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운동의 새로운 지평 – 공익소송과 입법청원

1994년 참여연대가 출범하면서 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국민최저선 확보 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민최저선을 설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던 중 국가의 정책과 제도, 행정이 국민최저선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기존 법제와 법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찾아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기로 하였다. 이에 동원된 전략이 바로 공익소송과 입법청원운동이었다. 공익소송은 정부 스스로가 합법성과 정당성을 승인한 법의 정신과 내용을 스스로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동시에 입법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현행법상으로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제도적으로 부적절하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입법개정과 새로운 입법의 청원을 관련 시민단체와 더불어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여 일정한 개선 및 개혁, 새로운 쟁점화 등을 추구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새로운 방법의 시민운동, 복지운동을 창출해낸 성과였으며, 나중에 소액주주운동과 같은 타 분야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오랫동안 '법'은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이요 그들을 정당화시키는 한낱 지배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법은 지배자, 가진 자의 불공정하고 무서운 무기로서 작용했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민중진영에서 가지고 있었던 법감정은 법이란 타도하거나 거부해야 할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법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입법, 소외된 계층을 위한 법들이 존재하고 제한적이나마 실시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죽어 있는 법으로 보지 않고 이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 곧 공익소송운동이며 입법청원운동이었다.

주요 소송

1990년대 들어 최초로 소송의 방법을 통한 사회복지운동은 1994년 2월 22일 사회정책학회 주도로 제기되었던 생활보호대상자 노인부부가 낸 헌법소원이었다. 생계보호의 수준이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한국판 아사히(朝日) 소송으로 평가되는 것으로서 생활보호법과 동 지침에 의해 제공되는 생계보호의 수준이 헌법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소송이었다. 물론 1997년 5월 29일 헌법재판소가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기각하여 헌법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성격을 추상적 권리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구체적 권리임을 최초로 주장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헌법소원은 운동적 차원에서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사회복지계의 새로운 관심을 유도하면서 이후 공익소송운동의 계기로서 작용하였다.

1994년 9월 참여연대가 발족하고, 그해 12월 사회복지특별위원회에서 4건의 소송 및 고발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적 차원에서 공익소송이 도모되었다. 당시 제기되었던 소송은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기금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

정부가 보험료 부담을 전혀 하지도 않으면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을 제정하여 국민연금기금의 여유자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강제예탁하도록 하고 자의적으로 기금을 운용하여 가입자들의 재산권과 노후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문제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던 것이다. 미래소득의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문제, 연금기금의 법적 성격,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운용규정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 여부,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위헌성, 강제예탁 자체가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그 위헌성 여부 등이 쟁점이 되었다. 재판과정에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강제예탁 규정의 위헌성이 논란이 되어 1996년 2월 재판부에 의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루어졌고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 : 1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의료보험적립금 관리에 대한 보건사회부장관 직권남용죄 고발

조합주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는 직장의료보험조합에 1994년 당시 3조 4천억 원 정도의 돈을 적립케 했다. 의료보험법 및 동 시행령에 따라 적립과 보험급여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적립금을 보건사회부가 별도의 규정을 마련하여 병·의원에 저리의 대출자금으로 전용했다. 이는 불합리한 의료보험제도를 더욱 악화시키는 행위이므로 당시 보사부장관인 서상목 씨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였다.

지역의료보험료부과처분 취소청구소송

조합주의 의료보험은 직장조합과 지역조합의 보험료의 불평등을 가져왔다. 이는 헌법상 평등권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지역의료보험조합은 의료보험법의 규정에도 없는 별도의 재산, 자동차 등에도 보험료를 부과하여 법령의 위임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조치를 취해왔던 것이다.

