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12-01   948

[복지칼럼] 거주자로서의 권리. 마치지 못한 세계화 시대 대안적 시민권 이야기

거주자로서의 권리. 마치지 못한 세계화 시대 대안적 시민권 이야기

 

최혜지 l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존엄한 삶을 인간에게 부여된 천부적 권리로 인정하는 천부인권은 인간의 삶의 질과 관련된 다수의 사회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토대이념이다. 그런데 인권은 적용범위의 광의성과 추상성 때문에 사회정책의 정당성을 견고히 하는 토대이념으로 작동하기보다 정교한 논리가 빈약한 순간, 방어적 이념으로 동원된다. 

 

그러나 지극히 당위적인 인권이념은 논리의 밀도를 떠나 모든 사회정책의 궁극적 지향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다. 세계화 시대 시민권 모델의 규범적 틀과 정당성 또한 인권을 중심에 둔 초국가적 담론으로부터 도출된다. 시민지위와 결부되어 권리로 정의되던 것들이 인간지위에 기초해 정당화되는 권리로 변하고 있음이다.

 

롤스는 인간은 인종, 성별,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무엇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보편적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주장한다. 롤스는 저작 ‘만민권’에서, 정치적 다중성에 따라 시민은 한 국가의 일원이자 국제사회의 만민이라고 상정한다. 롤스에 의하면 세계시민으로서 만민은 정의로운 정치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만민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상호간에 존재한다. 롤스의 만민권은 일국가적 영역에서 개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될 수 없는 보편적 권리를 갖는다는 시민권적 권리를 초국가적 범위로 확대한다. 

 

롤스의 만민권은 민족적 단일성에 기반 한 마샬의 시민권 이론을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변형에 맞추어 확장할 수 있는 이념적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국가 경계를 넘어 세계시민이라는 범인류적 차원에서 국적을 초월한 인간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거주권의 이념적 근간을 제공한다. 

 

거주권은 시민의 지위에 부여된 공민권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거주자의 인간지위에 결합시킴으로써 인권보장의 국적 제한적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즉 거주권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국적 초월적 시민권의 일 유형이다. 거주자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는 거주권의 초기적 형태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국제인권협약과 영주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비국민인권선언’은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거주국은 건강보호, 의료보장, 사회보장, 사회서비스, 교육, 휴식 및 여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취업국에 거주함으로써 겪게 되는 비국민으로서의 위험으로부터 이주노동자와 가족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다. ‘이주노동자국제협약은 취업국이 이주노동자와 가족의 사회보장에 대해 자국민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권고한다. 이주노동자국제협약은 1990년 제안 된 후 2016년 현재 48개국이 가입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미가입국이다. 

 

영주권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외국인에게 당사국에서 영주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리이다. 영주권은 준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거주자의 지위에 기초한 시민권의 개념을 구축하는데 유용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영주권 도입과 영주권자의 지방선거권 인정으로 거주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정부로부터 영주자격을 부여받은 외국인은 2016년 7월 현재 118,553명에 이른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에서 우리나라는 영주권자와 일반 거주 외국인을 동일하게 처우한다. 사회보장협정에 따라 외국인은 우리국민이 외국인 국적국의 국민연금을 적용받는 경우에 한해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가입대상이 된다. 외국인 근로자나, 3개월 이상 거주했거나 거주할 것이 명확한 외국인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업무상 재해를 당한 외국인 근로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 외국인 중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 신고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기초연금 수급권이 부여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은 제한적이나마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수급자 선정기준을 충족하고,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의 자녀를 임신했거나, 대한민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거나, 배우자의 대한민국 국적인 직계존속과 생계 또는 주거를 같이 하는 경우 수급자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초연금과 공적부조 수급권은 대한민국 국민과의 결혼을 전제로 한다. 존비속의 대한민국 국민을 부양하거나 돌보는 경우에 한해 공적 부조의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의지이다. 거주에 기반 한 권리이기 보다 사회적 기여에 대한 보상이다. 

 

따라서 영주권과 일반 거주 외국인이 현재 누리는 시민적 권리가 세계화 시대의 대안적 시민권, 즉 거주권으로 갖는 한계는 크다. 무엇보다 영주권은 시민권의 주요 요소인 정치적 권리가 제한되어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는 45개국, 국정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는 4개국에 불과하다. 때문에 영주권을 대안적 시민권으로 고려하는 것은 주변화 된 지위를 이상적인 상태로 오도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일반 거주 외국인에 대한 시민적 권리의 보장은 거주의 합법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미등록 외국인의 만민적 권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이다. 그러나 세계화에 따른 공간과 경계의 유동성은 국적에 목 맨 일국적 시민권의 한계를 조롱한다. ‘우리’의 질적 변화를 담아내는 대안적 시민권 찾기가 미룰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시민의 권리를 국민을 넘어 거주자의 권리로 확대한 거주권은 대안적 시민권 찾기의 지난 할 여정에 의미 있는 첫 디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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