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의 상징
혹서기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쪽방, 그리고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나 부채에만 의지하는 주민에 관한 영상이다. 언젠가부터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소방관이 물을 뿌리는 장면도 담긴다. 1~2분 남짓한 뉴스 말미에는 ‘대책이 필요하다’ 따위 문장이 빠지지 않는다. 기후위기가 화두가 되기 오래전부터 나온 당부였다.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 일부 지방정부는 숙박업소를 임대해 무더위가 사그라들 때까지 쪽방 주민이 임시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쪽방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확산하지 않았다.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기후위기 불평등은 제법 섬뜩하다. 인접한 곳에 열악한 쪽방촌과 건물과 대비되는 현대식 초고층 건물이 늘어섰다. 공공기관 건물에는 그나마 실내온도 규정이 생겨서 에너지소비가 제한된다. 그러나 민간 건물은 실내온도나 에너지소비 제한이 없어서 에너지가 무분별하게 소비된다. 기후위기로 심화하는 폭염에도 초고층 건물내부는 여전히 시원하고 때로는 춥기까지 하다.이는 해가 지날수록 쪽방촌의 무더위가 더욱 심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개별 건물에서의 탄소중립 실현을 지향하는 제로 에너지건축물 인증제는 2017년에야 본격적으로시행됐다. 도입 시기가 너무 늦었는데, 그마저도 공공 건축물을 대상으로만 시행 중이다. 민간 분야는 2024년부터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만 적용되며, 2025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까지 적용된다. ‘제로에너지’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건축물의 에너지자립률1)이 20% 이상이기만하면 인증을 통과하는 문제도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규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라기보다 용적률 완화, 취득세 완화를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7%는 주거용 건물, 약 21%는 비주거용 건물과 건설산업에서 발생한다(UNEP, 2020).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주택 부문에서도 탄소 감축과 에너지효율 개선을 추구해야 하며, 기후위기로부터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ajagopal, 2022). 주거권 관점에서 취약계층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거처에 거주하도록 보장하는 정책, 대표적으로 공공임대주택과 주택개량 지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주거취약계층은 쪽방, 고시원과 같은 비적정 거처나 에너지효율이 낮은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열강화를 위한 주택개량 사업은 더디다.
국내 주택개량 지원사업의 실태
국토교통부의 주거급여 수선유지급여는 대표적인 주택개량 사업이다. 대상은 기준중위소득 47%이하 자가가구로 좁다. 저소득가구에서 자가가구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임차가구는 제외된다. 자가가구라 하더라도 주택가격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제도로 인해 소득인정액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주택 공시가격이 1억 5천만원인 경우 월단위로 환산되는 소득인정액이 178만 원인데, 2인가구일 경우 주거급여 소득인정액 기준인 162만 원을 초과한다. 같은 가격2) 의 주택을 소유한 만 65세 가구주가 종신방식 정액형 주택연금 제도에 가입해 받을 수 있는 급여는 50~55만 원이다.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재산을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것이다. 이로 인해 몇 해 전 서울 종로구에서 사망한 2인가구도 자가주택의 공시가격을 환산한 금액이 소득인정액 기준을 초과해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좁은 소득인정액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현행 수선 비용 지원금액이 비현실적으로 낮은 문제가 있다. 수선비용 지원금액은 경보수 457만원, 중보수 849만원, 대보수 1,241만원인데 2020년 이후 3년째 동결되었다. 노후한 시설을 보수하고 에너지효율화를 위한 구조 개선까지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가구는 수선유지급여 지원을 받아도 필요한 공사를 하지 못해 비용이 적게 드는 일부 부위만 개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머지 부위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3~7년으로 정해진 수선주기가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소득인정액이 생계급여 기준선인 기준중위소득 30%를 초과하는 계층에 대해서는 자부담 비용을 부과하는 문제도 있다. 컷오프(cut-off) 방식으로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운영된다면 납득할 만한 기준이지만,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현행 제도에 이러한 장치를 두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주거급여 수선유지급여 외에는 한국에너지재단의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이 전국에서 시행 중이다. 대부분 대상은 소득이 기준중위소득 50% 이하인 기초생활수급가구와 차상위계층이며, 지방정부가 추천하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가구가 포함된다. 주거급여 수선유지급여와 비교할 때 소득기준과 지원 항목은 큰 차이가 없는데, 가구당 평균 지원 예산은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이 200만 원대로 훨씬 낮다. 사실상 주거급여 수선유지급여를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 서울시는 다른 지방정부에 비해 주택개량 사업에 적극적인데, 자체 예산을 확보하여 희망의 집수리 사업과 안심 집수리 보조사업을 시행 중이다. 특히 안심 집수리 보조사업은 10년 이상 경과한 저층주택 개량을 위한 자금을 최대 1,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지원금액은 최근 들어 감소했지만 주거급여 수선유지급여와 유사한 수준이다. 보조사업 외에도 융자사업과 이자 지원사업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주택개량 사업은 단열 개선을 위한 공사가 체계적이지 않으며,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은 한계가 있다(박은철·정다래, 2022).
