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2-01   1829

[기획2] 생태적 관점에서 복지와 국가

기획2 : 생태적 관점에서 복지와 국가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복지국가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을 성찰해왔다. 복지국가의 정치ㆍ경제적 역동은 체제를 지속해야 할 동기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태동하게 했던 초기의 상황과 조건은 완전히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서 복지국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해왔다. 역사적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성과가 다소 과장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변화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들에 복지국가가 과거에 해왔던 정도로 대응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 복지국가가 당면한 변화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체제에 관한 근본적 성찰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최근의 기후위기 담론은 이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실감하게 한다. 기후위기는 태풍, 홍수, 이상기온 등 대기 문제로 나타나지만, 대체로 지구 기온문제로 환원된다. 기온문제는 탄소 배출문제로, 탄소 배출문제는 다시 화석연료 문제로 환원된다. 화석연료는 매장량에 명백한 한계가 있기에 기후위기가 아니더라도 자원의 희소성 차원에서 제기되어 오던 문제였다. 어쨌든 지구 기온문제로 환원된 기후위기 문제의 현실적 해법은 탄소 중립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의 복지국가 체제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축적체제의 산물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적 대응은 복지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밖에 없다. 이미 복지국가는 인구 구조와 산업구조변화, 지구화, 플랫폼 경제, 4차산업혁명 등의 조건 변화로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탄소 중립이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근본적 대응인지에 관해서는 논의를 생략하더라도, 이것이 복지국가 체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ㆍ경제적 역동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복지국가 체제를 변화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괴상한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기후위기에 관한 지구 차원의 인식과 이에 관한 정책적 대응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두 개념인 복지와 국가를 생태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복지: 개념적 혼란과 제도적 환원

복지는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복지는 “행복한 삶”이다.1) 단순하고 쉽다. 사회복지는 일상어로서 복지와는 다른 의미와 용례를 갖는다. 사회복지는 사회와 복지의 합성어로, 단어의 형식에 따르면 두 개의 뜻을 갖는다. 하나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복지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복지상태에 이르기 위한 사회적 혹은 집합적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회복지는 대체로 두 번째 의미, 즉 “국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사회정책과 시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2) 혹은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조직화된 공적 서비스 혹은 사적 사회서비스”3)로 사용된다. 

사회복지 개념은 산업사회의 공학적 설계로부터 생성된 것이다. Merriam-Webster 영어사전에 따르면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이미 14세기에 사용되었지만, 사회복지(social welfare)는 1912년에 최초로 사용되었다.4) 산업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내의 여타 제도와 병렬적으로 존재하면서 배타적 경계를 갖는 제도 영역을 갖는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사회복지 개념 자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복지는 개인과 가족의 사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였고 국가의 역할은 구휼(救恤) 차원에서 잔여적으로 한정되었다. 산업사회에서 복지는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국가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와 요구에 대해 제도적으로 개입한다. 그래서 산업화 이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복지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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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복지에 관한 국가의 권한의 범위를 결정한다. 국가는 사회의 문제와 인간의 요구를 규정하는 배타적 권한을 행사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는 개인의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 국가는 제도적으로 개입해야 할 개인의 문제와 요구의 범위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고 충족할 수준과 방법을 결정한다. 현대 복지국가의 제도적 기초를 제공한 베버리지보고서는 당시 영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다섯 가지 사회악을 규정하고, 이에 조응하는 제도적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지는 인간의 문제와 요구의 범위가 넓고 다양할수록, 그리고 이의 충족 수준이 높을수록 적극적인 복지국가로 분류된다. 그래서 복지국가는 인간의 보편적 이성이 합리적으로 작동한 결과이기 전에 특정 시기의 역사적 정치 역동의 결과다. 사회복지제도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문제와 요구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요약되고 표준화되며, 대체로 소득 문제로 축소된다. 복지국가의 제도적 급여는 소득보충을 위한 화폐와 사회서비스 구매를 위한 바우처로 구성된다.

