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성노동조합 출범의 배경과 의미

1999년 8월 29일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안산시흥, 마산창원, 익산전주 등 7개 지부 372명의 창립동지들이 모여 전국여성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전국단일 여성노동조합의 출범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여성노동조합이지만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덴마크 여성노동조합은 약 110년 전인 1885년 올리비아 넬슨에 의해 조직되었다. 1995년 현재 10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고 64개 지부를 갖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여성노조는 기존 노동조합의 남성중심성에 문제를 느낀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여성독자노조는 1987년부터 교토, 오사카, 간사이, 가나가와 등에서 지역노조의 형태로 결성되었다. 가내노동자 및 임시직 서비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새로운 모델로서는 인도의 세와노동조합이 있다. 세와에서는 노조활동뿐만 아니라 협동조합활동, 신용협동조합(은행)활동 등을 통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조직하고 있으며 법률, 교육활동, 직업훈련, 비디오 세와, 보건, 탁아사업 등의 서비스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여성노동조합들은 나라는 틀리지만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 노동조합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여성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성노동조합 태동의 조건

여성노동자 고용불안의 심화

지난 10년간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은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 일용직, 파견직 노동이거나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는 임금노동 및 비공식부문 노동의 비중이 커지는 쪽으로 채워졌다.

전체 여성노동자 중 5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이 64%(통계청,《경제활동인구연보》, 1993)에 달하고 임시일용직종사 여성이 67.1%(통계청,《1998년 9월 고용동향》)에 이르는 등 여성노동자의 전반적인 고용악화와 취업구조의 변화는 여성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켜 왔다. 이러한 상황이 여성노동조합 출범의 객관적 배경이 되었다.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의 하나가 여성 업무를 정규직 업무에서 비정규직 업무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정규직 근무자에게 퇴직과 비정규직 전환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거나, 기존 인력을 해고시키고 파견이나 임시직 노동자를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1998년 9월 여성의 임시, 일용직 비율은 67.1%로 증가하여 여성 고용불안정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남성의 임시 일용직 비율이 36.6%임과 비교할 때 IMF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미명하에 상용직을 감소하고 임시직을 증가시키는 고용형태의 변화에 여성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노동자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이러한 현실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여성노동자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1987년 11.1%였던 여성노동자 조직률은 1997년에 이르러서는 5.6%까지 떨어졌다. 1987년 15.3%였던 남성조직률이 1997년 14.9%임과 비교(권현지, "조직률 급락과 노동조합의 대응,"《노동사회》, 1999년 1월호)해볼 때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은 여성노동자 조직실패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화사회의 장밋빛 그림의 뒷전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3권에서 소외된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와 자본, 남성의 이해관계 속에서 주변노동력으로 밀려나고 있는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그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 속에서 여성 노동조합 조직이 태동되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건설이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의미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과제인 미조직 조직화의

주요 모델을 개척한다

여성노동자가 단결된 힘을 갖기 힘든 이유는 우리나라의 일반적 노동형태인 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힘든 고용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단위 노동조합을 운영하기 힘든 100인 미만 사업체에 여성의 89.5%(1993년)가 근무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힘든 임시 일용직 종사여성의 비중이 현저히 높다. 또 여성은 경기변동, 출산 육아에 따른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고, 그에 따라 종사하는 업종과 취업형태가 변화하고 있어 조합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여성노동조합은 여성의 삶의 방식과 맞춰, 회사와 직업, 지역과 관계없이 일하는 여성이면 평생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으로 결성하여 여성노동자 권익확보와 조직확대를 해나가고자 한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해나가는 운동이며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과제인 미조직 조직화의 주요 모델을 만들어가는 운동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지 못하는

기존 노동조합 활동의 한계를 극복한다

여성노동조합은,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영과 조합내 남성간부의 보수성 등으로 여성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존 노동조합 활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여성노동자 대중조직화의 모델로 모색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여성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조합원의 조합활동의 애로사항으로 '조합의 남성중심성, 남성간부들의 보수성. 기혼여성의 가사노동의 부담으로 인한 시간배치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1997년 민주노총 자체조사에 따르면 여성조합원 비중은 20%이나 중앙 대의원은 전체 338명의 3%인 10명에 머물고 있다).

여성노동조합은 여성으로서의 자기존중감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사업방식을 채택한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어려움, 결혼, 출산과 육아, 직장과 사회 속에서 불평등한 지위의 개선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한다. 따라서 여성노동조합은 직장교섭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단위 노동조합보다 활동의 폭이 넓다. 직장내 교섭만이 아니라, 취업알선, 기능훈련, 생활지원, 자녀양육을 위한 가족캠프 등 일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한다.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만들어가는 조직활동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저임금과 가사노동의 전담, 경기변동에 따른 우선해고 등 여성의 희생에 기반하여 성장해 왔다. 이러한 성장방식이 한국경제와 사회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의 낮은 조직화로 여전히 유효한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성노동조합을 통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 세력화는 더이상 여성이 희생양이 되는 발전방식을 지양하고 한국경제의 체질개선, 양성평등적 사회발전을 촉구해나가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감수성과 창의성, 협력적 사회관계성이 주요 덕목이 될 21세기의 여성 역할을 높이고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만들어가는 의의를 지닌다.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여성노동조합

1999년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조합이 최초로 탄생한 해이다. 1999년 1월,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 결성소식은 전국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후 전국 각지에서 10여 개의 여성노동조합이 탄생되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여성노동조합이 여성노동자들의 열망을 안고 탄생될 것이다. 여성노동조합의 설립주체와 주된 조직화대상은 틀릴지라도, 여성노동자 현실변화를 위한 탄생배경은 같기에 전국적인 연대단위로 뭉쳐나가게 될 것이다. 480만 미조직 여성노동자의 고용권과 단결권 확대를 위한 각지의 여성노동조합의 활동과 공동전선은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주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조합은 정규직 조직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미조직 비정규직 소외계층 노동자 조직화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평을 넓혀나가는 모델이 될 것이며, 현재의 조합운동이 여성노동자에게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성평등적 활동방식을 채택하도록 하는 진보적 역할을 할 것이다.

최상림 /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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