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5-15   400

[복지동향175호] 편집인의 글

편집인의 글

엄규숙 ㅣ 경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18대 대선 전후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는 여야 모두에게 뜨거운 관심사였고 정책경쟁의 주된 분야 중의 하나였다. 앞 다투어 무상보육을 약속했고 어려워진 서민의 삶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복지확대를 이루겠노라 현장을 누비며 약속을 쏟아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우리의 ‘가족적’ 감성코드를 자극하는 발언까지 하며 이같은 복지정책 경쟁에서 본인의 입장을 피력하였는데, “열 아이 굶기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복지가 필요한 요소요소를 보살피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사실 복지란 것이 따지고 보면 어떤 처지에 있는 개인이든지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에 그 위험을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고도 해쳐나갈 수 있도록 지탱해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집적된 결과라 여겨진다. 따라서 복지가 발달한 국가에서 국가의 역할이 가부장적 지배와 통제보다 보살핌과 돌봄, 사회적 약자에 대해 지원하는 다양한 기제를 확대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이를 우리가 복지국가라 부르고 있다. 복지국가가 형성되는 초기에 국가의 공적 책임이 남성가장의 소득능력을 보완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최근 들어 가족의 돌봄 책임을 완화하고 생애주기별로 생겨나는 다양한 욕구에 대한 돌봄과 서비스를 확대해가는 복지국가의 질적 변화를 많은 선진국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사회도 두 차례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저출산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등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강도도 매우 높아 복지국가에 대한 욕구의 분출은 보수정당에서도 더 이상 좌시하기 어려운 것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것이 아마도 지난 대선을 전후해 보편적 복지와 관련된 담론을 여당이 상당 부분 수용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국가가 아닌 ‘열 아이 굶기지 않는 어머니 같은’ 국가의 역할이 과연 수행되고 있는지 또 그 역할을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처한 다양한 문제의 지형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가족정책의 주체가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눠져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가족복지 전달체계의 개선을 통해 해결하자는 제안, 결혼이주자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의 협소함을 넘어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짚어보았다. 아울러 여전히 부양의무자라는 기준으로 남아 있는 사회복지의 보족주의적 궤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 1997년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가정폭력이 실질적으로 근절되기 위해 필요한 조처들에 대한 제언도 담아보았다. 남녀 모두에게 일·가족 양립이 가능하려면 OECD 최장시간노동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면서 육아와 관련된 각종 휴가 및 휴직 제도, 이를 수반하는 현금급여 및 서비스체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함께 실었다. 심층분석의 글들은 가족과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이 단순히 ‘사적인’ 가족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고 국가적 과제임을 절감하게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사회적 돌봄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최근 조치들이 “열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같은” 국가 책임을 역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생긴다. 무상보육이 아동의 권리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이를 집에서 양육할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와 결부된 것으로 치부되면서 양육수당이 지급되고, 같은 맥락에서 손자녀를 돌보는 조모에 대한 손자녀 돌봄수당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돌봄을 떠맡는 어머니 같은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 쥐꼬리만 한 생활비를 주면서 알아서 기르라고 가족의, 엄마의 책임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국가의 모습이다. 여야가 명실공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보육을 실현하기 위해 국비지원을 늘리고자 하는 법안은 육 개월 째 국회에서 표류되고 있어 지자체마다 사정을 다르지만 올 해 중에 무상보육 실현에 필요한 예산 고갈을 앞두고 있다. 심지어는 민간어린이집에 대해 담당공무원의 감독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제출된 법안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압력으로 폐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씁쓸한 보도도 눈에 띈다.

 

복지의 다른 분야와 관련된 소식들도 복지확대에 대한 公約이 空約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진주의료원이 폐원되면서 돌아가신 환자분들의 소식이 들리고, 국민연금재원을 기초연금으로 쓸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부터는 임의가입자의 탈퇴가 급증하고 있다. 동향에서는 공공의료원이 왜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중요한지 짚어보았고, 3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기반으로 향후 국민연금의 개혁방향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편집인의 글을 준비하며 가장 가슴을 친 글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하는 글이었다. 80년대의 도가니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기억을 붙들고 기억하고, 피해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서술한 글 속에서 인권과 복지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이 돌직구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왜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사회복지를 한다는 것이 단순하게 특정한 정책이나 서비스에 대해 천착하는 것만이 아니고 사회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적 연대와 사회권의 신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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