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조직 통합 연기 논리의 허구 (표빠짐)

의료보험통합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1999년 1월 의료보험통합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의 국회통과는 10여 년 이상 끌어온 의보통합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를 중심으로 시작된 의보통합반대 운동을 빌미로 정부는 의료보험조합의 조직통합을 6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의보통합의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이 글에서는 의료보험조직 통합연기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보험 조직 통합과 관련된 사실의 이해

의료보험통합이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2년 동안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보험통합이 서로 다르게 이해되기도 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보험통합 반대세력은 이런 오해를 이용해서 잘못된 주장을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보험 조직통합 연기의 논리를 살펴보기 이전에 의료보험통합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다(〈표 1〉참조).

의료보험의 1단계 통합은 1998년 10월 이루어졌다. 이때 227개의 지역의료보험조합(이하 지역조합)과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 공단(이하 공무원 공단)의 조직이 합쳐져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만들어졌다. 227개 지역조합의 재정은 하나로 합해졌으나 공무원공단과는 별도로 운영되었다. 140개 직장조합은 조직과 재정이 별도로 운영되었다.

2단계 통합은 2000년 1월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40개 직장조합의 조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할 것이다. 공무원공단과 직장조합의 재정은 통합하되, 지역가입자의 낮은 소득파악률을 감안해서 지역가입자의 재정은 2002년 1월까지 별도로 분리 운영할 예정이다.

3단계 완전한 통합은 2002년 1월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때에는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재정도 통합하는 완전한 통합일원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의료보험통합 연기논리의 문제점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 연기 논리의 문제점

의료보험통합 연기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집단은 한국노총과 직장의료보험노동조합(이하 직장의보노조)이다. 이들은 의료보험조직통합을 2년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영자의 소득파악 미흡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자영자의 소득파악률이 낮기 때문에 의료보험조직통합을 하면 2000년부터 직장가입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료통합 단계를 잘 생각해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더라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자영자)의 재정통합은 2002년에야 이루어진다. 따라서 2000년에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이 안되어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는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2000년에 '봉급생활자'의 보험료가 49% 인상된다는 거짓 선전으로 서명을 받았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자간 보험료 형평성은 2002년이 되어야 문제가 될 수 있다. 직장의보노조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재정통합'의 연기가 아니라 '조직통합'의 연기이다.

이들은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 때문에 의보통합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고용문제' 때문에 의보통합을 반대하는 것이다. 직장조합의 대표이사와 재벌 등은 자신의 자리보전과 적립금의 자의적 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장의보노조의 배후에서 의보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의보통합 과정에서 직장의보조합 종사자의 고용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법에도 고용승계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용문제를 빌미로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조직통합 연기 논리의 문제점

정부는 1999년 10월 9일 당정협의를 통해 의보조직 통합을 6개월 연기해서 2000년 7월부터 시행한다고 결정하였다. 정부·여당이 의료보험조직통합의 연기를 결정한 1999년 10월 9일을 기점으로 정부가 발표한 논리를 검토해 보자.

정부는 전산망 통합 문제, 보험료 부과의 혼란,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지연, 직장의보조합의 자료 비협조 등 실무적 이유를 의보조직 통합 연기의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먼저 전산망 통합 문제는 연기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2000년 1월에는 현재 직장의보의 전산망을 연결해서 사용하고, 2000년 이후에 새로운 전산기기를 도입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2000년 통합시 전산망과 관련된 문제는 없었다.

보험료 부과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다. 지역의보의 보험료 부과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고(현재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소득단일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으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는 현행대로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음), 직장의보도 보험료 부과소득만 변동되고 보험료 부과방식은 현재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보험료도 보험료 고지서 발급없이 월급에서 원천 공제되므로 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지연도 사유가 될 수 없다. 정부가 국회에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한 시기가 1999년 9월 21일이며, 정부는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9월말까지도 2000년 1월 시행을 위한 실무준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던 정부가 10여 일이 지난 10월 9일에 '실무적 준비'를 이유로 조직통합 연기를 결정한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당시 국회에서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야당인 신한국당이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을 수정없이 통과시켜 주려고 하는데도 집권여당인 국민회의가 이를 거부하였다. 국민건강보험법안 개정안의 통과를 지연시키라는 지도부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국회의 법안 통과지연을 의보통합 연기의 이유로 삼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주장이다.

직장의보조합의 자료 비협조를 통합연기의 이유로 드는 것은 정부가 자신의 직무유기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직장의보조합이 직장의보노조의 압력과 협박 때문에 의보통합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국가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관청인 보건복지부 내부의 조합주의 관료들이 이들을 비호하고 직무유기와 직무태만을 한 것으로 의보통합 연기 이전에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의 반대 때문에 의보통합 과정이 지연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정부 스스로 의보조직 통합 연기가 실무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유 때문임을 인정한 것이다. 의보조직 통합 연기라는 정치적 결정이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이라면 굳이 이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정책이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보조직 통합연기가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는 데 있다. 의보조직 통합은 불필요한 관리운영비를 줄여서 이를 의료서비스 확대로 국민에게 돌려주며, 직장조합간 보험료 부담의 불공평성을 개선해서 고소득 근로자가 저소득 근로자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이해당사자의 반대를 이유로 의보조직통합이라는 개혁을 포기하는 것은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이익을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여당이 의료보험조직통합을 연기하는 진짜 이유는 내년 총선에 한국노총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 국무회의에서 의보조직 통합 연기가 '실무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임을 밝힌 데서 잘 나타난다.

나오는 말

의보조직 통합 연기는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의 조직보전과 관리운영비 절감, 공평한 보험료 부과, 의료보험 적용수준의 향상을 맞바꾼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의 정부'가 아닌 '기득권세력의 정부'임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이런 정책결정이 허위사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민 다수가 의료보험통합을 반대하는 서명을 했기 때문에 통합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수의 주장에 근거한 정책결정은 더 많은 다수의 주장에 의해서 뒤집어질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정책이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적 원칙에 근거해 결정될 것임을 인정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노총이나 직장의보노조의 주장과는 달리 국민은 '의보통합 반대'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은 '공평한 보험료 부담'을 원하며 이는 조합방식으로의 회귀가 아닌 완전한 의보통합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조홍준 / 울산의대 교수, 건강연대 의료보험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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