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8-01   90

[기획3] 한국 사회보험 재정과 국가의 역할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한국은 사회보험 후발주자다. 다른 선진국들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사회보험을 도입하면서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졌던 것과 비교하면, 출발이 한참 늦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적지 않은 성장통을 겪으며 압축적인 발달 과정을 거쳐 왔다. 

하지만 갈 길은 더욱 험난해 보인다. 아직 풀지 못한 과제들에다, 저출생·고령화라는 급격한 인구학적 변화와 산업구조의 변동, 게다가 기후위기와 감염병 위협 등 새로운 사회적 위험까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러한 변화와 도전들이 사회보험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하지만 사회보험에 대한 더욱 심각한 위협은 정치적 차원에서 이뤄진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과 사회보험 개혁

윤석열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긴축’이다. 지난 7월 7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수지 적자 고착화로 나라빚이 급증하고 있다며, 강력한 재정혁신으로 미래 국가재정의 건전화 기틀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사회보험에도 그대로 투영되는데, 지출구조개혁을 통해 ’연금개혁 및 건강보험 재정관리 강화 등 사회보험 개혁‘을 이루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사회보험 재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은 박근혜 정부와 판박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는 일반재정에 대한 강력한 세출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사회보험이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지속가능하지 못하므로 제도개혁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통해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25년과 2024년, 국민연금은 2060년, 사학연금 2042년, 산재보험 2030년 기금이 고갈돼 적자가 발생하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재정적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국회 연설에서 노동개혁, 교육개혁과 함께, 연금개혁을 언급하며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당시 재정준칙을 강화하려던 시도 역시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1)

물론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재정지출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다. 지난 제4차 중장기 사회보장 재정추계 결과(사회보장위원회 2020)에서도, 공공사회복지 GDP 대비 지출 비중은 2020년 12.5%에서 2060년 27.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회보험 비중이 8.0%에서 22.8%로 큰 폭으로 늘어나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대부분인 82.6%(’20년 63.9%)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중에서 건강보험은 2020년 GDP 대비 3.8%에서 2060년 8.9%로, 국민연금은 1.4%에서 8.2%로 증가한다. 즉,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대부분은 사회보험이며,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지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표 3-1 참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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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 재정위기? 감당해야하고, 감당가능한 수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회보험 재정지출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지, 그리고 감당가능한지 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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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2018)는 인구 통계학적으로 촉발된 ‘노후 위기’에 대해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예측에 반대하면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제도가 성숙해지면서 장기적으로 급여 지출이 증가하지만, 이 자체가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핵심은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책임지느냐, 아니면 개인이나 가족이 책임지느냐의 문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는데, 사회적 비용이 낮다면, 그 이면에는 개인이나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사적부담 비용이 은폐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비용의 다른 의미는 사회적 보장을 의미하며, 사회적 비용이 낮다는 것은 곧 사적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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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노인인구 비중이 우리나라 전망(2060년 43.9%)과 유사한 시기의 주요 유럽국가와 비교해 봤을 때도, 제도 존속이 불가능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예컨대 벨기에의 경우, 노인인구 비중은 2035년 43.7%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공적연금 지출 비중은 GDP 대비 14.6%, 건강보호 6.2%, 장기요양 2.8%로, 우리보다 이른 시기에 더 높은 지출을 부담하게 된다. 우리 사회 역시 감당해야하고, 감당가능한 수준이다.

오히려 재정고갈론이 제도 지속성 위협

국민연금은 기여와 수급이 생애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제도 특성으로 인해, 장기적 추이를 전망하면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건강보험 역시 단기보험이더라도, 인구학적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는 상황에서 중장기 재정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흐름과 변동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학계와 단체, 언론에서는 재정적자와 소진시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재정 상태에 대해 정기검진하자는 취지가 마치 사망선고일을 확정하듯 변질됐다. 그리고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개혁 근거로 여기면서, 불안을 부추기거나 보험수리적 재정개혁을 통해 공적 제도를 축소하는 정치적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기금소진이 곧 제도파산’인 것처럼 선동하거나 미래세대 보험료 폭탄 등과 같이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는 방식은 재정안정은 고사하고, 오히려 제도의 신뢰를 위협하면서 보험료 부과 기반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즉, 재정 위기가 아니라 제도 위기마저 발생할 수 있다. 국민연금 고갈에 근거한 재정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심심찮게 국민연금 탈퇴운동이 일어났다. 최근 “90년대생은 못 받는다”는 식이면, 가입은커녕, 누가 보험료를 더 내고 싶겠는가. 사회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가입자의 제도 신뢰가 전제될 때,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적립금이 많이 쌓여있으면 재정안정?

