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2-01   971

[동향1] 근로기준법 차별지대와 모두의 권리

동향 1 : 근로기준법 차별지대와 모두의 권리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

소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라는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아 다소 들뜬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근로기준법을 근로기준법으로 바꾸는 운동이 매우 힘든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선 현장에서 세상을 일구고 있는 많은 분들과 뜻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고맙고 소중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근로기준법 차별폐지의 힘을 모으고 있는 네트워크들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한 차별지대 노동자들과 모두의 권리를 함께 실현하려는 노동자ㆍ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단결하는 노동조합입니다. 2019년 10월 9일, “일하는사람누구나 권리찾기 1000일 운동계획”을 채택하고, 비영리단체로 출범할 때의 이름이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인데, 여전히 당시의 약칭인 ‘권유하다’로도 불립니다. ‘권유하다’는 창립 취지에 따라 차별지대 당사자들과 함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유하다는 본격적인 당사자 조직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동조합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노동조합”을 표방하며 노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하고, 올해 1월 1일 설립신고를 받아 법내노조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피해당사자, 법률단체들과 함께 “일하는사람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을 결성하여 근로기준법 제2조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각계각층의 공동제안으로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을 구성하였고, 무응답 국회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의 입법과제에 응답할 수 있도록 더 크고 강한 힘을 모아 나가고 있습니다. 11월 24일에는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별이 확산된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차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세상 속 많은 이들이 근로기준법 차별폐지의 과제를 함께 실현해 나가는 주인공으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각지대? 차별지대!

코로나19 재난시대에 취약한 근로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을 지칭하며 ‘사각지대 노동자’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사각지대’의 사전적 의미는 거울이 비출 수 없는 각도, 즉 사물이 보이지 않는 각도를 뜻합니다. “법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행정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라고 사용하면, 노동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역이 불가피하게 존재함을 전제하게 됩니다.

수시로 법은 개정되고, 각종 대책이 쏟아져도 충분한 휴식 없이 공짜노동으로 힘들게 일하다 손쉽게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법적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보이지 않게 방치된 사람들인지, 아니면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 둔 ‘차별지대’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지요?

 

근로기준법을 회피할 수 있는 차별지대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에 관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제정 목적과 이 법의 기준이 최저기준이라는 것의 헌법적ㆍ사회적 의미를 먼저 짚어봅니다.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하고, 이러한 법적 강제가 없으면 이 기준에 미달하는 취약한 근로조건에 처할 가능성이 큰 노동자들의 근로관계를 사회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취약한 노동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각지대의 용법으로는 이 법을 미처 준수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근로관계, 차별지대의 주장으로는 이 법을 회피할 수 있는 근로관계가 왜 존재하느냐 물을 것입니다.결론적으로 어떤 사업주들은 ‘사업장 규모’(제11조)와 ‘계약의 형식’(제2조)을 명목으로 이 법의 적용을 회피하고, 근로기준법의 최저기준에 미달하는 근로관계를 통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법에 명시된 규정조차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사업주들이 있고, 이에 대한 감독과 처벌이 부족하니 위법과 탈법이 더욱 횡행한다는 지적도 타당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법령 미준수가 사태의 원인이 아닌 결과이고, 차별제도의 전형적인 활용법이라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이 사라진 세계를 사각지대가 아닌 차별지대로 직시해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과 해법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습니다.

 

근로기준의 핵심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

사업장 규모, 그것도 하필이면 상시근로자 5인이라는 경계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여부를 나누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비판은 어렵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 제정의 취지와 이 법에 명시된 목적만 확인해도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는 합리적으로 주장할 여지는 없습니다. 영세한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하지 말자는 주장은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무지의 고백입니다. 법적 강제가 없으면 취약한 근로조건에 처할 가능성이 큰 노동자들의 근로관계를 사회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법을 제정하고서, 이런 법이 필요한 곳일수록 덜 적용하자는 괴이한 주장이 되고 맙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대표적 조항으로 언급되는 것은 해고의 제한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 휴업수당, 연장ㆍ휴일ㆍ야간 가산수당, 연차휴가 등입니다. 고용안정, 건강과 휴식에 관한 보장은 그 조항 자체로도 근로기준의 핵심이자, 노동상담을 의뢰하는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근로기준의 핵심조항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근로관계 전반에서 취약한 근로조건이 고착된다.”

 

손쉽게 해고될 수 있고,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는 근로조건에 처한 노동자는 사업주의 계약 위반이나 불합리한 조치에 저항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해고의 위험은 취약한 근로조건을 고착시키는 결정적 조건으로 작동됩니다.

제4장 근로시간과 휴식은 거의 통째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은 물론이고,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과 통제가 사라지면서 실제 근로한 시간에 대한 산정도 희박해집니다. 공짜노동이 만연하게 되고, 저임금 노동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최저임금도 위반하게 됩니다.

법적 구제를 시도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직장 내 동료 노동자들의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단결의 가능성도 무력화됩니다. 개별적 노사관계법인 근로기준법의 차별지대는 노동조합 무풍지대가 되어 집단적 노사관계 자체를 삭제시킵니다.

