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4-15   2883

[심층분석7] 장애여성문제-이중차별, 취약계층, 보호의 대상이란 낡은 규정에서 벗어나기

장애여성문제-이중차별, 취약계층, 보호의 대상이란 낡은 규정에서 벗어나기

 

이진희 ㅣ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의 경험과 삶에 다가가기

 

장애여성공감이 장애인 인권운동도, 여성운동도 아닌 장애여성운동의 이름으로 활동한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지역생활 베테랑인 1호 회원부터 얼마 전 탈시설하여 아직은 걱정이 더 많은 중증지체장애여성 회원, 자조모임 활동으로 공감에 새로운 활력과 고민을 동시에 던지는 지적장애여성 회원까지 공감을 찾아오는 장애여성들이 가지는 차이와 욕구는 천차만별이다. 회원활동을 통해 만나는 장애여성들은 역동적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기대와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여성 대부분은 사회의 소통과 관계에서 단절감을 느끼거나 배제감을 호소한다. 또한 ‘장애여성은 약하거나, 불행하거나, 불가능하다’는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한다. 만약 장애여성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혹은 장애여성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장애여성들의 변화하는 모습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장애여성, 독자적인 장애여성운동

장애인+여성’ 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의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하거나 여성 혹은 장애인 둘 중 하나로 정체성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장애여성의 삶과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장애여성의 문제는 전 생애와 일상에 걸쳐 있기 때문에 장애와 성별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경험을 가진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관점이 필요하다.

 

장애여성운동은 장애인으로 환원하며 여성임을 부정하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 대항해서 장애여성도 여성임을 주장하면서 장애계와 장애인운동에 도전하고, 장애여성이 기존의 여성문제에서 사실상 빠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학과 여성운동을 비판하며 시작했다.

 

그동안 장애여성운동은 남성/정상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며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에 문제제기하고, 장애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장애여성의 몸, 속도, 차이, 성(sexuality), 독립, 폭력, 문화운동 등 다양한 주제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여성운동, 소수자운동, 인권운동 등과의 연대를 통해 접점을 찾고 장애여성관점, 장애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의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글은 장애여성공감에서 최근 집중했던 주요한 이슈와 활동들을 정리한 것으로, 한국사회 장애여성의 현실과 중요한 의제들을 살펴보고 과제를 공유하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폭력의 역사

 

장애여성의 폭력 문제가 세상에 심각하게(그리고 자극적으로) 드러났던 문제는 성폭력/가정폭력이었다. 2001년 강릉 음촌리에서 장애여성에게 가해졌던 7년간의 집단 성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2011년 영화 ‘도가니’를 통해 이슈화되었던 광주 인화학교 사건까지 장애인 성폭력은 지역사회, 학교, 생활시설 등 일상적 공간에서 지인들에 의해 빈번히 발생하고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장애인 생활시설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는 은폐된 공간에서 보호/피보호자의 위계관계에서 더욱 쉽게 발생하며 피해가 드러나지 않아 장기화 되고 가족이나 연고자, 생활시설 퇴소 후 주거대책이 없는 경우 피해사실을 알리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의 피해자의 70%이상은 지적장애여성이다.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성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관계망이 좁고 사람을 의심하거나 위험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가해자의 간단한 거짓말에도 너무 쉽게 속기 때문에 성폭력에 빈번하게 노출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들은 경제적인 자원이 없으므로 작은 돈이나 음식에도 쉽게 유혹되곤 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처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가해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성폭력을 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장애여성의 언어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 경험 역시 온전히 들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수사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를 경험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상담을 지원하는 상담활동가들은 발달장애여성의 언어를 경찰/검찰 수사과정에서 오염시키지 않는 것, 그녀의 진술을 인정받게 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어려움을 경험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아동․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력인’ 제도는 성폭력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오는 12월 19일부터 시행된다. 또한 피해자의 국선 변호사는 성인 피해자까지 확대시행될 예정이다. 이로서 의사소통이 힘든 성인 장애인 피해자들은 법률조력과 진술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 높아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 속에 국회와 정부차원의 새로운 지원 체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된다 해도 ‘발달장애여성의 언어를 잘 듣고 이해하려는 태도와 주체성을 인정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발달장애여성의 언어와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며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근본적으로는 피해에 대한 법률/의료적 지원을 넘어서 발달장애여성을 폭력/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며,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편견, 금지적인 시각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일상을 정치화하기

 

많은 사람들은 언론에 드러나는 심각한 성폭력/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로만 장애여성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장애여성은 장애차별에, 성차별까지 겹친 ‘이중의 차별’ 속에서 극심한 폭력에 놓인 가장 무력한 피해자로 묘사된다. 그러한 묘사는 단지 우리의 경험을 그저 피해로 놓아두고, 경험한 사람과 듣는 사람을 분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는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신이 행사하고, 당하는 폭력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할 뿐이다. 동시에 이러한 분리는 장애여성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인지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장애여성공감은 분위기 폭력, 공간침해 폭력, 매니저 폭력, 얼떨결 폭력, 언어폭력 등으로 장애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에 이름을 붙이고 정치화했다.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눈치를 보게 하며 알아서 내 욕망을 억제 하게 만드는 분위기 폭력, 장애여성의 휠체어 뒤에 손을 걸치거나 조이스틱을 함부로 만지는 것을 공간침해 폭력으로, 장애여성을 위한다며 모든 것을 대리/대행 하려고 하는 매니저 폭력,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던 얼떨결 폭력으로 얘기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불쾌한 경우인데도 장애여성이 알아서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했던 상황을 거부하며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문제제기하고 존중받고자 하는 요구였다.