2021년 기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은 약 20조 2,410억 원이다. 누적 적립금 규모만 보면, 가장 재정이 안정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매년 재정 전망에 근거해 당기 균형을 목표로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제도 특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과도하게 적립되고 있는 셈이다. 누적 적립금의 이면에는 그만큼 급여 지출에 인식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의미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4년 동안 건강보험 재정수지율이 100%를 초과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건강보험 출범 이후 역대 정부 중 가장 낮다(91.5%). 그만큼 잉여금을 적립금으로 쌓아둔 비중이 높았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의 경우, 급여 지급을 위한 현금 부족 대비 등의 준비금 성격이지, 쌓아두고 운용하는 여유자금이 아니다. 3)

OECD 국가 중에서도 보험방식으로 운영하는 국가 중에서 법정 준비금이 있는 경우는 일본, 대만, 독일, 벨기에 등 일부 국가만 의무화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연금기금은 2022년 4월 말 기준 약 900조 원이 적립돼 있다. 세계 연기금 자산순위에서도 일본과 노르웨이(국부펀드) 다음으로 3번째로 큰 규모다. 2041년까지 최대 적립기금이 1,178조 원(GDP 대비 44%)까지 쌓이다 그 이후 기금 규모가 감소하기 시작해 2057년에는 적립기금이 소진된다는 전망이다(4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2018). 만약 수지적자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18.20%까지 보험료율 일시에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렇게 하면 2088년에는 무려 ‘1경(11,701,491,000,000,000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이 쌓이게 된다. 보험료 인상의 현실 가능성을 제쳐놓고라도, 과대 적립으로 인해 금융시장의 변동성 위험과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기금의 소진이 연금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적립규모 수준이 곧 국민연금 재정안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정안정? 사회적 분담 필수. 국가의 재정 책임 강화

사회보험은 기여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실제 재정의 대부분이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조성된다. 하지만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 관리운영비와 취약계층 보험료 지원뿐 아니라, 보험 재정의 일정 수준 이상을 국가가 일반예산으로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장기수지균형을 목표로 대폭적인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불안정 노동이나 영세지역가입자의 부담과 기여회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루누리사업 지원은 최대 3년 한도로 줄어들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도 올해 7월 1일부터 어렵게 진행됐지만, 5만 5,000명(265억 원)에 불과하다. 또한 국민연금 관리운영비 역시 매해 100억 원만 일반예산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운영하고 있는데, 전액 국고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강보험 역시, 재정 불안과 기금소진을 주장하면서도 단 한번도 건강보험 국고지원의 법정 기준 조차 지키지 않았다. 올해는 국고지원이 만료된다. 국민건강에 일몰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별법에 따른 한시적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적정 수준의 국고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의료급여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고 대상을 확대해, 빈곤층의 최소 10%이상 의료보장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위해서는 사회적 분담이 필요하며, 국가의 재정 책임은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급여 적절성과 대상 포괄성을 전제로, 재정적 지속성에 대한 합의 만들어가야 

무엇보다 사회보험은 제도의 본래 목표와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된다. 국민연금은 노후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해, 건강보험은 질병이나 부상, 출산 등에 대비한 건강보장을 위해 존재한다. 제도의 본래 목표와 취지를 벗어난 어떤 개혁도, 개악일 뿐이다. 국민연금은 재정안정을 위한 축소일변도의 개혁이 이뤄지면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평균임금노동자 기준 31.1%로, OECD 평균 42.2%보다도 낮다.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더라도 낮지 않다는 주장이 있는데(오건호 2022), 이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남찬섭의 “국민연금 급여수준, 과연 낮지 않은가”(연금행동의 공적연금이슈페이퍼 ①, 2022.4.24)과 김연명의 “1998년생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하락한 이유는?”(연금행동 공적연금 이슈페이퍼 ②, 2022. 5.2)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건강보험 역시 보장률은 65.3%에 머물고 있다(2020년 기준). 그럼에도 재정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급여를 더 축소하자는 주장이 지배적이고, 일부 건강보험 급여확대 추진에 재정 누수 운운하며 비판하는 주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지만 명목상으로라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삼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낮은 보장성을 높이는 계획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재정전건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형태로 공적보험을 축소하는 시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보험의 진정한 위기는 인구학적이거나, 경제적, 제도적 위기가 아닌 정치적 위기다.


1) 윤석열 정부는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준칙 한도를 법률에 명시해 높은 수준의 구속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며, 공청회 등을 통해 9월 초 재정준칙(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20년 0.5%에서 2060년 2.7%, 고용보험은 0.8%에서 0.9%, 공무원연금은 0.9%에서 1.9% 증가하며, 산재보험(0.3%)과 사학연금·군인연금(0.2%)의 변화는 미미함.

3) 국민건강보험법(38조)에는 준비금은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적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재정운용 방식을 고려하면 현실적이지 않다. 특히 준비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을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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