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5-02   450

참여복지의 과제

새 정부의 복지이념은 [참여복지]이다. 국민의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그 취지이다. 복지정책은 원래 [국민을 위한 정책]이다. 여기에 [참여]를 덧붙인 것은 [국민에 의한 정책], 즉 국민이 참여하고, 동의하고, 공감하는 정책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복지는 국민상호간에 서로 도와서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살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규범적, 당위적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복지정책을 국민의 참여와 동의 그리고 공감을 얻어가면서 시행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당위적 성격에 대해서는 모두 수긍하고 규범적으로는 대부분이 그래야 한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막상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국민계층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갈등, 반대, 불신의 골이 새로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면 정략적 이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이 악화되는 경우도 생긴다. 좋은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실시하고 나면 좋은 점은 잘 인식되지 않고 현실적 문제만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숲의 좋은 점은 다 잊어버리고 숲 속의 가시밭만 문제로 나타나는 식이다. 이 정책을 왜 실시했는지 국민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에 실시된 복지정책으로서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의 예를 들어보자. 건강보험통합은 모든 국민이 서로 도와서 국민의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의약분업은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하여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두 정책 모두 국민에게 좋은 정책이다. 그리고 이 두 정책은 그 결정과정에서 수십 년 씩 논의해 온 것들이다. 건강보험통합은 23년, 의약분업은 40년 동안 국민토론, 국민동의, 국민합의의 과정을 거쳤다. 이해관계집단의 주장, 전문가의 연구와 토론,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행정부의 위원회 활동, 국회의 공청회와 토론, 여야정당의 정강정책수립과 선거공약의 과정을 다 거쳤다. 이 두 정책은 모두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결의하고 법률로 제정하거나 개정한 것이다. 의약분업정책에 대해서는 시범사업도 3년이나 해 보았고,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집단인 의사단체와 약사단체간에 사회적 합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정책을 시행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다. 건강보험통합의 경우 직장의료보험노조의 반대투쟁으로 건강보험업무가 몇 달 동안 마비되는 혼란을 경험하였다. 지금도 건강보험의 재정을 분리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4반 세기동안의 합의과정을 거쳐 겨우 이루어 놓은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자는 이야기이다.

의약분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40년 간 그 많은 대화와 토론, 당사자간의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막상 정책을 시행하는 단계에 와서 이해관계집단의 행동과 태도가 달라졌다. 합의했던 당사자들도 돌아서서 반대행동에 나섰다. 의료계의 반대투쟁으로 미증유의 의료대란을 겪었다. 이 혼란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겪은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민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국민여론이 나빠지니까 이 정책결정과정에 관여했던 많은 당사자들은 뒤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지금도 의약분업을 철폐하자는 주장이 남아 있다. 40년 간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겨우 올라온 그 높은 산의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자는 이야기이다.

어떻든 2000년 7월 1일에 건강보험은 통합되었고 의약분업도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 두 정책의 시행으로 얻은 좋은 점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

건강보험통합은 당초 목적대로 국민상호간에 서로 돕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간 두 차례의 통합과정에서 고소득층은 보험료를 더 부담하게 되고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어들었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3분의1은 보험료가 인상되었고, 3분의2는 인하되었다. 물론 보험료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은 제외하고 건강보험통합효과만 볼 때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이 통합의 효과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의약분업, 의료보험수가인상 등 통합과 관계없는 요인이 겹쳐 보험료가 인상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더 잘 모르고 있다. 또 한편 보험료 부담이 줄어든 많은 국민들은 침묵하고 있는 반면 보험료부담이 늘어난 고소득층의 불평과 불만만이 부각되고 있다. 중산층이상의 우리나라 지도층의 보험료가 더 올라가고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에 빌딩을 가지고 한 달에 수 천 만원의 임대수입이 있는 사람이 월 보험료 몇 십 만원 내게 됐다고 불평이 대단하다. 서로 돕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와 사회연대에 기초한 건강보험제도의 목적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반면, 내가 아프지 않은데 왜 많이 부담하느냐는 현실적 이해타산만 계산하고 있다. 건강보험통합정책의 목적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의약분업정책도 당초의 목적을 달성해가고 있다. 의약분업은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약국에서 약을 마음대로 사 먹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약분업의 실시로 이 전통적 관행이 바뀌고 있다. 일종의 문화혁명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 의약분업의 의의를 잘 모르고 있다. 약을 마음대로 먹지 않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국민들이 잘 모른다. 그런데병원 갔다가 약국 갔다가 하는 불편은 쉽게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의약분업정책에 대한 국민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으로 손해를 본다던 의사와 약사들의 경우 대부분 수입이 증가되었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 정책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참여복지의 실천이 쉽지 않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 두 정책만이 아니라 복지정책은 모두 그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복지정책은 그 목적과 명분은 좋지만 막상 제도가 실시되고 나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가 실시되지 않을 때의 사회문제는 잊어버리게 되고 제도실시전후의 차이를 모르게 된다. 복지정책이 실시되지 않을 때 국민들이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것,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생길 수 있는 국민 개개인의 화병, 가정불화, 국민계층간의 갈등, 불신, 그로 인한 사회불안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가마득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참여복지를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이러한 성격을 어떻게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지정책은 국민상호간에 서로 돕는 것이기 때문에 재분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부담이 늘어나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집단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집단은 어려운 국민을 서로 돕자는 명분에 대해서 수긍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담은 싫어한다. 득을 보는 것은 좋아 하지만 부담을 지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국민여론이 나빠지게 된다. 참여복지를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이러한 성격을 잘 이해하여 특히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국민집단을 이해시키고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새 정부가 이념으로 내세운 [참여복지]의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형성, 결정, 집행, 시행의 전 과정에서 국민의 진정한 참여와 이해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정책과정에서 국민의 참여와 충분한 토론 그리고 동의가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의 예에서 배운 것은 정책결정을 국가적 아젠다로 부각시켜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이야기했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이슈화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역할과 함께 그 과정을 잘 수행하는 책임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차흥봉 /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hbcha@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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