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7-06   1271

실업계고 현장실습,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교육이 아니라면 폐지되어야 할 것

공업고, 상업고, 농업고 등 전국 8백여 개 실업계 고등학교에 60만 명의 학생들은 3학년 2학기가 되면 이들 중 대학진학을 생각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기업체에 “현장실습”이란 것을 나간다. 현장실습. 참 좋은 말이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그간 배우고 익힌 “기술”을 직접 노동현장에 나가 실습해 보면서 새롭고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산학협동이란 미명 아래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지난 60년대 이후 현장실습이 자기 이름에 걸맞은 본래 취지대로 실행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현장실습제도가 지난 30년이 넘도록 교육적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저임금 단순기능인력 수급”의 한 방편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사회적 무관심과 현장실습이라는 제도하에 실업계고 학생들은 이중, 삼중고의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

산재, 성희롱, 구사대 동원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현장 실습을 나간 아이들이 받는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일례로, “99년 광주에서는 공고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배합사료를 만드는 기계를 설치해주는 제조회사에 실습을 나가 용접을 하다가 폭발사고로 전신의 40%가 2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6개월 동안 입원치료비 300만원 정도가 소요됐지만 회사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단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고, 화상 때문에 군대에도 입대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7월, 같은 직장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고 있는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원주경찰서에서는 휴양시설 지배인 이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씨는 새벽 2시께 5일전부터 실습생으로 일해온 K(여·19)씨에게 전화를 걸어 직장회식이 있으니 나오라고 불러내 술을 먹인 후 강제로 단계택지 내 여관으로 끌고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충청남도에 있는 한 회사에서는 2002년 7월에 파업이 발생하자 현장 실습중인 학생들을 “구사대”(회사살리기대책위원회)로 동원하기도 했다. 경찰들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쫓겨났던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을 시도하자 회사측은 실습을 해야할 학생들을 동원해 이를 가로막았다. 회사측은 교육받아야 할 학생들을 노동조합 파괴에 활용한 것이다.

이 외에도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의 피해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학교의 파행적 제도운영

다른 고3들이 입시준비로 한창일 때, 왜 10만의 실업계고 학생들이 학교교육도 제대로 다 배우지 못한 채 기업체에 나가서 냉장고 문짝 달기, TV브라운관 조립, 사무보조 등 단순노동인력으로 사용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먼저 학교의 파행적 현장실습 운영에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과 교육인적자원부 훈령인 각급학교현장실습운영에관한규칙에 의하면 현장실습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적게는 34시간에서 많게는 6개월까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진 현장실습에 해당하는 이수단위를 초과하여 편법적으로 운영, 학기초부터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3학년 때 배워야 할 교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 졸업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현장실습이 “취업”을 전제로 진행되어 한번 실습(취업)을 나가면 학교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의 3학년 수업은 거의 1학기로 마무리되어 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실업학교의 특성상 3학년에 집중적으로 편성된 전문교과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기업체로 진출하여 “실습” 이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수업시간의 부담이 적은 3학년 학급 담임이나 교과담임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1학기나 여름방학부터 실습을 나간 학생들은 수업을 받지도 않은 채 시험을 치르고, 평가를 받는 기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2학기 기말고사가 마무리되는 9월말부터는 정상적인 교육활동은 중단되고 만다. 더 이상 평가받을 것이 없는 학생들이 학과 수업에 참여할 의지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이 아닌 노동과정

현장실습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현장실습 제도가 “실업계고교생에 대한 현장적응력 신장 및 다양한 직업체험”이라는 본래의 교육적 목적을 상실한 채 실시되고 있어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상관없는 업무를 하거나, 기업체에서 실습교육과정에 대한 교육이 없이 곧바로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현장실습은 이미 교육이 아닌 엄연히 노동과정인 것이다. 실제로 실습기간이 끝나면 실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 교사, 학부모, 관계부처, 해당 기업 그 어느 쪽도 “사실상의 취업”인 현장실습을 “교육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저임금에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으며 직장내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학교에서는 이들에게 “열심히 참고 근무하라”는 말밖에 특별한 지도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현장실습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되고 그 중의 몇몇 학생들은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고 학교에도 등교하지 않는 문제학생의 형태도 발생한다.

이렇듯 현장실습제도로 인해 대부분의 실업계고등학교 3학년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실습현장에서의 여러 문제가 오랫동안 불거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있음에도 현장실습은 학생, 교사, 기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교육당국의 무관심

현장실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교육당국은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와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청구 등 자료조사에 의하면, 작년 한해 많은 학교에서 정해진 이수단위 이상의 현장실습을 허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현장실습의 시기 또한 규정과 달리 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2003년 올해에도 학교장의 묵인하에 일부 지역에서는 학기 초부터 아이들을 산업체에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실습의 기간과 시기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이유로 실제 현장실습이 정해진 규정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은 공식적으로 실업계 학생들에게는 현장실습이 필요한 만큼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시키더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밝혀져, 과연 제도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낳고 있다.

법률의 문제

현장실습의 근거 법률인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의 문제도 크다.

먼저, 현장실습제도가 교육이 아닌 조기취업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통제장치가 없다. 즉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현장실습을 교육이 아닌 단순한 노동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통제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현장실습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고, 노동부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이를 권고하고 있을 뿐이며, 산업체의 장에게 몇 가지 협조사항을 당부하고 있는 소극적인 배려를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둘째, 현장실습생의 노동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어 노동보호가 부재하다. 현장실습생이 산업체에서 노동을 할 경우 노동시간, 임금 기타 근로조건에 관하여 어떠한 제한과 보호를 받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사실 직업교육법은 ‘현장실습생은 교육생이고, 근로자가 아니며 실습생이 노동을 하더라도 이는 교육의 일환이므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태도를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현장실습 감독 및 제재장치가 부재하다. 현재 현장실습생의 교육권, 노동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산업체, 학교 등에 대한 감독시스템이나 제재장치가 없다. 현장실습생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근로관계인지 여부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고, 실제 산업체에서는 정규직과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이상, 현장실습생의 노동보호에 관한 법률규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실습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거나 또는 현장실습생에게 노동을 하게 하면서도 헌법 또는 근로기준법 등이 정한 최저한도의 기준도 준수하지 않는 경우, 표준협약인 현장실습계약이 준수되지 않는 경우 등에 대비하여 일상적으로 현장실습의 운영과 실태를 파악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을 법률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는 현장실습산업체 선정에 있어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 확보가 어려운 점, 현장실습 시행 산업체에 대한 지원제도의 부재, 현장실습계약의 문제 등이 산재해 있다.

실업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현장실습 폐지해야

이제 곧 2학기가 되면 또다시 10만여 명에 이르는 새로운 실습생들이 “자랑스러운 산업역군”으로 추앙받으며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의 위험이 도사리는 산업전선에 뛰어들 것이다. 그 동안 파행적으로 운영된 현장실습의 운영방식에 산업체와 학교들이 모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현장실습의 여러 폐단은 부분적은 보완책만으로는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실업계고 학생들이 정부·학교당국·기업체의 편의에 따라 조기취업의 형태로 저임금 단순기능인력으로 버젓이 운용되는 현장실습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한 실업교육은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지금도 편법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조기취업을 강력히 규제하고, 아울러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단순한 노동의 체험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체험교육을 통하여 보다 효과적인 직업교육이 실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다혜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wholeheart@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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