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11-10   250

복지문화를 향하여

나는 지난 10월 26일 2002년 부산 아·태 장애인 경기대회 개막식에 참여했었다. 이 지역 40여 개국에서 참가한 장애인들의 입장행렬을 보고 나는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 장애인들이 주인공인 식장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우리는 무엇인가. 구김살이 없는 웃음들,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편견을 딛고 일어서서 늠름하게 들어오는 저 걸음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행군이 아닌가 싶었다. 지난 세기의 가치로 하면 장애인들에게 저런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이득이 있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가 이런 변화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새기기도 전에 인간에 대한 존엄은 이제 우리 사회의 으뜸가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세기의 힘은 상대를 파괴하는 능력이었는데 반해서 이제부터의 힘은 가장 약한 자를 돌보고 연대하는 지원활동이 될 것이다. 과거 20여 년 동안에 일어난 전세계적인 인권운동은 참정권, 평등권 등으로 시작한 것이 기본권, 존엄권으로 진전하면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각의 존엄을 인정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존엄권의 가치를 사회의 으뜸가치로 매기고 보면 전통적인 안보를 내세우는 국가나 이윤추구를 제일로 생각하는 시장의 능력과 기능만으로는 이 으뜸가치를 지키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떠오르는 것이 사회복지사업이고 자원봉사활동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불우한 사람을 사회생활에서 구분하고 또는 별도로 수용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을 사업으로 묶는 일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불우한 증상(症狀)에 대한 대응이 사업의 내용이었다. 불우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미흡한 처우, 성한 사람들의 여론에 밀리는 시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지사업가들의 개별적 사정과 성향에 따라 처우가 좌우되는 열악한 상태가 우리의 현주소다. 전통적인 자선사업이 사회복지라는 개념으로 바뀌고 나서도 수십 년 동안 시혜자(施惠者)와 수혜자(受惠者)의 재래의 관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이것은 결코 수십 년에 걸쳐서 또는 집안의 대(代)를 이어가면서 헌신적으로 각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숨은 천사들의 노고를 과소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수혜자를 어떻게 해서 수혜자 콤플렉스에서 해방시키느냐에 있다. 사회복지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하면 수혜자들이 물질적 또는 다른 서비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해서 정신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시민으로 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이때까지 개인이나 또는 공공기관의 시혜는 사회적 의무가 되고 그것을 받는 쪽에서는 자신의 기본권리를 옹호하고 뒷받침하는 조치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하는 사회관계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복지사업의 확장만이 아니라 복지문화를 일으켜야 할 줄 안다.

아직도 그렇지마는 복지정책은 오랫동안 사회정책의 하부구조였다. 또 사회정책의 바닥에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우와 발전에 집중해 왔다. 그렇게 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불우한 이웃을 돕는 복지사업으로 예산배정을 하게 되었다.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러 권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임금조정, 노동시간, 상해보상, 그리고 노동할 수 있는 권리 등등으로 흘렀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뒷받침하는 여러 보험제도가 따라오게 되었다. 나아가서는 가족들의 문제, 노동환경, 사회적 지위의 제고 등등 사회적 보장에로 정책의 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과 틀을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복지정책은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기초로 해서 사회구성원의 기본권과 존엄을 존중하는 틀을 짜야 할 것이다.

복지정책의 기초가 아직 취약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재원도 충분하지 않는데 복지문화를 들먹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복지문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시민의 참여가 활성화되면 복지정책을 수행하는데 큰 뒷받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비전을 전망하는 비영리조직의 운영은 우리사회의 공공이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영리조직의 운영과 관리도 투명하고 전문적일 수 있도록 종사자들의 각오와 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회적 공공이익을 국가안보와 국부(國富)확장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때와는 달리 인간의 존엄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면 공공이익에 대한 개념정립과 인식변화를 유도하는 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복지사업을 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요청된다. 그 일로 해서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는 행동, 그리고 상부의 지시나 명령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접근이야말로 정책을 전달하는 통로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나아가 수혜자의 입장에서도 저항이 없이 시행과정에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욕을 유발할 것이다. 이런 관계를 일상화(日常化)하는 것이 문화일 것이다

우리는 월드컵의 열기에 다 흥분했었지 마는 그 힘과 영감을 일상화하기는 힘들다. 마찬가지로 아·태 장애인 경기대회가 행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주는 주제와 감동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풀어 넣고 경기장에서의 그들의 구김살 없는 웃음이 우리들 동네에서 피어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복지문화를 일으켜야 할 과제로 다가온다.

오재식 / 월드비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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