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5-01   60

[복지톡] 위기의 시대, 국가는 어디에

[복지톡] 위기의 시대, 국가는 어디에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인터뷰 및 정리 조희원,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돌봄 영역이 민간에 맡겨져 있어 고질적으로 질 낮은 돌봄 서비스와 열악한 노동자의 근로환경이 문제가 되어 왔다. 장기화된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은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돌봄 공공성 강화로 가는 길. 가장 앞서 걷고 있는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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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년 1월부터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정희입니다. 공공운수노조는 25만명 조합원이 함께하는 노동조합이에요. 공공부문과 운수-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민주노총 산하의 산별 노조입니다. 공공운수-사회서비스영역의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동권을 보장하고, 사회공공성을 강화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건 공공운수노조의 비전이기도 하고요.

 

위원장님은 서울대병원에서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했던 간호사이기도 하시잖아요. 여전히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조합원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간호사로 일하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1989년에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입사했어요. 다행히 희망하던 분만실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죠. 생각보다 혹독했어요. 서울대병원이라는 좋은 병원에서도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서 살릴 수 있는 신생아를 살리지 못하는 일들이 수차례 발생했어요. 한 번은 새벽에 쌍둥이 제왕절개 응급수술을 하게 됐어요. 보통 그 정도의 수술에는 최소한 소아과 의사 두 명, 미숙아 쌍둥이를 케어할 간호사가 추가로 두 명이 더 필요해요. 그런데 분만실 밤 근무 간호사는 늘 두 명 밖에 없어서 결국 아기를 살리지 못했죠. 그날 새벽에 간호사가 두 명만 더 있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당시 어리고 경험 없는 간호사였던 저는 주변에 울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때 노동조합에 가서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죠.서울대병원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서울대병원 분만실 인력을 충원할 수 있었어요. 그때 노동조합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 이것이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이유구나 생각했어요. 그 일이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간호사만 더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생명인데, 병원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간호사를 더 고용하지 않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일까요?

 

우리나라는 간호사를 많이 고용하면 수가를 많이 주는 간호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제도로는 충분한 간호사 인력을 확보할 수가 없어요. 간호사를 많이 고용해서 수가를 많이 받는 것보다 간호사를 적게 쓰는 것이 병원 경영에는 더 유리하거든요. 간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병원 경영진의 재량이에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간호등급제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거든요.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여전히 간호사 1명이 환자 2-30명을 보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릴 수 없을 거예요. 제도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환자의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해요.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여러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병원 노조위원장 시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IMF 이후 나라가 망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업장에 정부 차원의 정리해고, 구조조정 압박이 들어왔어요. 정리해고는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자들이 연대해 파업을 결단했었는데, 민주노총 소속의 많은 노조가 같이 싸워서 우리 사회에 정리해고 반대 여론을 이끌어 냈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서울대병원에서의 경험도 그렇고 IMF시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연대의 힘을 느꼈을 때 강한 감동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연대의 경험이 정말 값지죠.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해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했을 때 시민들이 엄청난 지지를 보내주셨어요.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내서 싸울 수 있었고 이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나아가야겠구나 다짐할 수 있었어요. 언론 전하는 파업은 과격해보이잖아요. 하지만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환자를 두고 파업 투쟁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은 투쟁 현장에 나오기 직전까지 심한 갈등을 겪어요. 그래도 오늘 우리의 투쟁이 결국 우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파업에 참여하는 거예요. 여기에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 연대가 더해져 소위 말하는 민중의 힘을 볼 때 어마어마한 감동이 있죠. 위원장으로서 힘도 들지만 이런 연대의 힘을 체감하다보면 “우리가 정말 잘 싸워야겠구나,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질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기요양위원회 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셨어요. 노인 돌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방향으로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여성 종사자가 대다수인 돌봄노동 분야이다보니 다른 분야보다 더욱 사각지대가 큰 것 같아요. 

