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4-15   1654

[심층분석3]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함의와 전망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함의와 전망

 

김치훈 ㅣ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연구실장

 

2012년 5월 30일 제19대 국회의 제1호 법안으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제출되었다(새누리당 김정록의원 대표발의). 장애인부모단체들을 중심으로 지난 5년여 간 줄기차게 제기되어온 발달장애인 지원의 사회적 요구가 이제 마지막 입법의 관문을 남겨놓은 셈이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지금까지 꽤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여야의 각 당 모두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하였고, 법안이 발의된 이후 18대 대선 국면에서도 여야의 주요 대선후보들로부터 법제정 추진의 공식적인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도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보건복지부의 올해 업무보고에서 발달장애인법의 연내 제정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어서 바야흐로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긍정적인 정치적 흐름이 곧 “만족스러운” 혹은 “제대로 된” 법 제정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발의된 법안 내용에 대해 정부는 대부분의 조항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이미 검토의견에서 밝혔으며, 새 정부의 출범 이후에도 그러한 입장에 변화가 있음이 확인된 바는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법률 목록에 발달장애인법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까지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국회 발의안과 정부 간에 커다란 의견 차이가 확인되었을 뿐 앞으로 어떻게 판가름 날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단계이다.

 

한편 발달장애인법 제정추진의 핵심세력인 장애인부모들은 4개 단체(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중심으로 2012년 2월에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를 결성하여 출범시킴으로써 각 단체에 분산되었던 동력을 하나로 모아 법제정운동을 보다 강력하게 벌일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고, 발달장애인법의 연내 제정을 목표로 국회와 정부를 압박하는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 글에서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놓고 최대의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13년 상반기 현재의 시점에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운동이 갖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왜 별도의 발달장애인법인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그리고 지적장애를 동반한 중복장애인 등 발달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삶의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의사소통과 지적 능력의 제한, 사회 적응력의 부족 등의 이유로 발달장애인이 고용시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으며(지적장애인 고용률 16.6%, 자폐성장애인 고용률 12.6%) 일을 한다고 해도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임금(월평균 40.16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기방어능력의 약점으로 인해 인신매매, 경제적 착취, 성폭력 등 각종 인권침해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11).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에게 추가적인 지원과 보다 적극적인 권리옹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요구를 왜 별도의 법안제정을 통해 충족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특정한 장애유형을 위하여 별도의 지원체계를 구축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과연 별도의 법제정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거나, 혹은 한발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이 장애인복지법 상의 각각의 장애유형마다 별도의 지원 법률을 제정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실재한다.

 

특정한 장애유형을 위한 별도의 법률제정과 지원체계 구축이라는 이 쟁점이 갖는 함의는 ‘장애’라는 하나의 보편적 용어로서 모든 장애인의 욕구를 대변하거나 포괄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연관된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체계가 신체적 장애인을 위주로 운영되어 왔다는 비판은 줄곧 제기되어왔다.

2000년 이후만 보더라도 장애인 이동권과 고용, 편의증진, 장애인 차별금지, 그리고 장애인 자립생활 등 여러 주요 영역에서 이슈들이 제기되고 논의되었지만 발달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고려와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발달장애인은 주류사회로부터의 소외뿐만 아니라 장애 내의 이슈에서도 배제되는 이중 소외의 지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와 “장애인”을 동질로 그리고 동질집단으로 설정하는 한 권력관계를 동반한 이러한 이중 소외의 구조는 깨질 수 없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 있으며, 이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이 가진 욕구의 독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반영하는 사회적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한 일이며, 마찬가지로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에게도 그러한 권리가 있다.

 

우리사회는 이미 전체 장애인의 일부인 장애아동만을 위한 별도의 법(장애아동복지지원법)을 제정하였고, 발달장애인법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수화언어기본법, 그리고 여성장애인을 중심으로 여성장애인법 등이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도 “장애”라는 단일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보다 세분화된 계층별, 유형별 욕구들이 분출되고 법적인 권리로써 그 욕구들을 충족시키려는 움직임은 이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발달장애인법은 기존의 장애인복지체계와 어떻게 다른가?

 

