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③]최저생계비 현실화, 기본이자 시작입니다.


[최저생계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③]


곧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생계비를 결정합니다. 참여연대는 지난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올해 7월 한 달동안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정한 최저생계비가 과연 적정한지 실제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체험결과를 바탕으로 체험에 참여한 체험단과 전문가들이 중앙생활보장위원들에게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계측방식의 변경을 요구하는 릴레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2004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하월곡동에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에 참여했던 유민상이라고 합니다. 한 달의 체험으로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알린지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최저생계비로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 조금만 더 올려 달라’ 라고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동정심 유발 작전이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최저생계비를 조금 더 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생계비의 문제를 단지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그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사진설명 :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버린 2004년 최저생계비 한달나기 체험단이 살았던 하월곡동 모습)

최저생계비는 ‘시혜’가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존의 시혜적이고 빈민 통제적 성격이 짙었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면서 국민들은 최저한도의 생활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국가와 사회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사회권이 등장을 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으로 비로소 우리나라도 복지국가에 진입했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기준선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정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저생계비는 우리 국민이 권리로서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저한의 삶의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최저생계비는 이미 시혜의 차원이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입니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이러한 권리 보장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를 인상하고 현실화하자는 주장은 단지 빈곤한 사람들에게 ‘몇 푼 더 얹어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닌,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출발점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발전된 자본주의와 성숙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국민이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즉 사회적 시민권이 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실업이나 질병, 노령 등으로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모든 시민과 그 가족이 사회의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사회의 보편 기준에 따라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발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사회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복지권은 여러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으로 인해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과연 발전된 자본주의와 성숙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시민권이 얼마만큼 발전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연합체인 OECD의 회원국이고, 세계적인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국가입니다. 이제 우리의 문화를 많은 국가에서 함께 향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부강한 대한민국’에서는 과연 사회적 시민권이 얼마만큼 발전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부강함에 비해 사회적 시민권의 수준은 형편이 없어 보입니다.


그 부강한 나라에서는 아직도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으며, 그로 인해 건강한 신체적․정신적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급식비를 내지 못해 서러움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목숨을 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지위의 일을 하지만 빈곤을 탈출할 수 없는 덫에 걸린 삶을 살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법이 있어도 치료받지도 못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고 홀로 남겨져 하루하루 ‘마지막 그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의 부강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최저생계비의 인상으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여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복지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매우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최저생계비를 현실화 하여 우리사회의 최저한을 보장하고 여러 사회서비스와 사회보험제도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한다면 위에 열거한 ‘시대의 아픔’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사회적 시민권의 발전을 이끌어 더욱 성숙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 최저생계비 한달나기 캠페인단의 거리캠페인 모습/2010년 7월)

권리로서의 인간다운 삶 보장, 그리고 그 이상


저는 이 글에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권리로서의 인간다운 삶 보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저는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는 최저한의 삶을 사는 사람뿐만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단지 ‘그 길’을 걸어가는 첫 발걸음일 뿐입니다.


저는 아직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그 길을 가는 첫 발걸음을 빨리 내딛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그 첫 발걸음이라면,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반드시 최저생계비는 현실화 되어야 합니다.

유민상(2004년 3인가구 체험자)

공개편지는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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