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4-15   4970

[심층분석4] 장애인 이동권의 현황과 과제

장애인 이동권의 현황과 과제

 

남병준 ㅣ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교육실장

 

‘장애인이동권’이란

 

2001년 1월, 오이도역 수직형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은 억눌렸던 장애인들의 분노를 크게 자극했다.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열차를 막아서고, 몸에 사슬을 걸고 버스를 점거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천막농성과 단식농성에 이르기까지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의 시위는 몇 년 동안이나 강력하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요구는 ‘장애인이동권’ 보장이었다. 이동권이 누구 이름이냐고 묻는 시민들이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무척이나 생소한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어사전에 ‘이동권’이란 말은 없었고, 확대해석하자면 중증장애인의 권리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 현실이기도 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정식명칭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의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예산과 설계상의 문제, 구조상의 문제 등 온갖 이유로 불가능하다고만 이야기되었던 각종 편의시설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행환경 개선, 공공시설 접근성 개선 등 거리 모양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3년에는 국립국어원에서 ‘이동권’이란 단어를 ‘신어’로 수록하기에 이르렀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기본권 중에서도 기본권이라 불린다. 장애인이 물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집밖에 나가기도 어려운 환경이라면, 자립이니 사회통합이니 하는 따위의 가치들이 그림의 떡일 것도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의 주요 내용

 

수년간의 장애인이동권투쟁은 2005년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에관한법률’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법에서는 국가 및 지자체로 하여금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행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포함한 5년 단위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이 법의 목적과 내용은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정부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영유아동반자 등 전체 교통약자는 총인구의 약24%나 되며 이중 절반 가까이는 고령자이다(국토해양부. 2011년 3월).

 

저상버스란 흔히 ‘계단없는(non-step) 버스’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버스 차체가 낮고 계단이 없고 휠체어 탑승을 위해 경사판(slope)이 부착된 버스이다. 최근 대도시에서는 어렵지 않게 버스도착 안내판 등에서 ‘저상버스’라는 표시를 볼 수 있고, 시내를 달리는 버스 중에 휠체어마크가 달린 노란색 기둥의 저상버스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의 취지는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를 일정부분 도입한다는 것에 있지 않고, 고령자 등 전체 교통약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버스를 도입한다는 데에 있다. 최근 각 지자체와 언론 등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며 예산낭비 운운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저상버스의 보편화는 고령자를 비롯한 전체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교통수단은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탑승설비 등을 장착하여 운행하는 차량’이라 규정되어 있다. 각 지자체에서는 조례에서 특별교통수단의 이용대상을 1,2급 장애인 및 65세 이상 고령자 중에서 버스, 지하철 이용이 어려운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다. 법 시행규칙에서는 1급 및 2급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로 법정 의무도입대수를 규정하고 있다.

 

지켜지지 않는 법, 4대강에 파묻힌 장애인이동권!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고 그 규정에 따라 2007년 정부는 제1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2011년까지 저상버스를 전체 시내버스의 31.5%로 도입하고, 2011년까지 법정 특별교통수단의 45.8%를 도입하겠다는 계획 등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사실 애초에 지켜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정부가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중앙정부의 계획까지 수립하였지만, 도입의무는 시장과 군수에게 있고, 실제 도입을 할 주체는 개별 버스운송사업주이다.

 

계단이 있는 일반 버스 구입비가 1대당 약8천만원이라면, 저상버스는 약1억8천만원인데, 개별 버스운송사업주에게는 그 차액 1억원을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5천만원씩(지자체에 따라 4천만원~6천만원 정도로 차등)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개별 버스운송사업주는 유지비가 더욱 비싸다는 등의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을 기피하고, 시장,군수 들은 사업주를 강제하기 어렵고 지자체의 예산부담도 크다며 법과 정부계획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정부는 최소한의 강제는커녕 오히려 노골적으로 4대강사업에 모든 예산을 들이부으면서 저상버스 도입예산을 크게 삭감하여,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도입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2010년말 국토해양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체 버스의 12.8%에 불과하며, 그나마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 등에 집중된 상황이다.

 

거꾸로 가는 인권의 시계, 커져가는 모순!

