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1-10   1352

양극화 해법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로부터

들어가며

사회양극화 문제가 우리 사회 최대의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진보적인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했던 문제에서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 사회문제에 대해 진단하고 발언하는 모든 사람들의 핵심적 주제가 되었다. 이는 양극화 과정에서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한 다수 대중들의 극에 달한 고통과 우리 사회가 이런 상태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전 사회적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양극화는 중간층이 엷어지고 극단적 상하층이 많아지는 현상이다. 항아리형에서 모래시계형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밑바닥으로 추락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빈곤층이 800만명에 이른다는 최근의 보고들과 이들의 고용불안정, 저소득, 교육, 주택, 의료 등의 사회복지 제도로부터의 배제,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빈곤형 자살의 증가 현상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이러한 사회양극화의 핵심적인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사회 양극화에 따른 빈곤화의 특징은 이른바 ‘일하는 빈곤'(Working Poor)의 문제이다. 산업화 초기 농촌의 과잉이농인력으로 이루어진 도시빈민층의 확산의 문제도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가 일상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쟁에서 탈락한’ 소수 빈곤층의 문제만도 아니다. 일자리를 갖고 시장에 진입해 있으면서도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소득, 사회적 보호의 배제를 겪고 있는 다수의 불안정고용층의 문제인 것이다. 이들의 대다수가 바로 800만에 이르는 비정규노동자들이다.

비정규 문제는 바로 사회양극화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노동자의 빈곤화와 차별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에 이들이 당하는 온갖 고통과 비애가 묻어있다. 정규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이들이 삶으로부터 느끼고 있는 사회적 서자의식과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식은 바로 이들이 처한 현실에서 나온다. 비정규 노동자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되지만1) 이들의 핵심적이고 공통된 특징은 바로 임시적 고용이다. 이러한 임시적 고용의 성격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하고 나아가 차별과 노동법상 무권리로 내몬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시ㆍ일용직을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는 2004년 8월 현재 816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5.9%에 이르고 있다2).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비정규 노동자의 비중은 69.5%에 이르고 있다.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도 문제이지만, 고용불안과 차별, 법적 무권리는 이들의 현실적 고통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특성이자 비정규 노동자의 고통의 근원이다. 비정규 노동자는 대부분 기간을 정한 임시적 고용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은 고용계약기간을 이유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다. 이러한 고용불안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차별과 노동권 배제를 낳는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고용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과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힘든 현실이다.

비정규 노동자는 또한 임금 노동조건과 사회복지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 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은 110만원으로 정규 노동자 211만원의 절반 수준(51.9%)에 불과하다. 정규직에 대한 상대적인 차별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의 절대적 임금수준이다. OECD가 정의하고 있는 저임금3) 기준에 해당되는 노동자수는 무려 699만명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비정규직(568만명)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 빈부격차의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일하는 다수 노동자의 빈곤’이라는 심각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는 직접임금에서뿐만 아니라, 퇴직금, 상여금 등의 노동조건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사회보험 등의 사회보험 적용에서도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정규직의 경우 거의 모두 지급 받고 있는 퇴직금, 상여금, 연장근로수당 등은 10-16%의 비정규노동자만이 적용받고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의 경우도 비정규 노동자 적용률은 30% 미만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이라는 사회보험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문제의 성격

비정규직의 양산과 고용불안, 차별과 법적 무권리는 무엇보다 바로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사용할 만한 합리적인 경우에 사용해야 함에도 기업은 단기적인 인건비 감축과 해고의 용이성, 노동법상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사용해왔다. 자본측의 비정규직 사용은 격화되고 있는 세계적 경쟁이나 경제환경의 변화에의 적응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더 많은 이윤’ 때문이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고용유연화 정책은 이러한 기업의의 움직임에 물꼬를 터 주었다.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정부 정책의 1순위가 되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에게 가해진 각종 규제가 풀리고 있다. 그 가운데 풀리지 않아야 할 노동자의 최소 생활과 권리를 위한 제도도 풀려나가고 있다. 그런 배경 하에서 기업은 비정규직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비정규직 고용과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고 있는 이른바 “비정규노동자 보호법”도 비정규직 고용을 더욱 조장하고, 노동권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비정규 문제 해결의 방향

결국 비정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장, 기업에서의 고용관행이 개선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 사용의 억제와, 부당한 차별의 해소, 권리보장의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의 제개정을 통해서 △상시업무 정규직화의 원칙하에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 명시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와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불법파견의 근절과 원청사용자의 책임 인정 △학습지교사, 화물지입차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등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등의 법제화 △최저임금제도의 개선 등이 요구된다.

