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4-03   1029

[복지톡] 우리의 상실은 연대로부터 다시 기억된다

이태호 |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인터뷰 및 정리 | 김지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수습간사

유독 선명히 기억하는 날들이 있다. 믿기 어려운 재난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는 마음에서였을까. 참사가 발생한 그날, 그 시간에 하고 있었던 일마저 죄책감으로 서린 날들이 있다. 노란색, 검은색 리본을 달고 기억하겠다는 말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지만, 참사는 돌이킬 수 없어 명확한 데에 비해 기억은 희미해질까 두려웠던 시간을 겪은 건 특수한 개인의 경험이 아닐 테다. 국가가 제시하는 적당한 속임수에 합의하지 않되, 불신을 넘어 사회적 상실의 가치에 신념을 부여하기 위한 기억과 애도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를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려 애쓰는 참여연대 이태호 운영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태호입니다.

어떤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학생운동이 시작이었죠. 학생운동을 8년 정도 했어요. 학생운동을 일찍 끝낸 동료들이 참여연대가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였을 시절부터 준비위원회에 참여한다고 했어요. 당시 저 역시 새로운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벌써 28년째 활동가로 일하고 있네요. 특히 처음에는 권력의 부정부패를 상대로 한 운동을 하고 싶어서 권력 감시를 표방한 참여연대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던 것 같아요. 참여연대에 와서는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낙선운동 등을 하다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남용되는 모습을 보며 안보권력감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주 업무를 맡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사회적 참사와 관련된 활동들을 꾸준히 해오셨네요.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해에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이었어요. 국가는 국민이 모여서 구성한 건데 추상적인 개념인 국가의 안보는 걱정하면서 시민 개개인의 행복과 안전은 등한시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있어요. 참여연대는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시민 중심으로 국가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는데, 참사가 발생하고 당시 대표였던 이석태, 임종대 전 대표, 박래군 소장과 함께 팽목항을 방문했어요. 유가족,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과 만나서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할지 논의하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를 만들었어요. 유가족들과 협력의 틀을 만들며 운동을 하다가 장기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단체를 꾸리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약칭 4.16연대)입니다. 그 안에서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진상규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했네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일은 어떤 일이었을까요?

세월호참사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야가 협상해서 겨우 법을 통과시켰어요. 그런데 정작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이 오히려 특별법을 왜곡했죠.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시행령을 법에 위배되게 만들며 노골적으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거잖아요. 이석태 전 참여연대 대표가 첫 특조위 위원장이셨는데 특조위가 강제해산 되는 바람에 단식농성까지 하셨어요. 유가족분들도 화가 많이 나셨죠.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한 내용을 정부가 완전히 무시하고, 예산도 주지 않으면서 규모는 계속 축소시키려고 하니까요. 시행령은 확정되지도 않았고 임용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활동하지 않은 기간까지도 합쳐서 특조위 기간이 다 됐다고 강제 해산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목적에도 어긋나고요. 이 사건은 2심에서 책임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돼 지금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어요. 이밖에도 유가족들이 청와대 옆, 광화문에서 농성하시고 영정을 들고 행진도 하셨는데 기절하는 분이 생길 정도로 화가 나는 일들이 있었죠.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마음이 아팠고 국가에 실망하게 돼 힘들었어요.

기뻤던 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가족들이 제안하고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 조사 기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던 때가 기억나요. 지금 이태원참사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하잖아요. 세월호 참사는 이전에는 그런 요구를 한 사례가 이전에 없었어요. 해외 사례로만 보았던 특별법을 통해서 독립적 조사 기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이죠. 그때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도움을 받기 어려워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압도적인 시민들의 요구가 필요했어요. 처음엔 ‘이게 될까’ 싶었지만 5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진행한 서명운동에 350만 명이 참여한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죠. 그 서명 용지를 416개의 박스에 담아서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는 행진에 2000여 명이 참여해서 국회로 갔어요. 국회는 행진 금지구역인데 청원 서명 용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문이었기에 가능한 걸음이었죠. 사람들이 함께 많이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연대한 시민들이 최소한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그냥 두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느꼈을 때 벅찼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또다시 10.29참사와 같은 인재가 발생했는데 이런 참사에 함께 대응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참사가 반복되는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자유주의 말기라고 볼 수 있는 지금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화되었어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시대에 도래하면서 재난은 규모도 더 커지고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발생하기도 해요. 국가의 역할을 공동체 보호가 아닌 단기적이고 재정적인 성장, 경제 활성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소수 특권층의 이익과 안전만이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어요.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그 피해는 불평등하다’라는 말이 있듯, 재난 대응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국가가 보호하는 대상도 한정된 것이죠. 이렇게 국가의 공공성 자체가 약화되니 재난은 커지고, 예측 불가능하며, 반복되는 것이죠. 