장애인복지체계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누구에게(지원대상), 누가(인력), 무엇을(지원내용), 얼마큼(지원의 양), 어떻게(지원판정기준 및 서비스 전달체계) 지원하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과정에서는 아마도 지원대상을 제외한 각각의 요소마다 법제정추진세력과 정부 간에는 뜨거운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우선 지원의 양과 관련해서 국회에 발의된 발달장애인법안은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표준소득보장금액으로 설정하여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보편적으로 보장하고 있고, 이에 필요한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특별기금을 조성해서 조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지원예산의 규모를 놓고 가장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만일 발달장애인법안의 규정대로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체계와는 별도의 소득보장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면 향후 전체 장애인의 소득보장문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참고로 발달장애인법안의 소득지원체계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발달장애인 소득지원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임금소득과 금융소득 등 개인소득이 없는 발달장애인에게는 표준소득보장금액을 전액 지원하고, 개인소득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그 소득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표준소득보장금액에서 감하여 지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개인소득이 표준소득보장금액의 두 배 이내의 범위에 있을 때만 소득지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두 번째로 지원판정기준과 서비스 전달체계는 현재 장애계의 최대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현재 의료적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장애등급 판정과 그에 따른 서비스 적격성 획득의 후진적인 지원판정체계를 벗어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다면적 사정을 통해 욕구를 파악하고 서비스 내용을 결정하는 보다 합리적인 지원판정체계를 법안에 담고 있으며, 특히 개인별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여, 서비스 판정과 연계 그리고 서비스 모니터링이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관리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원판정체계와 관련해서 가장 큰 쟁점은 새로 설치될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다면적 사정을 담당하는 별도의 인력구조를 만드는 것에 있으며, 더불어 서비스 전달체계를 담당할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따른 장애아동지원센터와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이 담당하도록 할 가능성은 많지만 그 설치형태를 지자체형으로 할지, 기존의 공단에게 위탁할지, 아니면 새로운 공공기관에 위탁하거나 설립할 지를 놓고 논쟁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전달체계의 쟁점은 향후 전체 장애인 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시군구의 희망복지지원단과 같은 전체 사회복지체계 내에 장애인복지체계를 구축하는 방향과 현재 장애판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위탁하는 방향, 혹은 각 지자체에 새로운 담당기관을 설치하는 방향 가운데 어느 한쪽에 무게중심을 쏠리게 하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세 번째로 지원내용에 있어 국회에 발의된 발달장애인법은 전체 98개 조항 가운데 50여개 조항을 서비스 내용에 할애하고 있으며 건강, 재활, 직업, 소득보장, 주거, 돌봄, 여가, 문화, 참여, 권리옹호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달장애인의 질 높은 삶과 지역사회 참여에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을 조항별로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취약한 권리옹호의 문제를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권익옹호센터를 시도단위에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 센터에 변호사 등의 전문인력을 배치하여 발달장애인의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교육 및 홍보 활동과 더불어 조사권과 접근권, 대리소송권 등 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인권침해(의심)사건 발생 시 실효적으로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법안검토의견에서 다른 유형의 장애인과의 형평성문제 또는 다른 법률이나 지원체계와의 충돌문제를 들어 지원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 앞으로 권리옹호체계를 포함하여 지원내용의 범위와 유형을 놓고도 중요한 쟁점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인력과 관련해서 발달장애인법안은 개인별지원계획 수립을 포함한 통합적인 사례관리의 담당자로서 발달장애인 서비스조정자(service coordinator)를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배치할 것과 발달장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사회복지 인력(발달장애인복지사)을 서비스 제공기관에 배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전문인력의 양성과 자격관리에 대해 정부는 검토의견을 통해 수용불가의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앞으로의 논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은 장애인부모운동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

 

2000년대 초반 장애인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형성되고 진행되어 온 장애인부모운동은 2007년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제정과 2011년의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이라는 매우 뚜렷한 법제도 개선의 역사적 성과물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과 장애인가족지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장애인 권리증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입법운동 차원에서 성인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법제정운동은 아동기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 복지의 지원체계 수립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후에 장애인부모운동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종착지이다. 설사 아동기에 교육과 치료와 필요한 모든 지원을 자녀에게 쏟아붓는다 해도 발달장애인이 성인기에 도달해서 할 일이 없고 갈 곳도 없으며 지역사회에 참여하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다면 아동기에 쏟아부은 그 모든 노력은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장애인부모운동은 부모운동이 먼저 일어난 서구와는 다른 경로를 밟아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60년대에 시작된 탈시설운동에서 지역사회 생활운동 그리고 통합교육운동의 흐름으로 장애인부모운동이 진행되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반세기 뒤인 2000년대 초반 장애인교육권운동을 시작으로 장애아동복지체계 수립운동에 이어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운동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장애인부모운동의 시간적 차이나 운동이슈의 선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결국 장애인부모운동의 핵심은 교육과 복지 그리고 권리옹호와 지역사회 참여를 발달장애인의 전 생애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권리로써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법 제정운동의 흐름에서는 앞서의 장애인교육법이나 장애아동복지지주어법 제정 때와는 다른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하나는 법제정 추진세력의 성격문제이다. 앞서의 입법운동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라는 새롭게 형성된 부모운동조직을 주축으로, 강한 “물리적 투쟁력”을 바탕으로 추동되었다면, 발달장애인법 제정운동은 상대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장애인부모단체들을 포함한 연대체(발제련)가 구성되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운동주체의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법제정운동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단체의 성향차이로 인해 무엇보다 연대체 내부의 의견조율이나 합의도출이 매우 중요한 도전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문제이다. 장애인교육법과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은 장애아동의 대리인으로서 부모가 나서서 법제정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은 아동기가 아닌 성인기의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이고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법률제정의 중요한 취지를 따른다면 법제정의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견과 입장을 반영하는 일도 당연히 요구된다.

  현실적인 문제는 외국의 피플 퍼스트(People First)와 같은 발달장애인 당사자 조직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더욱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 법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부모의 입장을 발달장애인의 입장과 전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는 사안이 있으며, 지금까지 발달장애인법 제정운동의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참여와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작업에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서막은 끝이 나고 본막이 오르고 있다. 2013년 상반기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주인공인 예승이 아빠 용구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적장애여성이 초등학생들에게도 집단성폭행을 당하는 끔직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어선에 팔려가서 강제노역과 착취에 시달리는 일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성인이 되어 일생을 집안에 박혀있거나 시설에서 평생을 살다가 삶을 마감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지역사회에서 함께 일하고 먹고 잠자고 사랑하고 놀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바로 우리 모두의 손에 지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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