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UP] 공성진 의원 릴레이 체험 후기

09:15

대치동 후원회 사무실을 뒤로하고 참여연대와 약속한 삼선동을 향하여 달렸다. 혹시 도움이 될까 박남순 복지담당 비서관과 이호정 비서를 동행시켰다. 박 비서관은 구의원 당시 보건복지위원으로서 지역의 수급자와 장애인, 그리고 구룡마을 주민들을 온 몸으로 보듬어준 생활정치인 출신이고, 이호정 비서는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생으로 이론과 실제 양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청계천을 가로지르는데 그 주변에 많은 발전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로서는 청계천 복원전의 그 곳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던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이미 다가왔는데…. 내가 만날 사람들과 소위 쪽방촌의 모습들에 대한 상념이 교차한다.


10:00

기초생활 수급가족들과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반갑게 나를 맞는다. 며칠간이지만 낯선 환경에 힘들었을 텐데 얼굴이 밝고 건강하게 빛났으며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에 자부심이 엿보인다. 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함께 MBC에서 제작한 기초생활수급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간단한 즉석 토론회를 가졌다. 참여연대 사회복지 위원장이신 이태수 선생께서 토론을 주제하셨다.

나의 복지관은 21세기 국가의 책무에서 비롯된다. 과거 20세기까지의 국가와 21세기 국가 사이에는 차이가 현격할 수밖에 없다. 근대 산업화를 일군 주역은 누가 뭐래도 「관료제」로 무장한 국가였다. 하지만 21세기 후기산업사회 혹은 탈근대사회를 영도하는 세력은 국가보다는 「시민사회와 기업」일 수밖에 없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결과이다.

국가는 단지 첫째, 국방안보, 둘째, 위기관리,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가 사회안전망 구축과 관리인 것이다. 나머지 기능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시민사회와 기업이 담당하여야 한다. 그런데 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보다 강조되는가? 그것은 시장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의 결과 낙오자나 일탈자, 혹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방치한다면 이는 시장의 실패이자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회의 전통문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은 사적 연고에 의한 사회안전망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학연이나 지연 혹은 가족을 위시한 혈연과 같은 연고적 공동체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한국인의 평등의식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손을 내미는 미덕, 달리 말해 ‘우리’라는 집단적 동질성을 보여 왔다. 이것이 나눔 문화의 원동력이라고 치부하면 견강부회일까? 오죽하면 과객도 잔치에 끌어들이고 동네 강아지나 새에게 먹으라고 나뭇가지 위에 남은 잔반을 얹어 놓겠는가.

하지만 이런 전통적 연계망도 이제 근대화 산업화의 성숙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이미 가족의 해체는 우리사회를 독거노인 100만의 시대로까지 올려놓았다. 효를 자랑하고 수출하며 세계화의 고유상품으로 자리매김하자는 지난 1990년대의 주장이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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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이 대목에서 소위 부양자 부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게 된다. 동자동 쪽방동네에서 만난 한 수급자는 사위의 벌이가 나아졌다고 그나마 받던 돈 20만원이 연기처럼 사라져 방을 나가야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소연한다.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정부와 연결되어 40만원을 수령하게 되었지만 사위가 군인이라 진급에 따라 딸 내외는 수입이 올라가고 이 노인의 수급액이 감소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부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등을 돌리고 관계를 끊은 지 7년이 넘은 사이란다. 그런데도 이들은 상호부양의 의무가 있는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이들과 같거나 유사한 형태의 기초생활수급 차하위계층이 1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정부의 집계이다. 이들에게 계속 가족부양의무자라는 당위론적 주장만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11:40

이런 전제하에 나의 복지관을 간단히 피력하고 자원봉사체험단과 함께 지역 봉사 단체에서 제공하는 점심밥을 몇몇 노인들 가구에 배달하고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대부분이 언덕배기에 소재한 다가구주택인데 외양은 별로 손색이 없어보였다. 중학교시절 삼선동에 인근한 안암동에 잠시 살았는데 조그마한 한옥이 대부분이었고 80년대 이후부터 한옥이 철거되고 다가구 주택이 들어섰는데 이곳도 그 당시 조성된 동네인 듯하다. 땅은 시유지이고 건물은 무허가라 변상금 때문에 팔기도 어렵고 묶여 있다고 한다.