세월호 참사 때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적 약속을 지키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도 연대를 실천하며 시민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선장 때문에 희생됐죠. 이 사건은 개인의 안전불감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안전을 충분히 보장해야 하는 책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그런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의 시작이었어요. 시민들이 스스로를 우연이 만든 생존자이자 언제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 이 자각은 사회운동에서 큰 동력이 돼요. 사회와 국가의 역할을 명확히 하려는 각성이 사회와 국민의 책임을 구조적으로 형성하고 규범으로 확립되는 것이죠. 부조리, 부정의에 가만히 있지 말자라는 각성이 일어나 시민들이 협력해서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감수성과 의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어요. 

한국은 점점 재난이 심각해지는 위험사회로 변해가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건 단번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재난은 또 일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시민들은 앞선 재난의 교훈대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시민의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죠. 이렇게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게 맞는데, 이태원 참사에서는 오히려 2차 가해가 있었죠.

이런 부분이 참 절망스러웠는데 이런 일이 다시 생긴 이유는 지금 정부가 세월호로부터 나온 교훈을 애써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까스로 우선순위가 되었던 안전을 정부가 다시 후순위로 미루며 효율, 이윤을 앞세운 거죠. 그럼 당연히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요. 단순히 반복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참사의 규모는 더 커질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스스로 우연한 생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사회적으로 신뢰가 부족해지거든요. 그럼 자연스레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의 논리를 따르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거예요. 이게 또 다른 재난의 원인이 되는 것도 무리한 예측은 아니죠. 우연에 맡겨지는 일들이 많으면 안전과 관련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서 사회적 행동과 국가적 책무 이행도 힘을 잃어요. 

이런 사회적 신뢰 상실은 복지와도 무관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봅시다. 국가가 내 안전한 노후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국민연금을 신뢰하고 낼까요? 아니겠죠. 결국 각자도생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이익을 보는 건 각자도생을 선택한 개개인이 아니라 사보험 시장이에요. 이런 게 재난자본주의의 매커니즘이죠. 사회적으로 형성된 불안함을 이용해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요. 이런 악순환은 사회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져요. 공공성이나 공적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화될 수밖에요.

사회적 참사가 개인화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모든 재난을 막을 순 없으니 재난 서사를 바꿔야 해요. 지금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모조리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국가의 역할은 제한되어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어요. 책임의 범위를 개인에 제한한 것이죠. 구조과정에서도 실제로 구조를 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죠. 제대로 지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몰랐다는 말 뒤에 숨고 있어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죠. 현장에 있던 개인보다는 이들을 배치한 국가, 권한이 막중한 사람부터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묻고 시스템을 바꿔 적절하고 빠르게 대처, 수습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죠. 

참사는 필연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며 각자도생이 만연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피해자들끼리 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피해자를 비롯한 당사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사회적으로 각성되고 의지가 강하면 개인화를 극복하는 게 비교적 용이해요.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비교적 공정 담론이 강해졌고, 세대와 성별, 이념 등으로 소위 ‘갈라치기’를 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개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를 위해 더 강화하고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서로에게 임파워링 해야 돼요. 사회적 참사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나 장애인 등 이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해야 해요. 

‘재난자본주의’라는 말이 코로나나, 전쟁이나 참사 등 상황마다 다르게 사용되는 것 같아요. 10.29 이태원 참사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드러났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재난자본주의는 학술적 용어는 아니에요. 다만 그 의미의 핵심을 설명해보자면 사회적 패닉을 이용해서 특권층이 만들어낸 위기의 책임을 시민과 피해자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기득권 유지의 강력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태원 참사에서는 권리와 책무 관계를 전도시키는 방식으로 일어났어요. 국가가 관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고 못을 박았고, 오히려 이태원 골목에서 처음으로 앞 사람을 밀었던 누군가를 색출하려고 했죠. 그렇게 패닉을 조장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군중은 무질서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하고 연대와 통제력은 없는 이기적인 주체로 상정한 뒤 군중 탓, 마약 탓을 하며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피해라고 정부가 정의해버린 거죠. 사실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도운 사례는 많아요. 기울어지는 세월호 안에서도 그랬던 것처럼요. 책무의 무질서를 반성하지 않고 시민의 탓으로 돌리니 단속에만 공권력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거죠. 공권력이 피해입은 권리 주체에게 잘못 행사되면서 명백한 2차 가해까지 있었죠. 권력으로부터의 재난 서사를 개인의 책임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재난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말에 거대한 권력을 동원하는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럼으로써 자신의 지지층을 진영화의 덫 속으로 가두며 권력자원을 만들어냈고 잘못된 재난 대응 권력을 강화했어요. 너무 명백한 재난자본주의의 반복이죠. 

시민은 그런 재난자본주의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것을 경계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궁금해요.

