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경축사와 재경부의 “소득분배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에 관하여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의 조세개혁 상황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에 “음성ㆍ불로소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음성ㆍ불로소득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1998년에는 근본적인 조세개혁 보다는 일부 탈세자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을 추징하거나 변칙증여를 막기 위해 부분적으로 세법규정을 보완하는 데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시민운동과 여론의 압력에 의해 전문직 사업자들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것으로 1998년 말에 부가가치세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던 중 1999년에는 정부가 조세개혁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우선 1999년 4월 국민연금이 확대 실시됨에 따라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실 자영사업자의 탈세문제와 그로 인한 세부담의 수평적 불공평성의 문제(근로소득자와의 관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문제이지만, 국민연금의 확대실시가 이 문제를 첨예한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또한 1999년에는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IMF위기 이후 소득분배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표한 『경제위기 1년의 조세정책 평가와 향후 정책방향』(1999. 3. 2.)에 의하면, 도시가계조사의 표본조사 대상 가구의 평균소득이 2,734만원(1997년)에서 2,103만원(1998년)으로 하락하였고, 특히 소득감소의 규모와 비율이 저소득층에서 현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의 입장에서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조세개혁을 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다. 그간 정부 차원의 조세개혁 작업은 국세청, 재정경제부, 그리고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에서 논의되어 왔으며,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8.15.경축사에서 세제개혁에 대한 원칙을 발표했고, 그 다음날인 8월16일 재정경제부가 “소득분배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소득분배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의 내용

대통령이 8. 15. 경축사에서 언급한 세제개혁의 원칙은 공평한 과세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 세정개혁의 기본이 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실시를 추진하고, *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를 통한 부의 부당한 대물림이 없도록 세제를 개선하며, * 음성탈루소득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과세하고, * 봉급생활자의 세부담을 줄이고 고소득 계층의 소득원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소득분배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은 다섯가지를 핵심골자로 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2001년부터 재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와 함께 금융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은 점차 낮추어 2001년부터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유보 이전의 15%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변칙상속ㆍ증여를 막기 위해 상속세및증여세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사치ㆍ호화주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네번째로, 고소득 사업자의 수입금액 현실화를 위해 과세자료가 국세청에 집중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를 시행하며, 부가가치세 간이과세대상자를 일반과세자로 전환하고 현재의 과세특례대상자를 간이과세자로 전환한다(2000년 7월부터)는 것이다.

다섯번째로 중산ㆍ서민층의 소비물품인 식음료, 가전제품, 생활용품, 대중스포츠 및 관련물품 등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에 대한 평가

가. 전체적인 평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안”이 종전의 정부 태도에서 진일보한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재실시하겠다고 밝혔고,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및 간이과세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의 재실시와 부가가치세 과세특례ㆍ간이과세제도의 개편문제는 당면한 세제개혁의 과제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당초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 갔던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 시기가 2001년으로 늦추어진 것과 연간 수입금액 4,800만원 미만의 사업자에 대해 간이과세제도를 남겨 두기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과감한 개혁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시기를 늦춘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경우 이번 정기국회에 법을 개정하여 재실시시기를 못박겠다고 하지만, 1997년 12월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유보할 때와 같은 사태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변칙 상속ㆍ증여 문제에 대한 개선안도 여러가지로 미흡하다는 지적을 면할 수없고, 특별소비세 과세대상 물품의 조정은 보다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 개별 평가

첫째,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 시기를 2001년으로 미루는 것은 과연 정부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재실시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재실시에 반대한다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재실시할 것이라면, 굳이 2001년부터 재실시하겠다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없다. 연기론자들의 말대로 “금융시장 혼란”이나 “해외재산도피”가 우려된다면,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2001년 실시를 주장해야 할 것인데, 스스로도 “우려”만 표명하고 있을 뿐 “우려”를 막기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막연한 “우려”만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 시기를 연기하자는 것은 국민을 “위협”하여 개혁을 가로막자는 것에 다름아니다.

사실 1996년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실시할 당시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그쳤다. “제도금융권의 돈이 퇴장되거나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심각한 자금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없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를 재실시하자는 이유는 단지 4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에 대해 누진세율로 과세하자는 것에 있지 않다. 물론 누진과세를 통해 고액 금융자산가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은 세부담의 형평성 실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의 의미는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의 재실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 보장과 음성ㆍ탈루소득을 적발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기득권층이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를 폐지시키기 위해 그처럼 안간힘을 쓴 이유도,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를 실시하게 되면 차명거래가 어려워지고 국세청에 금융소득자료가 통보되게 되어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탈세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또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세무행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조기에 재실시되어야 한다. 현재 국세청은 탈세를 막기 위해 국세통합전산망(TIS)을 구축하여 개인별로 재산, 소득변동 내역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으나,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된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정보인 금융소득에 대한 자료를 얻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둘째,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간이과세 제도를 개편하면서 연간 수입금액 4,800만원 미만의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간이과세제도를 적용하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은 또다시 부가가치세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조세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와 동아일보가 지난 7월 세무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세무전문가의 90%가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세무실무에 종사하는 세무사의 경우에는 100%가 폐지주장에 찬성하였다. 그만큼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와 간이과세 제도의 폐지가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과세특례자이던 연간 수입금액 4,800만원 미만의 자영사업자를 간이과세자로 남겨 둘 경우, 일반과세자로 전환된 사업자가 위장폐업을 통해 다시 간이과세자로 남아 있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실무계의 지적이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특례제도 변천사를 볼 때에, 선거때마다 선심성 정책으로 특례제도가 개악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남겨 둘 경우, 선거때가 되었을 때 또다시 간이과세 제도의 기준금액이 상향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996년 4. 16. 총선을 앞둔 1995년말에 간이과세제도가 신설되고 과세특례기준금액이 3,6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상향조정되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이러한 우려가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세특례와 간이과세 모두 폐지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변칙 상속ㆍ증여를 막기 위한 부분적인 보완규정을 만든다고 하지만, 과연 그 정도로 변칙 상속ㆍ증여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는 변칙 상속ㆍ증여가 문제될 때마다 상속세및증여세법을 손질해 왔지만, 항상 재벌들의 변칙 상속ㆍ증여는 세법의 헛점을 교묘하게 피해왔다. 사실, 나날이 새로워지는 변칙 상속ㆍ증여 기법을 볼 때, 증여의제 규정에 의하여 변칙 상속ㆍ증여를 막는 것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변칙 상속ㆍ증여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연구.검토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글을 맺으며

지금 필요한 조세개혁은 임시방편적인 개혁도 아니고,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주기 위한 분풀이형 개혁도 아니다. 그야말로 세부담의 형평성을 실현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이다. 근본적인 개혁은 여러가지 정책수단들을 동시에 사용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세제개혁과 세정개혁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제와 세정 개혁을 위해 필요한 각각의 개혁과제들도 상호 연관효과가 있으므로, 개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주저없이 모든 개혁과제들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2000년부터 재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는 조만간에 폐지되거나 적용범위가 축소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정부가 세제.세정 개혁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세제, 세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어 왔던 역사를 감안할 때에, 아직까지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혁안이 왜곡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세제, 세정안이 현실로 실현되면 기득권층의 저항도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조세개혁 작업이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때보다 시민운동과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력이 필요한 때이다.

하승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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