사실, 한국에서 사회복지는 제도적 개념이 아니다. 현행 법률의 명칭에서 ‘사회복지’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세 개5)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에서 사회복지 증진에 관한 국가의 노력 의무를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구체화한 법률은 없다. 사회보장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있을 뿐이다. 복지국가에서 “행복한 삶”을 뜻하는 복지는 안전망을 뜻하는 사회복지로, 사회복지는 다시 사회보장제도로 축소되었다. 우리는 일상의 공간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지, 그물 위에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는 일종의 관념적 존재로서 현실에서는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government)의 형태로만 지각된다. 정부는 중층의 사회적 관계 속에 배태된 각종 제도와 관료조직의 총합이다. 복지국가에서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의 관계 재배치를 통한 조절을 통해 자신의 체제를 재생산한다.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는 축적체계의 변화 등 사회ㆍ경제적 변화에 대한 대응 양식으로 나타난다. 정치조직으로서 국가는 다양한 세력 간의 불안정한 균형에 의존하여 실질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물질적 양보와 상징적 보상을 통해 다양한 세력 간의 갈등을 억제하려고 한다. 국가의 이러한 활동은 국가체제 재생산에 상대적 통일성과 응집력을 보장한다. 

복지국가는 재분배국가이다. 재분배를 통해 복지국가가 겨냥하는 선언적 목표는 빈곤 제거 혹은 불평등 완화이다. 지난 20년간의 서구 복지선진국을 포함하여 OECD 회원국의 빈곤율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약간 증가했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도 의미있게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이 역시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해야 옳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GDP 대비 사회지출의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율과 소득불평등도의 변화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6) 복지국가의 사회지출 증가는 복지국가의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복지국가가 한 일을 보여 준다. 복지국가의 성과는 복지국가 스스로 선언한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지 평가함으로써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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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사회공학적 제도설계 능력은 사회의 문제와 요구의 팽창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제도적 관점에서 문제와 요구는 개인과 가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제도 간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복지국가의 제도는 국가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식별하고, 규정하고,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환원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특이점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으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문제와 요구는 더이상 제도적 대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생태적 관점의 도입

복지국가가 기초해 있는 경제모형은 지속 불가능하다. 명백히 자본주의 국가모델로서 복지국가의 구조적 한계는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생태적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한다. 생태계의 수용력을 넘어서는 유한한 자원 고갈은 인류의 장기적 생존과 일치하지 않는다. 산업주의 축적체제를 전제로 하는 복지국가의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복지국가의 경제를 무너뜨릴 것으로 보인다. 복지국가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지속 불가능한 경제성장 패턴에 묶여 있는 한 복지국가 스스로 선언한, 혹은 우리가 염원하는 장기적 복지 실현을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된다. 

복지국가 패러다임에 대한 생태주의적 비판은 사회정책의 새로운 원리를 모색하는 데 함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생태적 관점의 복지는 다음의 세 가지 원리를 따른다. 첫째는 탈지배(de-domination)와 다양성(diversity)이다. 생태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문제와 요구를 표준화함으로써 획일적 서비스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복지국가의 제도를 비판한다. 탈중심적 복지 기획과 서비스 공급을 통해 인간의 제도의존(institution dependence)을 극복한다. 둘째는 지역성(locality)과 참여(participation)이다. 생태적 복지는 개인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로 인식하고, 따라서 문제 해결 역량과 자원이 지역에 내재해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다. 지역 기반의 복지공급은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공급과 소비는 자연스럽게 중복된다. 셋째는 상호부조(mutual aid)와 연대(solidarity)이다. 생태계 내의 유기체는 협동과 상호의존 방식으로 유지된다. 억압과 차별을 부정하고 상호보완을 통해 개체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것이 유기체 진화의 핵심 요소이다. 생태적 복지는 자립(independence)담론에서 상호의존(interdependence)담론으로의 이동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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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활동의 중심에는 생태적 가치가 자리 잡는다. 경제, 환경, 복지는 구별되지 않으며 통합과 균형을 이룬다. 생태주의는 복지국가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관점에서 복지국가를 재개념화하려는 것이다. 생태적 관점에서의 국가는 정부(government)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거버넌스(governance)로 구현된다. 거버넌스는 제도의 창안, 강화, 재생산과 관련된 집합적 문제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자 사이의 의사결정 및 상조작용 과정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복지공급 거버넌스는 복지공급을 위한 권력과 규범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시민참여와 협력의 구조가 필요하며,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관계를 생태적 관계로 인식하고 유지해야 한다.


1) 국립국어원(2021), 표준국어대사전. http://asq.kr/wIuqA

2) 국립국어원(2021), 표준국어대사전. http://asq.kr/xAxiLwX

3) Merriam-Webster Dictionary(2021). http://asq.kr/YazpHl2

4) Merriam-Webster Dictionary(2021). http://asq.kr/YazpHl2

5) 사회복지사업법,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6) 한동우(2019), 「복지국가와 소득 불평등의 관계에 관한 비판적 고찰」, 사회복지연구, 50(1): 201-233.(Novem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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