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2-01   534

[복지톡] 힐튼호텔도 가릴 수 없는 존엄한 삶에 대하여

복지톡 : 힐튼호텔도 가릴 수 없는 존엄한 삶에 대하여

김강태 양동쪽방주민회 / 이재임, 이채윤 구술작업 기록자

인터뷰 및 정리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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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주민 8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가 발간되었다. 양동은 1978년 9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진행되지 않다가 2020년 1월 서울시가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 계획 변경안’을 결정하며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양동 쪽방 주민회는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양호한 주거환경으로 재정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자로 참여한 김강태 양동쪽방주민회 장례위원(가명), 구술작업팀에 참여한 이재임, 이채윤 기록자를 동자동 해피인에서 만났다. 

 

이재임 양동의 정식 명칭은 남대문로5가예요. 햇빛이 잘 들어서 양동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빌딩이 너무 들어서서 햇빛이 안 들어와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양동의 이전 자료도 찾아봤는데 이 주변 지역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판자촌이 형성된 지역이었어요. 이후 낡은 건물들이 밀집되었는데, 도심 재정비촉진계획으로 고층 빌딩 단지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판자촌이나 쪽방주민이 재정착한 사례는 없었고요. 그중 이번 구술생애사 작업을 진행한 ‘양동’은 1978년 지구 지정이 되었지만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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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태 2019년 서울시가 다시 계획을 발표했을 때에도 주민들은 의견서와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일이 반복될까 걱정된다는 의견을 냈어요. 이전처럼 무작정 내쫓지 말고 주민들을 적정한 주거지에 이주시키는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이야기했어요. 인근에 고시원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키려고 준비했었던 걸로 알아요. 그런데 고시원 인근과 후암동 시장 상인들이 ‘쪽방촌 이주’라며 이주를 반대했었어요. 그렇게 고시원으로 이주하는 것은 무산이 되었고, 이후 중구청하고 서울시 도시재생과가 녹지공원 부지에 집을 짓겠다고 나오더라고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마땅한 화장실이고 주방이고 없는 곳에서 살다가 이사한다고 하니 그것만도 어디냐는 이야기도 해요. 지금까지 중구청과 건설사에서 낸 계획에는 베란다가 없어요. 평수도 영등포는 16제곱미터, 동자동은 공공이 재개발을 하다보니 18제곱미터인데 양동은 14제곱미터로 공급하겠다고 해요. 저도 최소 16제곱미터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그리고 혼인신고가 되지 않았지만 실제 같이 살고 있거나 휠체어 이용이 필요한 사람처럼 좁은 공간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구조와 다른 평형의 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주민들은 워낙 지금 생활하는 곳이 열악하니까 동네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수급자가 아닌 주민도 입주할 수 있냐는 거에요. 한 동네에서 같이 지내는 주민이고 똑같은 상황인데 이런 것에 대해 아무 소식이 없어서 답답해요.

 