이런 재난자본주의가 가져올 영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은 혐오 발언을 막고 피해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해요. 피해자가 온전히 치유 받고 애도든, 배보상의 권리든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더 나아가서 사실 모두가 생존자잖아요. 즉, 일반 시민의 안전이 국가의 책무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함께 힘써야죠. 이런 과정을 거치기 싫은 사람들은 자꾸 시민들의 연대와 노력을 부질없는 일이라고 평가해요. 정부도 그 중 하나죠. 자꾸 ‘세월호 참사처럼 되지는 말자’라고 말하는데 이건 원래 시민의 언어였어요. 세월호 이전과 이후 우리나라는, 안전은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던 말인데 이걸 이제 국가가 왜곡해 쓰는 거죠. 세월호 참사처럼 재난을 정치화하는 유가족이 되지 말라는 명령과 억압의 언어로요. 진상규명이라는 명목 하에 세금을 낭비하지 말라는 가해의 언어로요. 이게 단결하지 말 것이며 진실을 요구하지 말라는 폭력적인 말과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억하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기억하는 방법일지 저는 항상 고민돼요. 기억투쟁이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 투쟁과 약속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력과 자본은 늘 힘이 있어요. 그게 부족한 쪽에서는 기억투쟁운동이 중요하죠. 여러 번 질 수도 있지만 그런 투쟁이 누적돼 끝내 이길 수도 있어요. 근성 있게 이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기억하자’는 슬로건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단기간에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기억투쟁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은 잘 잊기 때문에 기억하자는 거죠. 문제를 인정하는 건 쉽지만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오거나 재발방지법이 생기는 일은 쉽지 않아요.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거죠. 꾸준히 기억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꿀 필요가 있어요.

기억 투쟁이 이어지기 위한 답도 역시 연대예요. ‘관계 맺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앞서 말했듯이 피해자가 고립되는 건 막아야 하지만 연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화 되어야 해요. 국가라는 추상적인 집합체와 연대할 수는 없잖아요. 직접 현장에 가보고 사회적 약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공감해야 알게 되는 바가 있어요. 연대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장과 당사자성이 중요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당사자성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게 된다면 때때로 삶에서 잊어버리더라도 어떤 관계에 항상 함께 묶여있는 거죠. 이를테면 이태원 참사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연결이지만 가족들과 만나는 건 아주 강력한 관계 맺기의 노력인 것이죠. 

남의 일이라고 느껴지거나 떠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자꾸 피하게 되잖아요. 집단적 트라우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어떤 치유의 과정이 필요할까요?

트라우마만을 동력으로 삼는 운동은 성공할 수 없어요. 재난 참사 가족과 만날 때 비록 슬프고 원통한 마음이 크지만, 이 운동이 늘 슬프고 우울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끝내 우리의 목표는 치유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도 치유가 이뤄져야 해요. 슬픔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치유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끼리는 만나면 농담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유가족은, 그리고 유가족을 마주한 사람들은 쉽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도 사람은 웃어야 살죠. 피해자들, 유가족들과도 연대하면서 더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알게 되기도 해요. 그럼 행동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죠.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마음을 그대로 나눌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게 서로에게 중요할 수 있어요. 사람 사이에 농담이 오고가는 게 중요한 것처럼요. 치유를 위해서라도 처음엔 힘들지만 가족들과 연대하면서 치유되고 희망도 생겨요. 그러면서 행복도 조금씩 고개를 내밀 수 있죠. 

국가의 모든 말을 믿어서는 안 되지만, 모든 말을 믿지 않게 되는 것도 위험한 것 같아요.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만드는 것과 같이 국가가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이 물론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허무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상실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신념을 어떻게 가지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권리성과 책무성이 되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권리성의 자각은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를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알게 되는 것이자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것이기도 해요. 책무성의 자각은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법적 책무성을 다하는 것이에요.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명확히 정의하면 책무도 정의할 수 있게 되는데, 권리성과 책무성의 자각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을 다해야 할지 비로소 명백해져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합의된 약속과 국가의 책임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도 약속이 깨어져 회복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책임을 명확히 하며 더 나아지는 과정이 되고, 그 과정에서 권리는 더 강화될 수 있는 거죠. 

국가에 막연한 기대만 가진다면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할 수 있는 건 좌절밖에 없어요. 핼러윈 행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고 모두가 방황하고 있을 때 세월호 참사 유가족 측에서 제일 먼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했죠. 그분들은 이런 참사의 고통을 이미 겪었고, 압사 사고가 있었던 힐스버러에도 다녀오셔서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날, 그곳에 갔던 이들의 잘못이 아니란 걸. 권리와 책무를 명확히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선명해져요. 권리와 책무를 정의함으로써 재난에 대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연대를 형성하게 되는 거죠. 나의 권리를 인식하고 국가에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해요. 그래야 권리 주체인 시민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복지동향 구독자분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운동에 다 함께해주시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세월호 참사 때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향했던 폄훼의 말이나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말과 행동들에 함께 반대해주세요. 그런 노력을 함께 이어간다면 안전과 복지가 도래한 사회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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