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6-01   224

[복지칼럼] 의료는 복지다

[복지칼럼] 의료는 복지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돌봄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된다. 한국은 급격한 산업자본주의 발달로 기존 지역사회의 상호작용이 상당부분 파괴되었고, 이촌향도 시기를 거쳐 지난 20년간은 노동유연화로 인한 잦은 거주이동으로 서로 돌봐주는 동네문화도 대부분 사라졌다. 반면 고령화로 인해 기본적으로 증대되는 돌봄욕구에 환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서비스까지 요청은 날로 커지고 있다. 자생적 지역사회기능은 소실되었는데, 요구는 많아지다보니 돌봄서비스가 쟁점이 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기존 시설중심의 돌봄체계가 감염질환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역사회 돌봄체계는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돌봄체계에서 중요한 축은 질병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의료체계다. 주요선진국은 때문에 일차보건의료를 유지발전시키는 일을 복지제도로 생각한다. 돌봄을 위시한 여러 복지가 의료체계가 제대로 지역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적절하게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차보건의료란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혹은 동네의사)가 보건의료자원을 모으고 조정해 주민들의 건강문제의 상당부분을 해결하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최초접촉’ ‘포괄성’ ‘지속성’ ‘조정기능’을 핵심 속성으로 하는 의료로 정의된다.

 

이런 개념들을 설명하면 뭔가 추상적으로 대단한 제도적 이론 같지만, 사실 쉽게 말하면 일차보건의료란 복지체계의 일환이란 뜻이다. 포괄, 지속, 조정은 복지체계 내에서 일차의료가 작동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차보건의료에서 의사의 역할은 바로 지역사회복지제도의 일부이고 성원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 경우 의사의 권한도 커지는데,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 혹은 의뢰하는 환자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주요선진국의 일차의료는 매우 공공적이고 지역사회친화적이고, 주치의의 권한과 능력은 여기에 조응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우선 한국에서 의사는 지역사회 복지를 구현하는 전문가로 인정되지도 교육받지도 않는다. 도리어 한국의 높은 의료상품화 수준은 의사들을 ‘사업가’로 만들었다. 동네의사들은 대부분이 개인사업자다. 때문에 의사들은 소위 ‘사업가’의 ‘경제적 자율성’에 대한 반발로 2000년 의약분업시기 집단폐업을 했고, 최근 2020년에는 의사정원 증대에 반발해 집단휴업을 했다. 우리사회가 의사를 복지전문가가 아니라 사업가로 방치한 댓가는 이런 집단행동 외에도 많다. 우선 돈벌이와 특권의 상징화다.

 

최근 낙마한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녀 2명을 자신이 병원장이었던 의과대학에 편입시켜 이해상충 문제가 부딪혔다. 현 정부의 첫 질병관리청장도 본인의 자녀를 의대편입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녀의 의대편입이 논란이 되는 인식의 근저는 의사가 특권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만약 유럽국가들처럼 의사들이 지역사회 복지의 일원이거나 공적 의료전문가라는 인식이 크다면, 교육과정도 힘들고 어려운 의대편입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크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의대에 진학하는 상황도 의사들이 ‘사업가’가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계속 방치해 우리사회가 지금 직면한 문제들이다. 우선 돌봄에 의료서비스를 연계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영리적인 동네의원들이 복지체계 내에서 지역사회돌봄과 연관맺는 길은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뿐인데, 가뜩이나 열악한 자원의 상당부분을 지역사회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건 자원배분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여기에 이런 인센티브 방식의 연계는 지불능력에 따라서 서비스의 수준이 결정되는 돌봄의 시장화를 더 부추길 수도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재가서비스, 시설서비스 등이 의학적 고려보다는 중구난방으로 지불능력이나 행정편의만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진다.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사례관리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도 의료의 벽에 부딪혀 분절화된지 오래다. 아마 한국에서 지역사회 사회복지공급자들은 의료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손사래를 치는 일이 태반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지역사회 의료체계 난맥상을 방치하면서 ‘돌봄을 강화하겠다’, ‘복지예산을 효율화하겠다’고 하는 정치권이다. 보건의료제도를 복지체계의 일환으로 보지 않고서 해결 가능하지 않은데 말이다. 한술 더 떠 윤석열정부는 보건의료는 돈벌이 산업이고, 복지도 산업으로 간주하는 ‘생산복지’를 주장한다. 

 

이제 먹고살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하고 선진국이라고 말한다면 보건의료도 복지체계의 일부로 대우하고 재편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들도 의료전문가로서 존경받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의사들을 ‘특권층’ 혹은 돈벌이에 집착하는 ‘사업가’로 둔 후진적 체계로 온 국민이 계속 고통받고 지역사회복지체계는 확립이 요원하다. ‘의료는 복지’라는 기본적인 인식 속에서 의학교육, 의료돌봄연계, 사회서비스를 위치시켜야 진정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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