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2-10   1722

소외계층의 문화적 향유와 저소득 예술인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국장](무대뒤에서) 얘. 우리 이쁜이 어딨니?

[미선](무대감독에게 커다란 소리로) 도저히. 더는 도저히. 너무 빨라요. 서로 쳐다 볼 시간도 없어요.

(울음이 터진다. 왼쪽 무대조명 희미해진다. 미선 엄마 사라진다.)

[미선]몰랐어요. 모든게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데려다 주세요. 산마루 제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한 번만 더 보고요.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마을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눈물을 흘리며 무대감독을 향해 불쑥 묻는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 마다요.

[무대감독]없죠. (잠시 사이) 글쎄요, 성인들이나 시인들이라면 아마.

…(중략)…

[미선](지휘자에게) 괜히 갔었어요.

[지휘자](점점 격렬하게 신랄하게) 그래요. 이제 아셨군. 산다는 게 그런 거였소. 무지의 구름속을 헤매면서, 괜히 주위 사람들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하고, 늘 이기적인 정열에 사로잡히고. 그래, 행복한 생활이란게….

<손튼 와일드 원작, 주진홍 연출, 연극 “우리읍내(Our Town)” 중에서>

‘우리읍내(Our Town)’는 미국의 극작가 손튼 와일드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 작품은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막은 탄생과 성장을 주제로 마을의 풍경이나 두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모습, 가정에서 가족간에 이루어지는 대화 등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여준다. 제 2막은 결혼을 주제로 두 가정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과정을, 제 3막은 죽음을 주제로 나이가 들어 죽은 아내가 살아생전의 일상적인 생활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즉,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1막과 2막을 통해 관객들은 지난 과거의 우리네 모습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된다. ‘그런 시절이 과연 있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까맣게 잊혀졌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과 코흘리개 친구들을 생각하게 한다. 3막에서는 죽음을 통해 되돌아보는 과거에서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 10월 21일 대전광역시청 대강당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우당탕퉁탕 시끄러운 분위기에 정신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선 지팡이를 짚으며 설레는 마음을 가눌길 없어 희망에 가득찬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어르신들로 시끌벅적하다. 시청 대강당 입구 로비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활기를 띄었다. 출입구는 입장을 앞두고 각 단체별로 좌석배정표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양쪽 출입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어느새 600여석의 공연장은 좌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열기가 가득하였다. 행사는 대전광역시 자원봉사합창단 어머니들의 합창을 시작으로 작은음악회가 시작되었다. 트럼펫과 아코디언의 연주는 어르신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었고, 정열적인 가수들의 노래는 공연장 찾은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후 열린 2부에서는 꿈을 나누어 드리는 마을 ‘우리읍내(Our Town)’ 연극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손튼 와일드 원작의 연극을 1970년대 대전 부사동 보문산 자락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지역사회 가족복지극이었다.

이 날 행사는 소외계층의 문화적 향유와 저소득 예술인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열려진 특별공연으로 대전지역 아동복지센터의 아동들과 저소득지역 주민과 학생들, 노인 ㆍ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우리읍내 공연은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서 복지마을 ㆍ 생태마을 공동체의 아름다운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문화예술인과 저소득 소외계층이 함께 연극 공연을 만들면서, 전문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생활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되찾게 하고자 ‘좋은지역사회만들기’에서 기획하고, 꿈을 찾아드리는 극단 ‘드림’에서 제작하여, 대전지역 11개 시민사회복지단체가 참여하여 만들어진 연극공연으로 지난 10월 18일부터 30일까지 대전세이백화점 아트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연한 작품이다.

2003년도 문화향수 실태조사(문화관광부, 2003)에 따르면 예술행사 연간 관람률이 전체 4.47회에 비하여 100만원 이하 저소득계층 가구의 관람률은 0.92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1>.

<표 1> 예술행사 연간 관람률 및 연평균 관람횟수

-생 략

또한, 전체적으로 예술행사에 참여하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은 ‘시간이 없다’로 나타나고 있지만,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계층의 경우는 ‘비용과다’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2>. 따라서 저소득계층이 예술행사 참여율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표 2> 예술행사 관람시 애로사항

– 생 략

지금까지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는 주로 보호대상자 또는 재활대상자로 소극적으로 다루어져 왔으며,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은 최근에 이르러 시도되고 있다. 생계조차 곤란한 저소득 계층이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문화생활 욕구충족은 인간다운 삶으로 가는 가장 기본 조건이 되므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향유권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문화사업’,‘저소득층 지역의 문화학교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ㆍ 운영하여 저소득 및 소외계층의 문화향수를 증진하고 있으나, 전체 저소득층의 문화수요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03년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문화관광부, 2003)에 따르면, 예술인의 87.5%가 예술활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낮다고 응답하고 있다. 예술활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있는 경우에도 예술인의 68.8%가 창작 관련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인들이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하여 사회보장제도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항목을 알아 본 결과, 의료비 지원, 은퇴 후 소득지원, 질병 시 소득지원 등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이는 일상적 생활지원보다 소득이 중단될 수 있는 위험상황에 필요한 지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사회적 일자리는 기존의 노동시장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자리라 할 수 있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취약해지는 지역주민들의 복지, 문화, 교육, 환경 등 삶의 질을 재고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성격을 갖는다. 또한 사회적 일자리는 사람들의 참여와 민주적 운영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 지배에 기초한 사기업과 달리 노동하는 사람들의 협동과 자치에 기초한다.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는 유급노동과 봉사의 결함, 이윤추구보다는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정부와 일부 지자체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을 문화예술인의 생활여건 개선과 연계하여 전개하여 왔다. 2004년부터 실업극복국민재단(이사장 강원용)이 수행하는 ‘신나는 문화학교’, 2004년 3월에 저소득층 문화향수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출범한 문화복지 사단법인 열린문화(이사장 김성수)의 문화적 소외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국무료순회 연극공연, 2004년 12월에 출범한 부산 을숙도교향악단의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 등은 노동부의 청년고용촉진장려금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한시적 지원이나 예산 부족 등으로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의 문화복지 서비스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전지역내 예술창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예술가 중 공연의 대중화 및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특화된 문화복지 자활근로사업단의 설립이 대두되고 있다. 문화복지 자활근로사업단은 저소득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창작활동을 지속하게 하고, 자활공동체를 형성하여 연극인들 스스로 생활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뿐만아니라, 찾아가는 문화복지 서비스를 통해 소외계층의 문화적 향유와 참여기회를 제공하고, 소규모 공연문화 보급과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끝.

임재현 / 좋은지역사회만들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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