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1-10   1860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확충의 필요성 및 방안

서론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 논의가 급증하여 정부나 시민사회 모두에서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이른 바 「희망한국 21」이라는 사회안전망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시민사회는 「양극화 해소 국민연대」를 출범시킨 바 있다. 양자 모두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해결이 시급하다는 인식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인다1).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서 정부가 발표한 사회안전망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만은 상존하고 있고, 그 계획이 설사 그대로 실행된다고 해도 피부에 와 닿는 양극화 해소책이 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이는 비단 현 정부 들어와서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며, 복지제도가 급속히 확장되었다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계속 나타났던 현상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복지지출은 GDP에 대한 비중으로 한 때 1990년대 중반보다 2배 가까운 규모로 증가한 적도 있고 그 후 약간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제도에 대한 반감 역시 커졌으며 빈곤이나 불평등의 해소도 크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글은 이렇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한 가지는 사회복지서비스의 미확충에 있다는 전제 하에 사회복지서비스 확대의 필요성과 확충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사회복지서비스의 확충 필요성

경제위기 이후 복지제도는 급속한 확장을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지출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6년 GDP 대비 5.29%이던 것이 2001년에는 8.70%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제도의 구성내역을 보면 이 기간 동안의 복지지출 증가는 소득보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타났다.

<표 1> 사회복지지출의 추이: 제도별 (단위: 1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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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사회복지서비스 지출의 추이 (단위: 1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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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을 보면, 공공사회복지출은 1996년 16조 3천억원에서 2001년 33조 8천억원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15.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 중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를 합친 소득보장제도의 지출은 1996년 12조 6천억원에서 2001년 27조 1천억원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증가율이 16.6%에 이르는 반면, 사회복지서비스 지출은 1996년 3조 6천억원에서 2001년 6조 7천억원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증가율은 13.4% 가량이다. 즉, 소득보장의 증가율은 총 공공사회복지지출 증가율보다 높은 반면 사회복지서비스는 전체 증가율보다 낮은 것이다. 특히 공공부조의 증가율은 매우 높아서 표에 나타난 기간 중 연평균 24.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사회복지서비스 지출내역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장애인이나 노인 등에 대한 시설보호와 재가복지서비스는 각기 연평균 16.8%와 18.5% 씩 증가했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지출은 연평균 24.2% 증가하여 매우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보건의료지출은 연평균 8.5%씩 증가하여 사회복지서비스 지출 전체의 연평균 증가율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총 공공복지지출 증가율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시설보호와 재가복지 지출이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노인의 경우 요양수요의 공적 서비스 충족률은 차상위층 및 서민층의 경우 10~20%에 불과하며, 장애인의 경우는 공적 서비스 충족률이 차상위층 및 서민층의 경우 2%에 불과하다(서비스 충족률은 2004년말 현재). 더욱이 장애인은 기초보장수급자의 경우에도 공적 서비스 충족률이 50% 수준에 불과하다(보건복지부, 2005).

이러한 사실들은 경제위기 이후 확대된 복지제도가 주로 소득보장 위주로 이루어졌고 사회복지서비스는 상대적으로 개혁작업이 미진했다는 그간의 지적이 상당부분 적절한 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작은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 이전 오래 전부터 사회복지서비스는 민간부문에 의해 공급되어 왔고 정부는 이들 민간부문 공급자 중 일정요건을 갖춘 자에 대해 약간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러한 지원방식이 경제위기 이후의 복지개혁과정에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 이른 바 “작은 정부론”이 유포되면서 정부의 고용규모를 증가시키는 데에는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표 3> 공공부문 고용비중의 국가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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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공공부문의 고용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서구 유럽국가들이 최근에 들어와서 공공부문의 고용비중을 낮추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이나 그래도 그들의 공공부문 고용비중은 10%대에 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공부문 고용비중이 1990년에도 4.5%에 불과한 낮은 수준이었으면서도 그 이후에도 계속 감소하여 2001년에는 4.1%에 불과하다.

