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11-15   3676

국가인권위회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기대

천신만고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통과된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건만 발족일조차 가늠할 수 없는 혼미가 거듭되고 있다. 여러 언론 매체에 보도된 바와 같이 10월 9일 11명의 국가인권위원들이 선정되어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다. 지난 8월 2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발족하기 위하여 민간의 전문가와 행정지원 공무원으로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이 세워져 활동을 시작했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하면 인권위는 ① 인권에 관한 법령(입법과정중에 있는 법령안 포함)·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 ②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③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④ 인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 ⑤ 인권에 관한 교육 및 홍보, ⑥ 인권침해의 유형·판단기준 및 그 예방조치 등에 관한 지침의 제시 및 권고, ⑦ 국제인권조약에의 가입 및 이행에 관한 연구와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 ⑧ 인권의 옹호와 신장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 및 개인과의 협력, ⑨ 인권과 관련된 국제기구 및 외국의 인권기구와의 교류·협력, ⑩ 그밖에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을 기본 업무로 수행하여야 한다.

여기서 인권의 실질적 정의가 중요한데 같은 법 2조에 의하면 "인권"이라 함은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법 해석만을 종합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매우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흔히 말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까지를 다루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권위원회법에 의하면 인권위는 평등권의 개념에서 출발한 차별행위 문제까지 다루도록 되어 있다. 차별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병력(病歷)을 이유로 하여 고용이나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의 이용에 있어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토록 방대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방법 또한 광범위해서 일반 국민으로부터의 진정 접수와 그 처리 절차를 통한 구제, 구금 시설 및 다수인 보호시설의 인권 실태조사, 기타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 인권관련 연구와 교육, 인권관련 법령 및 제도, 관행에 대한 조사와 이를 통한 시정 권고 조치, 국내외 협력체계 구축에까지 이른다.

물론 인권위법이 통과될 당시 사실 관계를 밝히기 위한 증인 신문권 및 위증, 증거 인멸과 날조에 대한 처벌 조항이 삭제되었으며, 주된 인권침해영역인 수사, 행형 및 재판관련 자료 조사 거부권이 남아 있는 등 여전히 인권위가 제대로 된 인권보호와 감시의 기능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한계가 남아 있다. 또한 현재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이기는 하나 헌법에 명시된 기구가 아니어서 그 독립성 또한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인권위를 최대한 활용할 경우 그동안 각종 권력에 의해서 침해받던 각종 인권을 구제할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조사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회복지역사상 또 하나의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한다.

▣ 사회복지와 관련된 업무

사회복지와 관련되어서 인권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사회복지시설 수용자들의 인권을 진정과 정기적 실태조사를 통하여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다. 누구도 합법적으로 손대지 못하던 정신병원, 장애인 시설, 노인시설 등에 수용되어 있는 이들의 인권상황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대폭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위의 시설거주자 이외에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안에 포괄되어 있는 사회복지 관련 문제들이 대거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인권 실태조사 및 각종 개선방안을 제시함으로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길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내내 수사(修辭)에 그쳐 있던 국민복지기본선에 대한 국가차원의 실행적 정의가 내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규정한 인권은 헌법에 정의된 권리와 우리 나라가 가입·비준한 국제 인권 조약 및 국제사회의 관습법을 포괄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누릴 권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자신과 가족이 쓸 수 있는 식량과 의복 및 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과학의 진보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 또한 우리나라가 가입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에 의하면 이러한 권리들이 인종·피부색·성별·언어·종교·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재산·가문·기타의 신분에 기인하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고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하며, 남녀가 평등하게 누리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가입국은 자기 나라의 가용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즉 사회복지의 각 영역에서 제기되어 왔던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허용하는 최대한도가 어디인가가 우선 논의되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국민복지기본선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기대

그러나 지금까지 기술한 바와 같이 인권위가 우리나라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장밋빛 미래만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인권위법을 수행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행령과 직제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남아 있다. 준비기획단 설립 이후 기획단에서는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사회 일각의 오해로 인하여 마치 정원을 부풀려 권력기구로 만들고자 한다는 고깝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기획단에서 제시한 직제와 정원은 민간 전문가 뿐 아니라 정부부처출신의 전문 공무원의 합리적인 업무량 산출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정치적 협상을 위한 부풀리기의 산물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또한 이 수치는 외국과 비교하더라도 선·후진국을 망라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는 인구 대비 최저치로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국정이념에도 결코 위배되지 않는다.

둘째, 국가인권위원회는 헌정 사상 초유의 기능을 가진 국가조직으로서 인권이라는 시각에서 국정을 실현하는 새로운 임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일에 대한 새로운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는 행정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폐쇄적인 방식에 의존해서는 달성할 수 없으며 그동안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여왔던 시민사회단체의 인재들을 등용하는 방식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시도가 시민사회단체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반발이 있기도 하며, 심지어 시민사회단체에서조차 가능성 여부에 회의를 갖고 있음을 종종 발견한다. 그러나 인권위의 직원특례규정은 시민사회단체에게 특혜를 주고자 함이 아니라 기능에 맞는 전문인력을 등용하기 위하여 관련 전문가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인권위법이 시민사회단체의 피땀의 결과로 얻어졌듯이, 인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기대를 하고 싶다. 우선은 인권의 피해를 받고 있는 개인들은 스스로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설사 인지한다 하더라도 인권위와 같은 국가기관에 진정이라는 절차를 밟을 여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영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과 인권위를 연결해주는 촉매 역할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권위가 국민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으로 인권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탄 없는 독려와 질책을 줄 것을 기대한다.

김선민(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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