나를 금방 알아보는 할머니가 있어 방을 잠시 둘러본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젊은이 사진이 있어 누구냐고 물으니 자랑스레 아들이라고 대답하신다. 할아버지까지 나와서 선거도 아닌데 공성진의원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며 악수를 청하니 어깨가 새삼 무거워진다.

할머니가 공공근로를 일주에 세 번 정도 해서 용돈을 벌지만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하소연은 흘려들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집도 재산으로서의 실질가치가 없고 병원을 달고 사시는 노인들에게 의료비도 먼 나라 이야기니까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라느니 G20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느니 하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을까?


12:40

동자동 쪽방(409호)에 짐을 풀고 근처 상점에서 몇 가지 식료품을 구입하였다. 점심, 저녁 그리고 내일 아침 끼니를 6,300원에 해결해야 한다기에 열심히 가격을 들여다보며 가게주인과 함께 식료품을 사기 시작하였다.

쌀 1컵, 라면 한 봉지를 사니 벌써 1,500원. 내일 아침은 과일과 커피로 해결하려고 토마토 4개(2,000원), 커피믹스 1개 그리고 영양 간식 및 반찬으로 번데기 통조림 1개와 김치 한 봉지, 계란 1개를 사니 도합 6,100원 이었다. 200원이 남는데 무얼 사나? 신문도 살 수 없고 껌을 살 수도 없는 금액이니 모아두었다가 후일을 도모하여야겠다. 과연 매일 200원씩 한 열흘을 모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겹살에 소주 한잔 도 불가능 할까? 가게 주인아주머니한테 기초생활비를 인상하면 가게 벌이도 나아지고 수급자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손님의 대부분이 기초생활 수급자일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야지 밥만 주어서는 되겠느냐는 지적인 듯하다.

그럴지도 모른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비와 주거비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고 몇 푼 더 받아야 저축과 기술개발을 통한 자활보다는 술과 담배에 더욱 매달릴지도 모른다. 근원적 해결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가게 아주머니의 소박한 지적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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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

모처럼 라면을 끓여 먹었다. 국물을 약간 많이 넣어 저녁에도 먹을 수 있게끔 남겨 놓았다. 해병대 시절과 미국유학 시절 익힌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이다.

기초생활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이 한나라당과 정권에 적대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MB정권의 친서민 정책이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일선 공무원들과 지도층의 소통능력이 갖추어지지도 않았고 실제 기초생활비를 비롯한 사회안전망 관련 정책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인식하는 정치인이나 장․차관이 몇 명이나 될 지도 의문이다. 하긴 첫 번째 책무인 국방안보 분야만 보더라도 최근 선출된 한나라당 지도부 간에 군필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으니, 누구나 다 겪는 군복무가 이 정권 지도부에서는 귀한 체험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정말 국민들에게는 면목이 없다. 지도층이 이런데 일선 창구 직원들의 소통능력에 대해 누가 질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 생활체험 프로그램에 기업인이나 여타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를 초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순천향대학 허선 교수에게 따져 물었다. 사회안전망이 물론 국가의 관심과 배려가 일차적이지만 사회 공헌을 표방하는 기업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구축될 수 없는 시기에 이미 도달하였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전경련이나 경총 등의 지도부와 꾸준한 협의를 통해 경쟁에서 실패하거나 패자 부활전이 없어 다시 경기에 임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위한 캠페인에 동참시켜야 한다. 정부, 기업,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이 함께 뛸 때 대한민국의 사회안전망이 촘촘히 그물처럼 탄탄해져 한 명의 소외 자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 점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은 치매예방과 혈액순환에 좋다고 영국의 어느 대학이 며칠 전 발표한 대로 커피 한 잔과 토마토 4쪽으로 대신하고 1박 2일의 기초생활체험을 마치려 한다. 매일매일 일상적 삶을 이렇게 영위하는 사람들의 고충과 무력함을 하루정도의 체험으로 이해하거나 분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헌법기관으로서의 참여와 관찰은 최소한의 사회정치적 반향은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하며 미래를 규정하는 입법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음도 분명하다.

11:30 pm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사회의 사회안전망 수준에 대한 상대평가가 절실함을 느끼면서 잠을 청해본다.


-2010. 7. 27~28 공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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