 

이명박정부는 제1차 5개년계획 미이행에 대한 어떠한 입장표명이나 분석도 없이 2012년 3월, 계획 자체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내용의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41.5%를 저상버스로 도입한다는 것인데, 제1차 5개년계획 수립당시 2013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도입한다는 목표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얼마나 후퇴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시 55%, 6대광역시 및 경기도는 40%, 8개도 지역은 30%로 차등도입 계획이다. 이는 이미 각 지자체의 계획을 단순 나열한 것에 불과하며, 지하철이나 도시철도 혹은 특별교통수단 등 다른 교통수단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높이 책정하고 저상버스를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군지역을 낮게 책정한 것은, 인권이나 국민의 편의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산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별교통수단은 2016년까지 100%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특별교통수단은 거대한 모순 덩어리이다.

 

특별교통수단의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위 표에서 2010년말 기준으로 전국 46.7%로 보고하고 있지만, 특별교통수단의 규정조차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통계자체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강원도의 경우 실제 특별교통수단은 10대도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지자체가 복지관 차량 등까지 임의로 특별교통수단으로 간주하여 발표한 것이다.

 

특별교통수단의 도입률이 지자체에 따라 다른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법에서는 시장,군수의 책임으로 도입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시행규칙에서 법정 의무도입대수를 정하였지만 정부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법 부분개정을 통해 도입비 일부지원의 근거를 마련하였지만 도입비보다 운영비 부담이 훨씬 큰 상태에서 지자체를 강제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재정이 열악한, 따라서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 더욱 특별교통수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군지역일수록 도입률이 낮다. 또한 그런 지역일수록 요금이 비싸고 운행시간은 짧고, 운행구간은 짧다. 지자체 예산부담의 논리가 장애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저상버스의 도입대수의 문제도, 저상버스 노선배정의 문제도 지자체의 예산과 장애인들의 투쟁의 힘으로 결정이 나는 구조이며,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그 편차가 극단적이어서 장애인들의 투쟁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더 많은 차량이 24시간운행을 하고, 요금도 버스의 2~3배로 저렴하고 시외운행 등이 보장되는 반면, 장애인들의 투쟁이 없었거나 힘이 약한 지역에서는 장애인특별교통수단이 한 대도 없거나, 있더라도 고작 하루 10시간 내외만 운행하고, 몇시간을 기다려 일반택시의 30%~50%의 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투쟁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공적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투쟁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장애인단체가 운영을 하는 경우도 많아 이권사업으로 인식되거나 장애인간의 갈등으로 왜곡되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한 과제

 

2012년부터 장애인이동권운동은 새로운 목표로 재조직되고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저상버스 100%도입, 그리고 특별교통수단 도입과 운영에 있어 정부와 도지사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버스가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버스이며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추세를 감안할 때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는 2016년까지 41.5%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차의 수령이 다해 새차로 교체하는(대폐차) 전량을 저상버스로 도입하여야 한다. 그러나, 개별 사업주에 따라 이미 상당비율을 저상버스로 도입한 경우도 있고 특정노선에만 집중된 경우도 있어 지자체에서 강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저상버스는 현실적으로도 100%도입, 즉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 도입방법이며, 이념적으로도 일정 비율로 만족할 내용이 아니며, 해외의 경우 많은 도시에서 버스의 90% 혹은 100%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만들라는 것이다. 또한 마을버스, 고속버스, 시외버스, 공항버스 등에도 저상버스를 도입하도록 법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시내버스를 제외한 마을버스, 고속버스, 시외버스, 공항버스 등에는 저상버스가 전무한 실정이며 법에서도 어떠한 규정도 없다.

 

특별교통수단은 현행 법에서 시장,군수의 책임으로만 되어 있어 재정이 열악한 시군단위를 전혀 강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의 운영비지원이 없는 관계로 그 운영방식이 지자체에 따라 천차만별인 실정이다. 대안은 선명하다. 정부가 운영비지원을 하면서 운영방식 등에 기준을 제시하여야 한다. 또한 재정이 열악한 시군에 대한 도단위의 지원 및 시군간 격차해소를 위해 도단위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도록 법에 명시하여야 한다.

 

장애인이동권 운동, 요구는 달라졌어도 원칙은 처음과 다름이 없다. 이동의 권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장애인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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