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6-10   798

현장에서 바라본 자활사업의 현실과 전망

자활사업의 현실

이야기 하나. 박OO(남, 43세)씨, 고아로 자라 양육원에서 도망,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마치고 일정한 직업을 얻지 못하다가 살인미수로 7년형을 삶. 교도소에서 미장, 타일, 조적, 이발기술을 배우고 모범수로 출감했지만 사회에 나와 취업기회를 얻지 못함. 조건부 수급자로 '재활용 선별장 자활공동체'에 참여. 매일 냄새가 지독한 쓰레기 더미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지만 자활공동체 때문에 웃음과 동료를 얻어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함. 그리고 무엇보다고 안정적으로 매달 60만원을 벌 수 있어 앞으로 열심히 일하고 싶어함.

이야기 둘. 하OO(여, 42세)씨, 지인의 소개로 결혼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만성 질환자였음. 99년 겨울, 남편이 사망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와 난방도 안되는 단칸방에서 술로 지내다가 자활후견기관의 '헌옷재활용 자활공동체'에 참여하게 됨. 월 50만원정도의 수입을 얻게 되었고, 사회복지사의 상담으로 점차 알콜을 중단하고 열심히 일함. 지역사회 치과의사의 후원으로 300만원 상당의 치과 진료도 받게 됨.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시간제로 밤늦도록 일함.

이야기 셋. 부인과 사별하고 자식들과는 연락두절 상태로 혼자 살고 있는 임OO(남, 67세)할아버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일반 수급권자로 생계비를 지원받음. 하지만 '음식물 재활용 시니어 자활공동체"에 나와서 팀의 리더로 일하고 있음. 30만원 미만의 적은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수입이 없다 해도 열심히 출근하겠다고 함. 자활공동체 훈련하고 나서 사회복지사나 동료들과 노래방도 가고 같이 춤춰주는 아줌마도 있는 자활공동체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라고 함.

이야기 넷. 남편과 이혼하고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의 자녀를 둔 엄마 최OO(여, 42세)씨, '재활용 선별장 자활공동체'에 나와 추워도, 더워도 하루 1,500개에서 2,000개 정도의 흑색병과 흰병을 나머지 2명의 여성들과 선별함.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오후 5시가 되면 아이들이 있는 집을 향해 달음질해 감. 한달에 60만원을 벌고 있음. 아무리 힘들어도 좋으니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소원이라고 함.

이야기 다섯. 만성 위궤양을 앓고 있는 윤OO(남, 59세)씨, 병원 다녀온다고, 배가 아프다고, 힘든 일 하면 안된다고 등등의 이유로 일하기를 꺼려하면서도 조건부 자활급여자이기 때문에 자활공동체에 출근함. 하지만 자활공동체 성원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함.

이야기 여섯. 이OO(남, 50세)씨, 자활공동체에서 70만원 월급으로 자립하기보다는 조건부 수급권자로 머물러 있기를 원함. 조건부 수급권자 소득기준을 넘어 버리면 각종의 비현금 급여를 상실, 오히려 살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함.

이 이야기들은 지난해 10월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 노동빈민들이 지역사회로부터의 자활지원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초점으로 해서 다양한 측면의 사례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기초로 해서 앞으로 자활지원사업의 현장에서 유지해야 할 주요한 관점과 과제를 전망해 보기로 하겠다.

어떤 관점에서 자활사업에 접근해야 되는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노동빈민은 자발적인 사회부적응자, 또는 자발적인 복지의존자가 아니다"라는 관점의 유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빈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소득상태와 노동의지만을 기준으로 가치있는 빈민과 가치없는 빈민으로 양분하려는 태도(예를 들어 조건부 수급권 박탈의 경우)는 노동빈민이 가난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무시한 채 희생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 노동빈민들은 공고한 사회보장의 보호로부터 도덕적 해이를 경험했다기보다는 저임금과 생산영역 밖으로 지속적으로 내몰리면서 점점 생존의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공공부조 제도의 의존자로 전락된 사람들이다. 즉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된 자들로서 고용불안정, 저임금, 불량한 주거와 건강상태의 악화, 낮은 가족응집력과 취약한 비공식 지지망에 따른 위협으로부터 비자발적인 사회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의 유지가 중요하다.

다음으로 "일"뿐만 아니라 "복지"의 과제가 동시에 강조되는 자활지원사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활에 대한 접근은 경제적 빈곤의 해결은 물론, 그와 관련되는 정상적인 생활영위의 보장, 인간적 존엄성의 획득, 문화적 향유의 권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생활보장을 포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빈곤의 현상적 측면 뿐만 아니라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한 좀더 개별화된 사회적, 심리적 측면에서의 관심이 요구되며, 빈곤문제에 대한 예방적, 포괄적, 장기적 전망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노동빈민이 재활용 선별, 노인간병 등 자활사업이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자신의 노동능력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피구휼빈민을 도울 수 있다는 자기신뢰(self-reliance)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빈민의 노동의지와 능력만으로 자활사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말해 자활사업이 원활하게 수행되려면 노동빈민들이 자활사업의 참여에 따른 위험보다도 보상이 크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변화를 지향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클라이언트의 의지는 변화와 연관된 위험과 보상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잠재적인 보상이 위험보다 훨씬 크다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이와 달리 변화의 시도가 높은 위험을 수반하면서도 보상이 적거나 불확실하다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변화과정에 참여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따라서 자활사업은 노동빈민들에게 변화의 성공 요인들(동기, 변화를 위한 능력, 변화하려는 기회)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특정행동을 취하려는 열망이나 준비의 상태, 동기 부여는 희망의 유인과 불만의 제거로 이루어진다. 클라이언트가 변화를 가능하다고 믿는다면(예: 희망의 유인), 그리고 현재 상황을 불편해 하거나 불만족스러워 한다면(예: 불만의 제거), 클라이언트는 바람직한 변화를 지향하여 활동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화의 성공요인 제시는 개별 자활후견기관이나 사회복지사의 책임만은 아니다. 기회란 변화를 유도하고 지지하는 환경상태(비공식 자원망, 지역사회 태도, 가능성 있는 직업, 다른 사회세력의 영향)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활사업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근로소득 공제제도의 도입, 자활공동체에 대한 재정적, 경영적 지원, 지자체 민간위탁에서의 우선순위 부여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황미영 / 부산카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전임강사, 울산북구자활후견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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