이재임 2021년 6월 25일 공람공고가 났어요. 그래서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는 사람은 공람공고 전 3개월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이어야 해요. 날짜로는 3월 25일까지 전입신고가 되어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은 도시계획위원회도 열리고 논의해서 평수, 면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계예요. 양동재개발은 민간개발인데 민간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짓기는 하지만 수급자만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의견을 냈어요. 그곳에 생활하고 있던 사람이면 당연히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하는 건데, 임의로 수급자에게만 주겠다거나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죠. 평형도 주방이나 화장실 등 공용으로 쓰던 시설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거니까 사람이 실제로 살 것을 생각해서 최대한의 면적을 제공하면 좋겠어요. 14제곱미터면 딱 최저주거기준이에요. 16제곱미터만 되어도 좋겠다고 하시지만, 최소한으로만 할 게 아니라 동자동처럼 아니면 동자동보다 더 크게 18제곱미터 이상을 제공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양동 쪽방 주민회는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 인정시점을 최종 공람공고일인 2021년 6월 25일로 정할 것, ▲ 실 거주자에 대한 예외 없는 자격 인정, ▲ 입주대상자를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공급 호수를 늘릴 것, ▲ 임대주택의 면적의 확대와 필요 시설 마련, ▲ 사회복지시설 및 거주민 커뮤니티 공간 마련, ▲ 사전 퇴거 중단, ▲ 임시 주거 공급,▲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김강태 님은 양동쪽방주민회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금 주민회 활동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김강태 이동현 활동가를 알게 된 지 벌써 9~10년이 됐어요. 서울역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한참 거리노숙을 할 때였어요. 겨울에 거리에서 생활하는 게 너무 추워서 정신병원에 갔다가 거리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위 호객행위를 해서 수수료를 받고, 시설은 수급을 받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약을 처방하고 먹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입원하면 한 사람당 80만 원, 수급자는 100만 원도 더 받는다고 했어요. 또 한번은 서울역 인근에서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했는데 인신매매단이었던 적도 있어요. 이동현 활동가와는 우연히 만나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었는데 내 이야기를 인권위원회에 이야기할 수 있게 연결해 주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주민회는 올해 1월부터 활동했어요. 처음에는 장례위원을 했어요. 동료들이나 양동 주민들이 돌아가시면 무연고일 때가 있는데 우리라도 가서 명복을 빌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올해에도 주민분들이 돌아가셔서 주민회에 연락이 오면 장례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장례 참여 외에도 올해 1월 공람공고에 맞춰 의견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도 같이 하고 중구청 사업설명회를 같이 들으러 가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역사를 밝히고 드러내는 것이 주저되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수락하게 됐을까. 화자로 참여한 김강태 님과 김강태 님의 이야기를 정리한 이채윤 님에게 책 작업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강태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죠. 이동현 활동가가 양동 사람들에게 살아온 과정을 책으로 출판하면 어떻겠냐고 했었어요. 그때는 아직 양동 주민들을 잘 모를 때여서 아는 주민들 몇몇에게 이야기를 했었어요. 내 속을 다 드러내는 거 같아서 창피스럽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왕 나선 거 책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다고 수락했어요. 

 

