정성 가늠할 시금석

현재 우리나라에 빈곤층이면서도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사각지대의 빈곤층은 2008년 기준 410만명이라고 정부에서 지난 3월 발표한 바 있다. 인구의 8.7%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복지국가에 있어 국민기본선(national minimum)의 충족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일찍이 미쉬라(Mishra)가 완전고용, 보편주의적 복지서비스 실현, 그리고 국민기본선, 이 세가지를 복지국가의 특징임을 주장한 것에서도 국민기본선 확보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바로 그러한 역할을 자임하는 가장 중추적 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주춧돌을 놓은 지 10년이 되었지만 돌이켜보건대 성과보다는 한계가 절감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1999년 IMF 경제위기 하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을 제정하던 당시만 해도 그 정신과 원리를 보았을 때 이전 생활보호법과는 사뭇 대조적이었고, 조금 격하게 표현해 ‘코페루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평가할만했다. 이전까지 빈곤층에 대해 매우 인색하면서도 시혜적으로 접근하던 관점을 벗어던지고 생존권 자체를 국민이 누릴 권리의 하나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국민의 생존권 담보가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였다.


나아가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연령이나 부양의무자 유무와 같이 비경제적인 인구학적 특성을 사전 배제조건으로 했던 이전의 관점을 완전히 뒤엎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득과 재산을 단일한 기준인 ‘소득인정액’ 개념으로 환산하도록 했고, 이것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금액만큼을 보충해 주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도의 실행을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 정부의 지침이 구체화되면서 애초의 코페루니쿠스적인 정신과 원리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재산을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그 환산율이 지나치게 높아 실제로 당장 소득으로 전환할 수없는 자산이 약간 있다는 사유로 수급권자가 될 수 없었다.


특히나 자동차에 대해서는 너무나 엄격하여 자동차의 현재가치만큼 월 소득에 100%추가됨으로써 연간으로 따지기 때문에 자동차라는 자산은 물경 1200%나 반영되는 꼴이었다. 부양의무자가 있을 때 그들에게 일정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애초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규정도 과연 원래의 법정신을 얼마나 반영한 것이었는지 따져 볼 일이다. 보충급여액수도 실제로는 받지도 않은 의료급여나 교육급여가 가구당 평균급여지출비만큼 모든 가구에게 지급되었다치고 나머지만을 현금생계급여로 보충해 주어 실질적으로 보충급여액이 부족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과정은 어떠하였나? 결국 정부의 예산지출 규모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종속변수로서 최저생계비가 취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이나 아동, 와병중인 노인 등의 가구원이 있건 없건 동일한 급여가 주어졌고, 지역적으로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촌 등의 구분이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복지병과 막대한 예산소요를 걱정하는 경제관료들과 보수인사들의 존재가 컸다. 당시 이 제도의 원리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은 2000년 10월 마침내 기초법이 발동되는 시점에서 수급권자수가 이전의 160만명에서 152만명으로 오히려 줄어든 사실이었다. 수급자 선정기준의 획기적 완화에 따른 수급자의 대폭 증가를 기대했던 기초법 추진단체들의 망연함은 감내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서 이러한 수급자수는 의미 있게 증가한 적이 없다. 이 기초법에 대한 개정의 목소리가 한시도 가라앉지 않아,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를 비롯하여 조금씩 개선되었지만 역시 수급권자 수는 크게 다르지 않아 150만명 내외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그림> 빈곤 사각지대 현황







▲ 자료 : 기획재정부, <민생안정 긴급지원 대책>, 15쪽, 2009. 3. 12

결국 기초법이 우리사회의 국민기본선을 확보하는 기제로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은 현재 사각지대에 놓은 빈곤층의 대규모 존재로 입증된다. 그림에서 보는 바처럼 2009년 3월 정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소득과 재산 모두 수급권자 기준에 맞지 않지만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초과되어 탈락된 자가 60만 가구, 100만명(그림의 A부분)에 이르며 소득으로는 기준이하지만 주거용 부동산, 승합차, 금융자산 등이 기준을 넘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이들이 110만 가구, 240만명(그림의 B + C 부분)이며, 전형적인 차상위계층으로도 30만가구, 70만명(그림의 D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모두 210만 가구, 410만명, 무려 인구의 8.7%에 해당하는 사각지대 빈곤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 사각지대 빈곤층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제도가 인구의 3%내외의 존재에게만 의미 있는 제도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국민기본선을 보장하는 충직한 제도로 만들 것인지가 기초법 제정 10년을 맞아 우리사회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선 낙인효과가 있고 행정비용이 클 수밖에 없는 이 제도 대신 기본소득(basic income)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갖고 등장하는 것도 위와 같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에 기인함도 사실이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시민에게 소득수준이나 성별과 관련 없이 개인별로 동등한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로서, 복지국가 시기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으로 빈곤문제가 어느정도 해결 가능했었던 때와는 달리,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하고 완전고용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는 기존에 고용가능성이 높다는 전제하에 설계된 모든 소득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 단순화하여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자는 기본발상을 전제로 한다.