법 제도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 논의는 꽤 오랫동안 진행되어왔고, 정부도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대로 정부의 추진방향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

첫째, 비정규직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임시직(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그 사유를 통해서 제한해야 한다. 자본은 인건비를 줄이고 해고를 자유로이 하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차별과 무권리가 일상화되고 있다.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서는 임시직을 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임시직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즉, △출산ㆍ육아 또는 질병ㆍ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일시적, 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있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 등으로 임시직 고용의 이유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파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현행 파견법은 이전에 불법이었던 파견용역업체나 도급업체 등에 의한 중간착취를 허용하고, 도급, 사내하청 등의 이름으로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견계약의 해지에 따른 고용불안과 저임금, 노동법상 무권리로 고통받고 있다.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불법파견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불법파견사업의 경우 사용사업주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하고 사용사업주도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가지도록 해야한다.

셋째,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비정규노동자는 정규노동자와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수준의 저임금, 기업복지에서의 차별로 생활고와 박탈감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정규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고 같은 노동에 대해서 같은 임금(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 또한 기업내 정규직-비정규직의 부당한 임금차별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 차별해소를 위한 연대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정규직도 임금인상의 일정분을 기금화하고 기업도 이에 상응하는 기금을 공동으로 출연하여 비정규직의 차별해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미뤄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보장도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 화물지입차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텔레마케터 등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한 기업에 종속되어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 실질적인 노동자들임에도 자본의 정책에 따라 형식상 개인사업주로 취급되어 근로기준법과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노동권 보장, 생존권 보장, 노조활동 보장을 위해 수년동안 치열한 활동을 벌여왔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다섯째,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으로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최소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비정규ㆍ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절대적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규ㆍ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고, 이들의 실질임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이러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 임금을 국가가 법으로 보장해 강제하는 제도이나 현행 최저임금은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노동자들의 최소 생계 보장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따라서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어야 한다. 적어도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 수준은 되도록 법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공익위원선임방식에서 노사단체의 추천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나아가 감시단속적 노동자 등 최저임금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완전 적용해야 한다.

맺으며

비정규 문제는 당사자의 고통을 해결하는 인권과 노동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비정규직 확산에 따른 소득격차 확대로 사회는 항아리형에서 오목거울형으로 변하고 있다. 다수의 비정규직이 사회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되면 사회적 파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경제가 수치상으로 회복했는데도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내수가 부진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양산은 내수층을 극도로 엷게 만든다. 소득수준이 낮으니 소비가 이루어질리 없다. 저소득비정규직 확산⇒내수축소⇒경제성장동력파괴의 악순환을 차단해야 한다.

기업도 고용관행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정규직 중심의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s)를 만들고, 차별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재벌의 한 경제연구소는 ‘비정규직 사용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줄지 몰라도 중기적으로는 기업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쓰고 버리는 인력정책에 대해서 기업들 내부에서도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비정규직의 사용처럼 “단기비용 감축” 정책에서 “사람중심 경영”으로 경영마인드를 바꾸어 고급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주의가 일상적으로 사회적으로 탈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접근방식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즉 시장은 알아서 하도록 자유롭게 놓아두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사회복지 정책 차원에서 ‘구제’하는 것만 가지고는 결코 현재의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없다.

결국 시장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저소득을 구조화하고 사회적 보호마저 배제하는 현재의 시장 논리에 수정이 가해지도록 하는 국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회불안과 갈등을 낳고 소비부진과 투자부진의 악순환으로 경제기반까지 잠식하는 비정규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그나마 ‘지속가능성’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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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정규 노동자는 말 그대로 정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이다. 정규노동자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할 수 없고 고용이 정년까지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해당 기업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이다. 비정규 노동자는 이러한 정규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①근로계약기간을 정해 일하는 노동자(임시계약직, 기간제, 일용직) ②단시간노동자(파트타이머) ③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노동자 ④형식상 개인사업주로 위장되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으로 나뉜다. 이밖에 호출노동자, 가내노동자 등의 형태도 있다.

2)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3.8) 결과), 2003. 10.

3) OECD는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주진우 / 민주노총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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