이채윤 작년 가을에 첫 모임을 가졌어요. 양동 재개발 진행되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공공임대주택 계획이 안 나왔어요. 적절한 대책 없이 주민들이 쫓기듯 흩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우려가 많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양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이 특히 더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정해지게 되었어요. 김강태님에게 전화를 드릴 때마다 책 필사를 하거나 청소하고 계셨어요. 여전히 제가 듣지 못한 삶이 있고, 몇 페이지 안 되는 글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여러번 인터뷰를 하며 조각들이 맞춰지는 경험도 했어요. 양동은 인터뷰를 계기로 주민분들이 모이기도 하고, 양동 재개발에 대한 주민 활동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과 함께 구술생애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어요. 이야기 속에서 화자들 간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도 있고 개별적인 경험들도 드러나지만 빈곤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김강태 원래 우리집이 잘 나갔었어요. 삼촌이 군인이었는데 끗발이 좋았습니다. 나도 해군을 제대하면서 승선경력이 생겼고 선원수첩을 받아서 배를 타기 시작했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배만 탔어요. 아시안게임이며 88올림픽은 구경도 못했어요. 하기는 열심히 했어요. 일본어며 영어며, 동남아말도 공부해서 배가 머물 때면 그곳을 내 집처럼 돌아다녔어요. 배 탈 때는 외교관하는 마음으로 배를 탔습니다. 전 세계 다 돌았는데 제일 멀리 간 건 일본에서 브라질을 왕복한 거였어요. 왕복하면 3개월이 걸렸어요. 그러다 배를 타기를 그만두고 쌍용에서 도색 일을 했어요. 기술이야 배를 타면서 배를 고쳐야 하니까 다 알고 있었죠. 그러다 외환위기가 왔어요. 정리한다고 할 때 외환위기가 오는 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퇴사를 했어요. 다시 일하려고 보니 일자리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돈을 벌 동안 집에 부지런히 돈을 줬어요. 지금 그 돈 같으면 과천에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어 줬어요. 그런데 일이 없어지고 집에 가보니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려 있었고 가족들은 내 짐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어요. 마음에 칼을 품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그런데 막상 서울에 올라오니 바로 형을 찾아갈 수가 없었어요. 거리에서 그렇게 생활을 하게 되었고 돈을 벌어봤자 누가 다 가져갈 건데 하는 생각에 돈도 벌기 싫었어요. 하지만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었어요. 거리 노숙과 일을 계속 반복해 왔어요. 처음에는 고양시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숙식만 하고 무료 자원활동으로 일을 했어요. 틈틈히 공부도 했어요. 사회복지 2급 자격증도 따고. 그 후에도 여러 일을 했어요. 양계장에서도 2~3년 일한 적도 있고, 돼지농장에도 갔었어요. 일을 하고 거리로 다시 나오게 되면 그 돈을 사람들과 나눴어요. 돈이 생겼을 때 밥을 사고 다른 사람이 또 돈이 생기면 그 사람이 술을 샀어요. 부르는 곳에 가서 일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는 그 일도 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해피인의 문지기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재임 회의를 위해 안에 있으면, 주민들이 해피인에서 빨래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오기도 하지만, 김강태 님을 만나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볼 수 있어요. 이웃과의 관계가 오래되어서 찾아오는 주민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김강태 밥도 많이 사고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잘 없어요. 지금 해피인에 있는 것도 내가 잘살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와 이웃을 위해 할 일을 찾아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양동에서 오래 생활하기도 했지만 책으로 다른 주민들의 이야기를 잘 알게 됐어요. 책이 정식으로 발행되기 전 초벌로 정리된 글을 읽고 어쩜 그렇게 기구하게 살았나 싶었어요. 어떻게 삶의 이야기가 책 몇 장으로 되겠냐 싶지만, 그 모습이 나의 삶과 한결같이 다 비슷하다 느꼈고 안타까울 뿐이었어요. 사람들 삶에서 참 순수하고 정직한 게 많이 보였어요. 일은 많이 하지만 임금을 못 받거나 사기를 당하고, 그러면서 비록 돈은 없이 살아도 순진한 면을 지니고 있어요. 

 

이재임 구술생애사 작업을 위해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날은 삼천포로 빠져서 수다만 떨다 나올 때가 있어요. 어떤 날은 ‘아, 책에 못 쓰겠는데?’ 싶은 때도 있었지만,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화자들의 이야기와 지금 하고 있는 나의 활동이 만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 동네를 잘 몰라서 처음에는 긴장되고 무서웠는데 이제는 잘 아는 동네가 되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세 사람과 ‘집’ 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재임 집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요. 바로 채광과 환기예요. 인간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집에서 많이 살았었어요. 옥탑방에 살았을 땐 너무 추워서 전기밥솥을 안고 잔 적도 있어요. 아침에 물이 얼어서 못 씻고 학교에 간 경험도 있고요.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책에 이 지역을 잘 볼 수 있게 약도를 그리는 작업도 했어요. 지도를 입체적으로 그렸는데, 네모반듯한 아파트면 대충 상상해서 그릴 수 있지만 이곳은 워낙 덕지덕지 집을 짓고 증축한 곳도 많고 창고로 지은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실제로 돌아다니며 집을 봤어요. 사람이 살면 안 될 구조로 지은 곳에 사람을 살게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받겠다는 욕망이 가득한 집들을 보면서. 양동 재개발 과정에 주민들이 안정적인 집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채윤 겨울에 인터뷰를 끝내고 모였을 때 화자분들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는 걸 했어요. 그때 한 분이 본인이 지내는 방이랑 친구가 오면 머물 공간이면 좋겠다고 한 게 기억에 남아요. 저도 집이라는 곳이 쉴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지금 같이 살고 있는데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화장실도 안에 있어야 하고 추울 수 없으니 난방도 잘 되어야 하고, 불시에 친구들이 왔을 때 살림살이를 치울 가구와 공간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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