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제이션과 글로벌리티

한국 사회에서 근 4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압축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대외적으로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와 더불어, 대내적으로 견실치 못한 천민적 자본 축적에 의한 성장의 한계로 나타난 1997년 말 경제위기는 IMF 관리체제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분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량실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즉 1997년 12월 외환위기와 이에 대한 IMF 구제금융신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제적 위기상황은 하루에 수천 개 기업의 부도, 한 달에 만 명도 넘는 실직자들의 양산, 치솟는 물가 등으로 빈민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IMF 관리체제에서 경제위기는 중산층의 몰락에 의한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통계청이 1998년 9월에 발표한 “도시 근로자 3천6백 가구 소득조사”에 의하면 소득별로 5계층을 나누었을 때 하위 80%의 소득이 1997년 상반기에 비해 5.5% – 14.9% 감소하였는데, 하위층으로 갈수록 더욱 감소하였다.

반면에 상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2.3% 증가하였다. 이는 고금리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상위계층일수록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한 연유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상들을 보면, 우리 사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양극화된 “20 대 80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 책임에 대한 공방이 우리 국회 경제청문회에서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지구의 또 다른 한 곳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멕시코 및 28년만에 실업률 4.3%로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방문을 하여 시장법칙과 사적 이익을 유일한 매개변수로 간주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비난하면서 소외당하고, 차별 당하고 있는 이웃의 아픔에 주목할 것을 무섭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 또 유럽의 한 곳에서는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로 나타난 세계화의 문제 해결을 위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는 지난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1주일 동안 세계경제포럼(WEF)이 개최되었는데, 개막 전야에 내린 눈발만큼 많은 말들이 분분하게 오고 갔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 포럼의 주제는 “책임을 가진 글로발리티(responsible globality)” 이었다. 지금까지 중요한 화두이자, 흔히 세계화라고 번역되던 글로발리제이션(globalization) 대신 글로발리티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왜 굳이 글로발리제이션 대신 글로발리티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바로 이 점에서 우리들은 용어의 전환에서 오는 중요한 함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자본과 상품의 이동이 한 국가 내에서의 거래를 넘어서서, 국가간 급속한 거래에 의해 지구촌이라는 한 울타리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과정 자체를 글로발리제이션, 이른바 세계화로 번역되어 통용되어 왔다면, 글로발리티는 그러한 재편 과정은 끝나고 세계화는 이제 뿌리칠 수 없는 대세로서 본격적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진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세계성이라 번역하면 어떨까.

어떻든 이러한 글로발리티는 그 자체가 갖는 중요성 보다 이번 회의 주제에 있듯이 “책임을 가진” 이라는 형용사가 주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총칼 없는 자본과 상품의 무차별적 공세는 국가 내에서 “20 대 80 사회”로 몰고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20대 80 국가”로 만들어, 자본주의 그늘 아래 급속히 빈부의 차이를 전지구적으로 창출한데 대한 일말의 반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포럼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글로발리티는 이제 삶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이제 이익만 쳐다보는 글로발리티와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발리티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할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3세계 국가 대표들도 한결같이 국가간 빈부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글로발리티의 현실은 인정하지만 가난한 국가들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전지구적으로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책임을 가진” 이라는 형용사가 주는 함의는 대단히 무겁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지구적으로 빈부의 차이에 의한 양극화 현상에 따라 빈민은 자본주의적 축적구조 속에서 형성 및 재생산되고 있으며, 빈민의 생존과 생활양식 문제 역시 노동자 계급 전체의 경제조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축적과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빈곤화 과정 속에서 빈민은 현역 노동자 계급과 결합되어 있고, 그들의 빈곤상태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빈곤문제와 접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IMF 관리체제하에서 대량실업 사태에서 피해를 많이 입고 있는 다수 집단이 바로 일용노동자, 임시노동자임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발리티”나 “책임을 가진 글로발리티”가 갖는 의미는 노동의 책임 보다 자본의 책임이 더 무거우며, 신자유주의 보다 공동체주의의 이념이 더 부각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고 하겠다. 작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벵골 출신의 아흐마르티아 센교수는 일찍부터 ‘교육, 토지개혁, 사회보험, 실업대책 등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글로발리제이션은 국민을 늑대 우리 속에 던져버리는 무자비한 경쟁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발리티”나 “책임을 가진 글로발리티” 실현의 첫 걸음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부터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1999년 2월

조흥식/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집행위원

조흥식/서울대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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