 

저는 장기요양위원회에 가입자 대표로 6년 동안 참여했어요. 많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있기 전부터 노인돌봄은 개인의 책임, 여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을 시행해야 할 국가의 책임이라며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했죠. 수차례 기자회견도 하고, 토론회도 하고 집회도 했어요. 결국 노인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던 사회현상과 노동시민단체 활동이 맞물려 이 제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쉬움이 크죠.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생각만큼 바람직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공공요양시설을 단 1%도 확충하지 않고 노인요양시설을 100% 민간에 맡겨버린 모양이 된 거예요. 사실상 노인들의 돌봄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게끔 만들어 준 거죠. 노인의 존엄, 인권을 우리나라 제도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좌절감과 무력감도 느꼈고요.

 

민간요양시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해요. 노동자의 근로환경은 서비스 질과 직결됩니다.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지만, 돌봄을 희생과 봉사로 치부하고 멸시하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개선이 되지 않고 있어요. 특히 가정 등에서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더 저평가되고 존중받지 못해요. 노동자들은 각종 괴롭힘, 성희롱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인요양공대위를 만들었죠.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요양시설을 만들고 인력 기준을 높이자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 이 공대위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선에 많은 역할을 했어요. 앞으로도 연대해서 많은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인뿐만 아니라 아동, 보건, 돌봄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돌봄공백 문제가 심각했어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왜 이런 돌봄의 공백을 마주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제도는 무엇일까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정부도 돌봄현장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감염병 상황 대응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모든 혼란과 위험을 현장의 노동자들이 떠안았어요. 감염병 초기 병원에서조차 마스크와 장갑을 구비해놓지 못했고, 대부분 민간에 맡겨진 요양원이나 장애인 시설은 사실상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어요. 활동지원사들은 무방비하게 감염에 노출되고 개인의 돈으로 마스크를 사야 했었죠.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햇수로 3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현장의 돌봄 노동자를 위한 법 제도는 보완되지 않고 있어요. 무엇보다 병원, 요양, 장애인, 보육 등 모든 분야에서 돌봄 노동 인력이 시급하게 충원되어야 해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사업장 당 필수 돌봄인력 기준이 낮아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는 돌봄 노동 필수 인력 기준을 강화하는 국민동의청원운동을 진행했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내용을 담은 간호인력인권법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현재 국회에 가 있어요. 환자와 노동자 모두가 안심하고 돌봄을 제공하고,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이 중요해요. 인력 기준이 상향되어 노동조건이 개선된다면 환자가 받는 서비스의 질 또한 개선될 수 있거든요.

 

사회서비스 분야가 민간에 맡겨져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윤석열 당선인은 민간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을 확대하는 방향의 공약을 내놓았어요. 우려가 크실텐데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이신가요?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민간 주도, 민영화,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며 복지 영역을 자본의 먹거리로 내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요. 윤 정부가 공약대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민간에 맡겨 질 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게 되면 돌봄 서비스의 질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거예요. 공공운수노조에서는 돌봄 서비스 질 향상과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을 통한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목표로 이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려 해요. 사회서비스를 공공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법 제도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지난해 사회서비스원법이 통과되긴 했지만, 매우 후퇴된 안이라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민간 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선 이상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투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서 여러 사례를 통해 연대의 힘을 강조하셨는데, 노조가 새 정부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연대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직장에서의 페르소나만 갖고 살지 않잖아요.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 여러 현장에서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의견이 필요해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함께해야 하는 이유죠. 노동운동이 잘 되려면 시민운동, 정치운동이 활기차져야 하고, 그럴려면 적극적으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연대해 공동사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양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요양공대위 활동은 아주 좋은 사례죠. 새 정부는 민간을 활성화하는 법이나 예산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이 연대해 시민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일상과 현장에서 교류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 지역, 당사자 중심의 지지기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남은 1년 반의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25만명의 조합원이 있는 공공운수노조는 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내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조직을 연결하고 의견을 모아서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남은 임기 동안 사회 공공성 강화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만들어 내고 싶어요. 지금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와 경쟁, 시험이 주도하고 있어요. 시험을 못 보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그 바로미터가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이동, 돌봄, 에너지 등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공공성이 있는 사회,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아젠다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산별노조 역할을 강화하고 노동자 정치운동도 복원하고 싶어요. 노동자 정치세력화 기초를 다시 닦고 현장, 사업장에서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정치운동도 같이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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