 

장애여성,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장애인IL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독립의 문제는 장애여성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였으며 ‘장애여성의 독립’을 둘러싼 경험과 문제들은 장애인IL운동의 주요 이념인 선택권, 자기결정권의 주장들 속에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탈시설과 장애인 IL운동도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과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2009년 공감에선 ‘주거’ 공간에 대해 장애여성들이 가지는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장애여성 주거권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공간점유율, 공동주거형태인 경우 동거인과의 관계와 심리적인 갈등 문제,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감과 역할 분담 여부 등의 질문을 통해 집에서의 장애여성의 위치와 선택권/권한, 심리적 안정감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애여성들은 화장실사용에 있어서 물리적 불편함 외에 사생활 침해문제와 전체 공간에서 자기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 하였다.

 

장애인 운동의 탈시설 투쟁의 성과로 최근 몇 년간 서울지역은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등 주거 지원 제도를 통해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원치 않는 동료나 처음 만나는 낯선 이와 살아야하는 경우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집이 일반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라는 통념은 여지없이 깨진다. 실제로 주변에선 지원체계에 의해 공동생활형태로 살게 될 때 겪는 갈등을 무수히 목격하게 된다.

 

개인공간과 공동공간을 사용할 때 서로의 장애가 달라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 식단에 있어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 지역사회에 있지만 여전히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가장 많거나 활동보조인이 가장 친밀한 사람인 경우 등등. 어떤 공동생활가정은 지원금 규모에 맞추어 집을 고르다보니 좁은 엘리베이터 때문에 휠체어 발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독립생활 중인 장애여성들의 주거환경의 질이 온전히 담보되기 어려운 것이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경우엔 공간과 사생활 침해가 더욱 심하다. 자기 개인공간을 갖지 못하거나 있다고 해도 사생활을 보장받기 어렵거나 침범당하기도 한다. 또한 가족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장애여성에게는 비혼이 답이 되기도 어렵다. 중증장애여성의 경우 현재와 같은 활동보조 지원 제도 속에서 혼자 사는 것이 힘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결혼이나 생활시설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은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선 앞으로 장애여성 가족 구성 혹은 다른 대안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사실은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 ‘주체적인 관계와 심리적인 독립

 

독립하는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새로운 관계를 만나거나 기존의 관계에 대해 재설정해야 하는 필요와 욕구를 만나게 된다. 나를 불안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계들과는 맞서 독립을 쟁취해야 하고, 사회적 편견으로 나를 바라보며 선택과 결정을 제한하는 관계들과는 싸워서 자기결정권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 안에서 장애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관계와 조건은 많지 않다. 또한 물리적인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사회 경험의 부족, 처음부터 평등하지 않은 관계 설정 등으로 장애여성이 관계에서 당당해지거나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자원이 부족한 장애여성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기도 어렵고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사회에 장애여성의 일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과 자유로움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활동보조나 주거지원 제도를 활용할 때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거나 지원기관과 갈등이 생기기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장애여성에 대한 정책적 과제

 

이처럼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은 다양한데 정책이 이것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심리/관계적 차별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별 사안별로 모든 것을 제도화 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제도화 할 때 장애여성/장애인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정책적 관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법과 제도 안에서 장애여성을 위한 지원이 ‘여성’과 ‘장애’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정책/제도적 관점이 필요하다. 현재는 통합적인 관점 부족으로 장애인 복지 영역과 여성 영역에서 각기 다르게 정책을 관할하고 있거나 책임을 미루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변화하는 장애여성의 생애주기와 욕구를 반영한 정책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나이가 어린 학령기에 있는 장애여성의 경우는 교육의 권리 뿐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장애여성으로서의 자기존중감,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인인 경우는 조금 다른 지원이 요구된다. 성인 장애여성의 경우 제도권 교육에서 많은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고 이는 사회적 관계와 활동, 자원 구축을 많이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제도 교육을 받은 이후에도 집이나 시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사회와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회 단절을 경험한다. 따라서 성인 장애여성의 경우에는 단절된 사회적 관계 형성을 복구하고 자기존중감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서 살아온 장애여성과 오랜 시간 생활시설에서 살아온 장애여성이 필요로 하는 지원과 욕구는 다를 수 있고, 그를 반영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12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위기 40-60대 고위험 장애여성에 대한 삶의 질과 필요한 정책에 대한 연구와 같은 형태가 조금 다양해질 필요가 있으며 장애여성의 삶에도 생애주기와 욕구에 따른 교육/이동/ 주거에 대한 대책들이 전반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모성권, 가사 지원에 집중한 서비스만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의 확대가 필요하다. 여성장애인 지원 사업 현황을 보면 가사도우미, 홈헬퍼 파견사업, 양육지원 서비스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가사노동과 양육이 많은 부분 장애여성의 몫으로 부여되고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장애여성의 모성권은 존중받아야할 권리이지만 지나치게 모성권과 가사노동에 집중한 서비스는 장애여성의 다른 삶의 문제들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은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한 정책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장애여성은 성적자기결정권, 교육권, 노동권, 주거권 등의 다양한 권리를 가진 주체이이다. 하지만 장애여성을 ‘취약계층’이나 ‘복지의 대상자’ 혹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장애여성의 주체성을 방해하고 존중받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의 현실적 조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권리를 주장하고 제도화 하는 노력과 과정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모두 제도로 해결하긴 어렵다. 때로는 오히려 서비스의 대상으로 우리의 삶을 갇히게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장애여성이 자기 존중감을 지키며 자신의 삶에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정책과 제도를 만들 때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애여성의 자율성과 역동, 욕구와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제도와 정책은 결국 우리를 다시 제도의 수혜자로 가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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