<표 4> 업종별 고용비중의 국가간 비교(2003년, %)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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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 한국의 2003년도 소득수준과 비슷한 시점에서의 주요 선진국의 고용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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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 취업구조를 보아도 북구 유럽 국가들이 사회서비스업의 고용비중이 30%를 넘으며 유럽대륙 국가들과 영미권 국가들은 20%를 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11.2%에 불과하다(<표 4>). 또한, 우리나라와 유사한 소득수준에 있었을 때의 주요 선진국들의 고용구조를 보면, 사회서비스업의 고용비중은 주요 선진국들이 우리나라보다 높고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 5>). 특히 교육부문의 고용비중은 유사한 수준이지만 공공행정과 보건의료복지부문의 고용비중은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장원·전병유(2004)는 <표 5>의 각 선진국의 고용구조를 우리나라에 적용했을 때의 업종별 고용비중과 2003년 현재 우리나라의 업종별 고용비중 간의 차이를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는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약 200만 내지 400만개의 고용이 더 늘어나야 하고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및 기타 서비스업에서는 약 60만 내지 290만개의 고용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으로 계산하였다. 우리가 물론 서구 선진국의 고용구조를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비교를 통해 시사점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즉, 우리나라는 사회서비스 부문의 공공고용비중을 크게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문에서의 공공고용비중은 보건의료와 복지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은 정부론”은 크게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작은 정부론은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는 단지 공무원의 수가 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공무원을 통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까지를 의미하는 것 같다. 민주화 초기 단계에 작은 정부론은 사실상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작은 정부론은 정부를 통제자 내지 규제자로서만 인식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로서의 정부는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전제하고 있다. 1980년대 말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밀려나지 않은 보수세력들은 민주화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작은 정부론을 들고 나왔고 이것은 1990년대 초의 세계화 흐름과 경쟁력 제고 담론에 편승하여 정부개입은 원래부터 비효율적인 것처럼 매도하면서 정부에 의한 정당한 규제와 서비스 기능마저 축소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와 유사하게 민주화 세력들도 살아남은 보수세력에 대한 견제심리와 민주주의 이후의 정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민 부족, 투철하지 못한 민주주의 이념에 의한 경쟁력 제고 담론으로의 경도 등이 원인이 되어 정부기능을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의 통제적 기능으로만 인식하여 정부의 정당한 규제기능과 서비스기능이 잠식되는 데 대해 별다른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제 우리는 작은 정부론의 허구를 깨야 한다. 우리 정부는 정당한 규제와 서비스 기능의 면에서 충분히 커져야 하며, 이를 무시하고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부행태를 전제한 상태에서 정부비효율성이나 정부실패론을 말하는 허구적 논리를 깨야 한다. 정당한 규제와 서비스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정부는 사실상 정부라 하기 어렵다. 이런 정부는 인구고령화나 가족구조의 변화라는 사회근본적인 변화에 대처하는 데에도 한계를 갖는다. 우리는 정부의 효율을 말할 때가 아니라 정부의 서비스기능 강화를 말해야 할 때에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확충 방안