노령수당지급대상자 선정제외처분 취소청구소송

노령수당은 노인복지법과 동 시행령에 따라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에게 제공되는 부가급여이다. 그런데 보건사회부는 지침으로 노령수당 지급대상 기준으로서 65세인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작위적인 조정을 하여 65세부터 69세까지에 해당되는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의 노령수당수급권을 침해했던 것이다. 고등법원에서는 국가의 재량을 내세워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하였으나 1996년 10월 대법원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려 보건사회부 노인복지사업지침의 노령수당 연령기준은 무효가 되었다.

이러한 공익소송의 노력으로 노인복지법이 1997년 7월 개정되어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에게만 주던 노령수당이 폐지되고 대신에 차상위 저소득층 노인까지 대상으로 포함하는 경로연금이 도입되었고, 국민연금소송도 법적으로는 패소하였지만 그후 정부의 적극적인 국민연금개혁의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전국민 국민연금 확대,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자금관리기금에의 강제예탁 폐지 등의 커다란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1999년 1월에는 생활보호법상 최저생계비 공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장관(김모임)을 고발함으로써 공공부조제도의 확립을 압박하는 작용을 하였다. 1997년 의원입법으로 개정된 생활보호법에서는 1995년에 청원된 개정안을 참작하여 최저생계비에 관한 규정이 삽입되었었다. 이에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무적으로 매년 12월 1일 최저생계비를 공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가 없어 참여연대에서 고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주요 입법청원 운동

1994년, 1995년 사회보장기본법 제정에 참여, 1995년에 법이 제정되었고, 1995년 노인단체와 연대하여 노인복지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당시 실질적으로 노인복지제도의 역할을 했던 생활보호법(부양의무자가 없는 65세 이상의 노쇠자가 주대상)을 공공부조제도로 전환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반영하고 대상자선정 기준으로 하도록 생활보장법으로 개정요구, 1997년 에바다농아원 사건을 계기로 하여 사회복지시설의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 공정성, 전문성 확보를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요구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사회복지대학협의회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특히 시설평가제의 도입은 민간 사회복지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으며, 1998년 생활보호법을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청원 등 사회복지분야의 주요 입법들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영유아보육조례, 실직자지원조례 등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도 입법운동을 강화하여 소기의 성과들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의 단체, 대상자집단, 사회복지전문가, 법률전문가 등이 연대하여 사회적인 쟁점을 끌어내고 시민사회의 요구를 일정한 입법으로 관철시키는 역량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1999년 8월 12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1997년 7월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은 사회복지 분야의 시민운동으로서 입법청원운동의 쾌거라 하겠다. 이 두 법은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 민간 사회복지 개선에 획을 긋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맺는 말

군사독재정권과 경제성장정책이 지배했던 1980년대까지는 정권타도와 대외종속 타파, 사회 전체의 민주화를 추구했던 재야운동과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운동의 중심을 이루었으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주의권의 해체와 맞물려 시민운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사회복지운동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다. 1991년 사회복지전문요원 배치계획이 보류되고 사회복지예산이 삭감된 데 대하여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학생, 사회복지사 등이 연대하여 사회복지예산 확보운동을 전개한 것이 사회복지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주도한 일련의 공익소송운동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등장하였고 사회복지를 시민사회의 주요한 의제 중의 하나로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사회복지가 불우이웃돕기 차원의 온정주의적 행위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권리로 존재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공익소송은 필연적으로 운동의 개념을 수반한다. 이는 개인의 사회와 국가에 대한 권리의식과 더불어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반시민을 포함하는 사회복지대상자, 사회복지전문가, 법률전문가 등의 연대를 기초로 국가와 자본의 비인간적 지배에 맞서고 인간 및 공동체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조직적 운동이 전제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입법청원운동 역시 기존의 불합리한 입법을 개정, 대체하고 필요한 새로운 입법을 요구하기 위해 범시민적 연대를 통해 시민사회에서의 복지권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입법청원운동은 공익소송과 달리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여러 분야의 운동단체와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하는 복잡하고도 종합적인 운동이다. 공익소송이 주로 제도의 변화를 추동해낸다면 입법청원운동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운동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윤찬영 /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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