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1-01   64

[복지칼럼] 국민연금이 ‘내돈내받’(내 돈 모아 내가 받기)이 아니라고?

[복지칼럼] 국민연금이 ‘내돈내받’(내 돈 모아 내가 받기)이 아니라고?

-2050년 위기를 같이 준비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이은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코로나 2년 차 가을 초입, 저녁 무렵 지인과 함께 방문한 국수집에서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1인 1주문 하셔야 한다’는 얘기도 반가움으로 들리는 건 소중한 일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 팬데믹의 영향이다. 그러나 일상을 회복하자는 바람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위기’라는 단어와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코로나의 영향이라고만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그동안 너무나 다양한 위기들을 보내고 맞이해왔다. 경제위기는 오랜 친구처럼 수시로 등장하고, 기후위기도 일상 언어가 되었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용어를 전환한 게 불과 2년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위기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예측 불허의 상황이 위기 인식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건 분명하다. 

공적연금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사회변화와 위기는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공적연금제도는 장기간 운영되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위기의 시대에 제도가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크다. 당장 30년 후인 2050년만 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인구재앙은 2050년을 절정의 시기로 예측한다.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되어 2050년은 지구의 온도가 얼마나 오를지,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상상하기도 무섭다. 뜨거운 지구에서 살아남았다면 2050년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2050년은 예정대로라면 내가 국민연금을 탄 지 10년 정도 지난 시점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2050년은 기금고갈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난 10년간 재정계산을 통한 예측은 2050년을 전후로 기금고갈을 조금 앞당기던가 조금 늦추던가의 차이만 있을 뿐 고갈은 분명히 그 즈음에 발생한다. 10년 연금을 받은 후 돈이 사라지는 우울한 미래를 맞이할 나는 주변에 국민연금기금 고갈을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연금을 타기 시작해서 10년만 버티면 손해는 없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이 말은 연금을 타기 시작한 후 약 10년을 전후로 내가 준비한(기여한 보험료) 부분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 이후의 연금은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수지균형이 안 맞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핵심 공격지점이 된다. ‘내돈내받’(내 돈 내고 내가 받기)처럼 국민연금이 내가 낸 돈만 모아서 내가 받는다면 매달 낸 돈의 4배의 돈을 죽을 때까지 받기로 한 약속은 허황된 이야기이다.(현재 9% 보험료, 40% 소득대체율) 계산이 안 나오는 ‘내 돈 모아놓기’는 금방 바닥날 것이다. 이는 후세대 부담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진다. 모든 세대가 세금으로 걷은 돈의 많은 부분을 노인의 생계보장 비용으로 감당하는 게 버거워질 것이다. 때문에 길어진 평균수명을 맞이한 노인은 그 누구도 마음 편히 노후를 보내기 어려워졌다. 

 

기금고갈의 위기는 지금까지 국민연금을 조금이라도 넣은 분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다. 노후를 대비하려는 노력이 불안을 가중시키는 역설이 작동하는 것이다. 현금성과 관련된 부분이니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면서 쌓아온 세월이 있는 분들은 기금고갈 시점에 가장 예민하고, 불안감은 억울함으로 전환된다. 어떻게 노후를 보내고 살 것인가의 걱정보다는 ‘손해 본다’는 기우가 더 크다. 심지어 저명한 인구학자도 최근 그의 책에서 공적연금의 고갈이라는 기정사실 앞에서 포기와 좌절의 기분을 가지고 개인 준비1)를 얘기하지 않았던가.