공공부문의 직접 공급 증가

사회복지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공공부문의 직접 공급비중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민간부문으로 하여금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케 하고 정부는 그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이미 충분히 취해왔으며 그로 인한 폐해 역시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공공부문에 비해 민간부문이 더 효율적이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은 공공부문의 비중이 충분히 큰 상태에서 가능한 이야기이지 우리처럼 공공부문 비중이 형편없이 낮은 경우에 민간부문은 공급자의 난립과 서비스에 대한 규제미비로 오히려 부작용과 비효율이 나타날 뿐이다. 지난 날 의약분업을 시도할 때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의료서비스 공급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9%에도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서비스도 마찬가지이며 보육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정부가 직접 인력을 고용하여 서비스를 전달하는 경우는 일선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역할을 빼면 없다고 해야 한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도 사실상 기초보장업무에 매달려 서비스 업무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비스 업무에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에도 민간부문 공급자에게 의뢰하는 정도이지 서비스 전달은 커녕 서비스 수요자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도 하기가 버거운 실정이다. 보육서비스에서도 국공립보육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설수로 보면 10% 가량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다보니 새로운 욕구가 발생하여 서비스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몇 푼 안 되는 지원액을 지렛대로 하여 민간부문에 “지시”해야 한다. 이러한 지시를 민간부문의 공급자들은 규제와 간섭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민간부문 공급자 중에는 새로운 욕구의 발생을 예측하여 서비스의 방향전환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현실에 비추어 언제나 부족한 금액을 지원하면서도 그러한 지원금의 정산 등을 위해 늘 있어온 정부의 각종 행정지침으로 인해 항상 어떤 한계에 부딪힌다. 그리고 정부가 서비스 방향을 지시할 때 그 지시의 내용은 늘 현장에서 부딪히는 현실과는 일정하게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뜻있는 민간 공급자에게도 그리고 의욕을 이미 상실한 민간공급자에게도 정부의 새로운 “지시”는 항상 간섭과 규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틈새를 민간부문 공급자 중 서비스 제공보다는 다른 이해관계에 더 관심이 많은 공급자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들에 의해 정부의 정책은 매도되고 민간부문의 뜻있는 공급자마저도 소외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서비스의 질은 통제되지 못하게 되고 민간부문의 창의성은 사장되고 만다. 또한, 정부는 민간부문의 뜻있는 공급자들로부터도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서비스보다 다른 이해관계에 관심이 더 많은 민간공급자들과 뜻있는 공급자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은 서로 뒤섞여 어느 것이 올바른 비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지며 그러는 사이에 민간부문 공급자들 간의 사이도 벌어져 급기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고, 제3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만일 정부가 직접 인력을 고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전체 시설의 절반 정도만 되어도 위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공급하고 시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시설에 인력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의 표준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으며 새로운 욕구에 대한 대처를 위한 서비스의 실험도 할 수 있고 시설운영의 표준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면서 사회복지서비스의 전문인력을 고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교육기관을 졸업한 인력 중 우수한 인력은 대부분 정부부문에 취업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력의 자격관리도 정부가 굳이 규제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상당부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책임은 개발만 앞세워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정을 외면해온 정부에 대부분 있다. 우리 사회는 미국처럼 건국 초기부터 정부간섭을 배제하려는 자유주의 사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시장지상주의적 이념이 지배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날 정부가 서비스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항상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국민을 사상적‧물리적으로 통제하려 한 정부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가로놓여 있다. 해방 후 친일파와 모리배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은 결과 이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신들의 과거가 밝혀지는 것을 억압하는 한편 사회사업에 손길을 뻗쳐 자신들의 과오를 면피하려 했던 것이다. 게다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지배세력들은 국민들을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도로 여기면서 무시하고 약탈해 왔다. 그 결과 국민들은 눈 앞에서만 정부를 두려워할 뿐 자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존재로 생각지 않으며 따라서 서비스 제공에서 정부가 나서는 것을 낯설어 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의 결과가 아니라 약탈자로서의 정부를 서비스 제공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은 좋지만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이 시장의 효율성이나 민간부문의 효율성을 믿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말했던 정치세력은 해방 이후 모두 숙청당했고 지배세력은 언제나 표를 동원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고 한번도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시장의 효율성을 진정으로 믿었다면 민주노동당의 그런 공약과 관련하여 시장논리에 의한 반대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대는 극히 일부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학자들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없었다. 오히려 반대가 있었다면 “빨갱이”가 아닌가라는 이유에 의한 반대가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두고서 이를 마치 국민들이 시장의 효율성을 믿고 있어서 그런 것처럼 해석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미국조차 공공부문의 고용비중이 14%에 달하는데도 4%에 불과한 우리를 두고서 또 다시 정부개입의 비효율을 말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일이다. 서비스 정부로 인정받고 인구고령화 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단순히 확충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인력을 고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문의 직접 공급비중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의 일자리 창출

정부의 직접 공급은 곧바로 사회복지서비스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현재 심각한 청년실업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서 정부고용비중이 증가하면 그만큼 서비스 제공이 늘어날 것이므로 민간부문의 고용,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증가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이장원‧전병유의 계산에 따를 때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200만 내지 400만개가 증가되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그대로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서 상당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편

정부는 최근 「희망한국 21」을 발표하면서 시‧군‧구 단위에는 주민생활지원부서를 국 또는 과 단위로 신설하고, 읍‧면‧동 단위에는 지역주민문화‧복지센터를 설치하는 안을 골자로 하는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방안을 밝힌 바 있다. 시‧군‧구와 읍‧면‧동의 사회복지서비스 및 보다 넓게 주민지원서비스에 관련된 기능을 재편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정부의 개편 안은 이미 시범사업까지 실시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무소 안이나 2003년에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지역복지체계 강화규정과의 관련성을 좀 더 고려하여 정치하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의 전달체계 개편 안에는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의 성과를 어떤 형태로 반영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2). 그동안에도 정부는 책임 있는 당국자가 사회복지사무소 안을 수용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몇 차례 하여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전담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바 있다. 또한, 정부의 개편 안은 2003년에 지역사회복지체계의 확립을 목표로 하여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내용과도 아무런 의도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2003년 개정법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은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설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뿐이다. 지역사회복지협의체는 2003년 개정법이 천명하고 있는 지역사회복지체계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한 가지에 불과하며 2003년 개정법은 그 외에 지역복지 강화와 관련하여 훨씬 더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3). 그런데도 정부의 전달체계 개편 안에는 그러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대로 주민생활지원부서와 지역주민문화‧복지센터가 설치되어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이것이 일정하게 지역사회복지체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지 정부가 법 개정까지 하여 놓은 것을 의도적으로 연결시켜 나타나게 되는 결과는 아닌 것이다.

