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9-01   17

[복지칼럼] 취약계층의 희생과 제도 개선 사이의 불편한 진실

김윤민 국립창원대학교 가족복지학과 교수

지난 8월 8일, 중부지방에 집중된 호우로 인해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던 발달장애 가족, 동작구 상도동에 거주하던 50대 기초수급자 여성이 침수에 고립되어 사망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던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그리고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반지하에 거주한 주거약자였다. 호우 피해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에는 반지하에 거주한 이들의 훼손된 집기와 생활용품들이 거리를 메우며 이들의 상처난 일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정치인들은 피해지역을 방문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쏟아내고, 서울시는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약속과 대책이 취약계층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 타살의 반복

위기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지만, 취약계층에게는 불안하게 유지해 왔던 삶을 파괴할 정도의 강한 위력을 갖는다. 이번 호우로 인해 사망한 주거약자, 그리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송파세 모녀, 관악구 모자 등 무수히 많은 ‘사회적 타살’ 사건들이 이를 대변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사회안전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희생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위기로 인해 취약계층이 사망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관련 제도의 지원 강화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사회의 잘못된 관행에서 기인한 것이자, 공론화 이후의 제도 개선마저도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제·개정된 이른바 ‘송파 세모녀 법’에서도 엄격한 수급기준과 낮은 보장성이 그림자처럼 제도를 따라오며 취약계층의 삶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기에 부족한 수준의 개선에 그쳤다. 집중 호우 이후, 서울시에서 추진 계획인 ‘반지하 주택 일몰제’ 역시 공공임대주택의 원활한 공급, 현실적인 수준의 주거바우처 제공, 반지하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외부적 요인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주거약자의 삶은 오히려 더 큰 불안에 잠식당할 우려가 있다. 제도 변화를 통해 취약한 이들의 삶을 ‘개선’ 할 것이라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약속을 믿고 안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취약계층 지원 제도가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이들의 반복된 희생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불명예 : 엄격한 선정기준과 낮은 보장성

국내 사회보장제도는 공적소득이전과 사회서비스가 제한적인 수준에서 운용되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 이는 사회적 위험에 직면한 구성원이 일차적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함으로써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의’ 사회안전망이 아닌 ‘유일한’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하게 한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안전망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의 급여 지급 기준과 방식 변화, 제19대 대선 당시 급진전되었던 부양의무자기준 전면폐지 논의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 개선 방향은 모호해지고 기대했던 결과 또한 불투명해진다는데 있다. 그 결과, 비수급빈곤층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부양의무자기준 전면폐지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취약한 이들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중위소득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22년 7월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내년 기준중위소득 인상율을 5.47%로 결정하였다. 코로나 19와 고물가의 위기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자,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과 격차를 줄이지 못한 결과이다. 게다가 기준중위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는 물론이고 수많은 복지사업과 연결되는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에 논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절차의 합리성과 결과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모든 과정은 생략한 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만 공개하고 있다.

취약계층의 반복된 희생은 제도의 한계를 묵과한 결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선정기준의 엄격성을 완화하고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무참히 ‘파기’ 되었고 그 결과 취약계층의 희생은 반복되고 있다. 언제까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제도에 진입하게 될 대상자 규모와 재정을 ‘과다 추계’ 한 결과를 맹신할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취약계층의 희생을 목도해야 기준중위소득 산출의 기본 산식을 따지고 재정 부담 운운하는 행태를 중단할 것인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형식적인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시도해 온 잘못된 관행과 절연해야만 가난이 절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빈곤 정책 논의에서 정의, 평등, 연대,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고려해야(Chambon, Irving, & Epstein, 1999) 가난의 끝이 죽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견고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취약계층의 희생이 담보되는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변화를 시도하기까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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