 

공적연금제도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을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사회가 함께 대비해왔다는 것! 노후소득보장제도는 노동과 여가, 인간의 생애주기가 한 개인에게만 적용되어 형성되어 가는 게 아니라 집합적으로 엮이면서 같이 준비해 가야 하는 영역이다. 혼자 준비할 수 있다면 사회적 위험이 아니다. 사회복지정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쉽게 얘기되지만 제대로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연금으로 세대가 씨줄, 날줄로 엮여 있다. 즉, 공적연금은 [내 저축]이 아니라 [함께 보장]이다. 같이 준비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공적연금이 현금으로만 드러나면서 내적 갈등과 세대 간 갈등의 온상인 것처럼 부각되었다.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정부는 국가가 보장하는 저축, 즉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국가가 들어주는 저축이라고 홍보했다. 국민연금은 오랜 기간 동안 강제저축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제도 도입 초기에는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보다는 국가가 필요한 자원 동원이라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1998년 국민연금이 도시지역 자영자들까지 확대될 때에도 이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대내외 경제 상황 속에서도 연금가입자의 확보가 중요했고, 연금정책의 목표로 가입자 확대에 주력할 때였다. 강제저축의 저항 속에서도 공적연금을 개인 저축처럼 인식시키는 노력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 적금과 공적연금이 다른 이유는 강제성의 원칙에 있는 게 아니다. 제도의 작동 원리 속에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준비가 함께 들어가고, 따라서 집단 속에 나를 분리해서 노후를 혼자 준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원리가 들어 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같이 준비’의 논리가 가능할까?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속속 등장한다. 코로나 시기는 위기의 시대에 걸맞게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노동소득은 늘지 않으니 투자를 통한 자산 불리기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누구나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고, 어디에 분산투자하고 있는지가 일상 언어가 된 이 시점에 차곡차곡 노동소득의 일부를 떼어서 노후를 같이 준비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게 될까?2) 여건의 변화와 위기의 도래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안정적 일자리, 세대 간 인구 균형이 전제가 되어 장기 운영을 약속하고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챙겨줄 수 있었던 연금제도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양상의 사회구조 변화와 제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국민연금제도를 수정 보완하면서 운영해왔던 걸 생각하면,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건 기본 원칙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제도의 핵심 작동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결과 불가능한 영역에서 각자도생을 준비해야 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미래 예측을 업으로 하는 인구학자도 그의 책에서 공적연금의 기금 고갈과 보장되지 못할 노후에 대한 걱정을 풀어놓았다. 그만큼 ‘내 돈 모아 내가 받기’의 규칙은 30년이 넘게 우리를 지배한 생각이었다. ‘함께 준비하고 같이 노후를 즐기자’는 생각의 공유는 이제 황당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위기는 계속 다가오고 걱정만 가득 안고 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인구학자의 조언을 구하기로 한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반드시 온다.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시점을 판단의 기준으로 놓아야 하지 현재가 될 수는 없다. 판단의 기준을 미래에 둔다는 것은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현재의 제도와 정책들을 평가한다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는 오늘은 물론이고 미래의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기성세대의 경험과 의견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영향은 미래 세대가 더 많이 받는데도 말이다.”(조영태, 2021, 인구 미래 공존, 278-279)

 

노후의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면 공적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판단을 미래에 두고, 미래 설계를 누가 해야 할지도 답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현시점에서 미래의 공적연금을 가장 걱정하는 이들은 곧 연금을 탈 분들이 많고 이들이 설계하는 미래의 위기는 30년이 아닌 100년까지도 이어진다. 이들이 걱정하는 건 미래세대의 노후일까, 아니면 자신의 노후일까? 이분들의 진정성만큼은 오해하고 싶지 않지만, 내 돈 내고 내가 받기로 30년 후 연금제도가 멈추는 것을 정해진 미래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50년의 위기를 현재 시점에서 고민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누가 나설 것인가의 문제일 수도 있다. 

 


1) 여기서 개인 준비는 개인연금을 추가로 가입하라는 게 아니라,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고 어떻게 하면 연금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었다. 

 

2) FIRE족의 스펙트럼도 매우 넓어서 경제적 독립의 기준을 어느 정도로 잡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FIRE족의 사례에서는 국민연금이 60세 이후 노후소득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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