특히 오늘날 노동시장이 변화하여 실업의 증대(특히, 장기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에 기존 복지국가 제도들이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사회보험과 같이 장기간 기여를 전제로 한 경우 실업자,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노동자가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제도의 의의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는 워낙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복지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환하더라도 가히 혁명적인 조세제도의 개혁이 함께 논의되어야만 가능하다. 일례로 민주노총 산하 정책연구소에서 제시한 기본소득제 도입안에 따르면 연간 약 290조원의 재원 조달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기본소득제 발상은 매우 혁신적이기는 하나, 그 이념과 실현수단의 유효성에 있어 복잡한 고려요인들이 포함되어있다. 우선 이념적으로는 차등한 지급이 아닌 일정액의 지급이라면 절대적 빈곤이나 기본생활욕구 해소 효과는 있으나 여전히 상대적 빈곤에 따른 박탈감은 가시지 않으므로 궁극적인 형평성 확보가 어려운 상태이다. 또한 실현수단으로서의 현실적 유용성 측면에서는 더 많은 고려점들을 배태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양한 복지제도의 의의와 효과가 부정되고 현금급여를 주된 것으로 하여 기존의 각종 제도를 대체한다고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각 나라의 경로의존성에 따라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혁명적 대안을 누가 수용하고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지,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성격과 자본-노동간의 관계, 그리고 복지정치의 지형 등을 고려할 때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선은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탕으로 국민기본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더 유효하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주장에 의하면, 부양의무자기준과 최저생계비 산정기준, 그리고 재산의 소득환산기준 등 세가지에 변화를 주면 적어도 200만명의 사각지대 빈곤층을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첫 번째, 부양의무자기준을 개선하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적어도 수급권자의 선정단계에서 부양의무자가 존재하고 그들 가구와 수급자신청가구의 가구원 수를 합하여 적용되는 최저생계비 수준에 130%를 넘어선다면 그들 간에 실제 소득이전이 없다 해도 수급권자가 될 수없는 현실이다. 이는 법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정부가 임의적으로 정한 바이기에 더욱 문제이다.


따라서 선정단계에서는 부양의무자 유무를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가구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우선적으로 국가 예산으로 급여가 지급된다. 그리고 부양의무자의 소득수준이 부담가능한데도 부담하지 않아 수급권자로 지정되었다면 국가가 구상권(求償權)을 발동하여 사후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이는 앞의 그림에서 A 부분에 속한 100만명을 모두 구제할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이다.


둘째, 최저생계비의 결정을 바꾸자는 부분은 이렇다. 현재 정부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될 수 있는 최저생계비 결정과정을 아예 중위소득(中位所得)의 적절한 비율로 못박아둔다면 쓸데없는 사회적 논란이 필요 없다. 내년도 최저생계비를 올해보다 2.75% 증가만 허용한 것 같은 정부의 행태가 다시 일어나기 어렵게 만들자는 것이다. 당장 중위소득(2008년 기준 363백만원)의 40% 선인 145만원으로 최저생계비 수준(2009년 현재 4인가구 133만원)을 정한다면 그림의 D부분에서 20만명정도가 추가적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산의 소득환산율을 현실화하자는 것이다. 현재 자산의 소득환산율이 월 4.17%이나 이것을 3%로 낮추고 최소한의 재산공제액을 높이면 어렵지 않게 그림의 B와 C부분에 있는 사각지대 중 80만명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초법이 국민기본선 지키기의 보루가 되느냐 아니냐는 제도의 속성에 있지 않고 그 운영에 있는 것이며 발상의 전환에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깨우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국민기본선을 충족시키는 일에 근본적인 부실함을 갖고 있는 한, 한국의 소득보장시스템은 매우 불안한 구조를 갖지 않을 수 없고 복지국가로서의 기본적인 면모를 갖기 어렵다.


특히 산업사회의 특징인 고용기회의 지속적 창출이란 경제구조의 특성이 사라지고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노동의 양산, 평생직장체제의 붕괴 등이 동반되는 탈산업사회 하에 진입한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소득보장체계의 허점은 단순히 빈곤계층에 대한 타격만이 아니라 폭넓은 중산계층 대중에게도 잠재적인 불안정층으로서 살게 만들게 됨으로써 한국 복지국가의 진행에 어두운 미래를 던져줄 뿐이다. 따라서 국민기본선의 안정적 확보, 나아가 전국민계층의 생활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대안적 모색을 전면적으로 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하겠다.


결론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적어도 200만명의 사각지대 빈곤층을 수급권자로 끌어안는 일에 정치권과 정부가 회피해선 안 된다. 현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지 않을까? 너무 기대가 과한지는 모르겠지만.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 이 글은 9월 17일자 프레시안(www.pressian.com)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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