또한, 정부의 전달체계 개편 안은 2008년 7월 시행 예정인 노인수발보장제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노인수발보장제도는 그것이 시행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체계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2003년에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이나 재가복지서비스의 공급도 노인수발보장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정부는 인프라 구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서비스 공급체계에 대한 대응책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서비스 공급인력의 자격관리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노인수발보장제도의 서비스 공급인력의 자격과 사회복지서비스 전반의 공급인력의 자격을 별도로 분리하여 사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이런 식으로 인력문제를 접근한다면 이는 향후 커다란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노인수발서비스와 사회복지서비스는 결국 대상자의 면에서나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의 면에서나 그리고 서비스 공급자가 가져야 할 가치의 면에서나 매우 동질적이다. 그리하여 두 서비스는 상호 많은 영향을 미치며 존재해 나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서비스의 공급자들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동류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두 서비스의 공급인력이 서로를 다른 직업군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불필요한 직업경쟁을 초래하여 결국 서비스 수요자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인력의 문제는 사실 더 넓은 관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공급하지 않고 민간부문에 맡겨 서비스를 공급한 나머지 인력관리도 매우 소홀하여 서비스 인력의 공급체계나 교육훈련체계도 지극히 난립되어 있다. 만일 정부가 진정으로 사회복지서비스 인력을 전문직으로 양성하려 한다면 정부 스스로가 교육훈련체계를 공공재정으로 상당 정도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현재는 정부에 의한 인력수급조절계획은 고사하고 인력수급전망치조차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격증 관리제도가 허술하고 자격증 인정체계 자체가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인력공급이 과잉인 가운데 사회복지서비스의 개별 부문 사이에는 인력공급의 부족과 과잉이 교차하는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 인력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편이며 이 역시 사회복지서비스 내부의 부문간 격차가 심하다. 양질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서비스 현장의 노동조건 개선과 함께 인력의 자격인증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사회복지서비스 확충의 필요성과 그 방안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사회복지서비스가 정부에 의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공급되지 않는다면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관리체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없으며 인력양성과 훈련체계도 제대로 구축될 수 없다. 흔히들 사회복지서비스에 있어서는 민간부문이 일차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하고 정부는 민간부문이 할 수 없거나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서비스만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정부로 하여금 필수적인 것만 하도록 범위를 제한하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되도록 많은 책임을 맡고 정부가 할 수 없거나 정부가 하는 것이 타당치 않은 영역에만 민간부문이 담당토록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사회복지서비스 확충에 접근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정부에 의한 직접 공급비중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급속한 인구노령화와 가족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그 모든 부담은 미래세대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확충과 관련해서는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에 있어서의 정부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단순히 정부가 나서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매우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라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참고문헌

강혜규. 2005.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의 추진경과와 전달체계 개선 과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복지동향』제82호. 8월.

김유선. 2005. “노동소득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과제”.『노동사회연구』제96호. 2월.

남찬섭. 2004. “최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의 내용과 의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복지동향』, 제66호. 4월.

보건복지부. 2005.『언론보도 참고자료: 「희망한국 21-함께 하는 복지」 관련』.

이장원·전병유. 2004. “경제양극화에 대한 사회정책적 대응방안: 사회서비스 부문 일자리 창출 전략의 모색”. 한국노동연구원.『매월노동동향』제40호, 11월.

최희갑. 2002. “외환위기와 소득분배의 양극화”.『국제경제연구』제8권 제2호. 8월.

한국조세연구원. 2005. “경제양극화 현황과 정책과제”.『재정포럼』, 제108호.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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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극화(polarization)의 개념은 그리 분명히 규정되고 있지는 않다. 노동계에서는 양극화를 노동시장 구조의 양극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예컨대, 김유선, 2005),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양극화를 중산층의 몰락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최희갑, 2002). 이정우·이성림(2001)은 양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 규모의 축소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또, 최근에 재정경제부는 “경제양극화를 대내외 환경변화 등 충격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경제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이질적 속성에 의해 경제적 성과가 양 극단으로 분화되는 현상”으로 정의한 바 있다(한국조세연구원, 2005). 양극화를 중산층 규모의 축소로 해석할 때 그것은 글자 그대로는 중산층이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분화해간다는 의미를 갖지만 실제 우리가 양극화라고 할 때 보다 심각하게 주목하는 것은 중산층이 빈곤층화하고 빈곤층의 삶의 질도 급속히 악화해 간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양극화를 이렇게 다소 직관적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양극화는 경제위기 이후의 소득불평등 심화와 노동시장 양극화에서 비롯되고 그에 대한 복지제도의 미흡한 대처에 의해 악화된 것으로 본다.

2)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의 추진경과에 대해서는 강혜규 (2005) 참조.

3) 2003년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는 남찬섭 (2004) 참조.

남찬섭 /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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