 

사업장 규모를 위장하여 근로기준법 회피하기

“사업장 규모를 축소하면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고, 노조로의 단결권도 지울 수 있다.”

노동법이 규정하는 사용자책임과 법적 의무를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을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제시합니다. 상시 근로자 수를 5인 미만으로 계산할 수 있으면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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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정의는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사업장입니다. 권리찾기유니온이 주관한 아홉 차례의 사회적 공동고발을 통해 법적 구제에 나선 사업장의 수는 이미 100개를 넘어섰습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A형(사업장 분리형)은 법조계에서는 이미 알려졌던 유형입니다. A형의 경우, 부부간에 소규모 사업장을 쪼개는 수준을 넘어 중견 대기업과 신산업분야에서의 쪼개기 사례 제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B형은 권리찾기유니온이 최초로 가짜 5인 미만 위장 사례로 분류한 유형입니다. 코로나19 재난시대에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는 4대보험 미가입 노동자들의 현실이 현안으로 제기되었고, 상담사례 연구와 사업주 모니터링 등을 통해 4대보험 미가입 이슈의 본질에 접근해 보았습니다.

4대보험 미가입의 본질은 한마디로 노동자성 박탈입니다. 가짜 5인 미만 B형(직원 미등록형)에서 드러나듯이 고용 중인 직원 중 일부를 4대보험에 가입시키지 않는 수법으로 해당 직원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위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업장 규모를 계산하는 상시근로자 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사회보험 가입인정 등은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재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입니다. 그러나 취약한 근로조건에 처한 노동자가 장기 고비용의 소송을 거쳐 자신의 노동자성을 스스로 입증하기 전까지는 사업주가 정해준 대로 근로자 아닌 직원으로 (오)분류됩니다.

최근에는 무자료나 일용근로소득 신고보다 비용처리에 유리한 사업소득자 신고방식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4대보험 가입 대신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면, 해당 직원은 근로소득자가 아닌 사업소득자로 위장되어 버립니다.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노동자들을 ‘가짜 3.3’으로 호명하는 이유는 원천징수세율인 3.3%가 당사자들에게 친숙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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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3.3을 이슈화하는 언론보도의 영향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B형의 제보도 현저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B형(직원 미등록형)의 별칭을 ‘4+3 사업장’(4대보험 가입 4, 미가입 3)으로 정했는데, 콜센터 업종에서 ‘2+100’ 사업장이 등장하였습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사례로 제시된 유명 아울렛은 100개의 사업장으로 분리해 근무하는 직원 250명을 5인 미만으로 둔갑시킨 사업장입니다. 이주노동자를 1,000명 넘게 고용하는 어느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수십 개로 사업장을 쪼갠 후에 다시 미가입을 활용하는 융합형(A+B형) 사업장으로 고발되었는데, 다행히 피해노동자들이 수십 명 단위로 연이어 승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업장 규모를 위장하여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수법은 계속 진화하고, 거의 모든 산업으로 실제 사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사용자책임과 법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간편하고 안전한 마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국회 논의과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이슈로 등장하지도 않다가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적용제외 처리됩니다. 공휴일법 제정 과정에서는 차별반대 여론이 더욱 커졌지만, 차별을 정당화하는 무기는 역시 근로기준법이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차별하는 법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확대하는 법이 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공휴일법으로, 연이은 차별제도의 강행 처리를 앞두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피해당사자들이 절박하게 외친 구호입니다. 근로기준법의 차별조항을 악용하는 사업장에서 노동의 권리를 빼앗겨왔던 이들이 용기를 내 사회적 고발로 함께 권리를 찾아 나섰기에 가능한 주장이었습니다.

차별지대 확산이 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차별제도 확산의 줄거리가 사업장 규모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장을 쪼개는 것에 한계가 없음을 대규모 사업장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굳이 서류를 위장하지 않아도 근로자 수를 줄일 수 있는 마법을 터득한 사업주들은 무자료와 사업소득자를 남발합니다. 가짜를 고발하는 운동에는 한계가 있지만, 차별제도를 악용하는 마법의 급수는 끝없이 진화합니다.

차별제도의 확산은 차별받는 피해자를 확대시킵니다. 위장 사업장의 확산은 차별지대를 넓히고, 누구나 잠재적인 차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미래의 차별로 이어집니다. 공식적인 차별지대의 비중 확대는 취약한 노동시장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차별제도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모두의 권리가 위험해집니다. 평소에 권리가 취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심각하게 위기로 내몰리는 시대에 처절하게 깨달은 교훈이 있습니다. 모두의 권리가 모두를 살린다는 것. 모두의 권리를 위협하는 차별제도의 확산을 막아내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습니다.

국가가 나서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여 기본적 생활을 보장ㆍ향상시켜야 할 노동자들이 오히려 이 법의 적용에서 배제되는 비참한 현실. 이 법의 이름은 근로기준법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51년 전,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무용지물이었던 근로기준법을 불태워야 했던 시대. 지금 수백만 노동자들에겐 불태울 법전조차 빼앗긴 시대. 차별지대의 장벽을 함께 넘어서려는 또 다른 우리들에게 시급히 응답할 시간입니다.

모두의 권리를 위해 근로기준법 차별지대의 장벽을 해체하는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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