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네덜란드는 국가계획을 수립해 2012년부터 사회주택을 중심으로 대규모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을 시행했다(European Commission, 2018). 사업을 1,500~2,000호가 밀집된 블록 단위로 시행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네덜란드 외에도 유럽 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사회주택)을 중심으로 주택개량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추세다. 유럽의회는 2016년 결의안을 채택해 유럽구조투자기금(European Structural and Investment Funds)을 사회주택과 저소득가구가 거주하는 주택의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개량을 위한 지원에 인색하다. 중앙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단계에서만 재정을 지원하고 운영·관리 단계에는 재정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토교통부는 2020년 추경을 통해 노후한 영구임대주택의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2년 약 4,800억 원까지 증가했던예산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절반 이상 삭감됐다.
심지어 중앙정부는 공공임대주택까지 재건축하겠다는 정책을 앞세우며, 서울시는 중앙정부보다적극적으로 최초의 영구임대주택부터 재건축하겠다고 나선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너무나도 손쉽게 추진되는 국가에서 주택개량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많은 비적정 거처는 정비사업을 통한 해소가 불가피한데, 공공이 개입하여 선주민의 재정착을 보장하는 사례는 LH가 주도하는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외에는 찾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 멸실을 추진하겠다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모두 세입자의 재정착을 보장하지 못하는 기존 이주대책을 보완할 방안을 수립하지 않았다.
노후주택 개량은 등한시한 채 에너지바우처만 확대해
2015년 11월부터 저소득층에 전기료·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가 시행됐다. 2014년 12월 ‘에너지법’ 개정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시행할 근거가 마련됐는데, 이는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개편된 시기와 겹친다. 2014년 12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생계급여 수급가구에게는 의복, 음식물, 연료비, 일상생활에 필요한 금품을 지급해야 했다.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통합급여 형태로 운영될 당시에는 최저생계비 계측 시 연료비(에너지사용료)가 반영됐다. 그러나 맞춤형 급여로의개편 이후 연료비를 비롯한 저소득가구의 지출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현저히 줄었다. 에너지바우처는 생계급여를 보완하기 위한 성격의 제도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 대상은 기초생활수급가구 중 일부로 선정된다. 기초생활수급가구이면서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한부모가족 등에 해당하는 가구가 대상이다. 2022년 기준 기초생활수급가구 수는 약 170만가구, 에너지바우처 대상은 약 118만가구였다. 중앙정부가 2023년 대상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가구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취약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인구학적 요소만 포함되고 적절한 에너지소비량에 대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즉, 인구학적 기준만 충족하면 양질의 주택에 거주하며 평균 이상의 에너지사용료를 지출하는 가구는 대상에 포함된다. 반면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구의 경우 때로는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사용료를 절약해야 한다.
해외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한 에너지사용료 지원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에 대해 논란이 이어졌다.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에너지사용료가 가처분소득 대비 10%를 초과하는 가구를 에너지빈곤 상태로 보는 것이다. 자칫하면 에너지 과소비를 유도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안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전체 가구의 중앙값보다 높은 에너지사용료를 지출하는 가구의 잔여소득이 빈곤선에 미달하는 경우를 에너지빈곤으로 정의하는 것이다(Ugarte et al, 2016).
그런데 한국에서는 에너지사용료 지원을 위한 에너지빈곤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다. 에너지사용료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도당장 유럽과 유사한 기준을 설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개별계량기가 설치되지 않은 거처에 누진요금이 부과되어 실제 사용량보다 많은 에너지비용을 지출하는 가구도 있다. 임대인이나 관리인이 편의상 집계된 요금을 실제 에너지사용량과 관계없이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결론
인구 고령화 시대에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늙어가는 주택이다. 에너지효율이 떨어지고 노후한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에너지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가구에는 에너지사용료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단기적 처방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에너지 효율과 성능 개선을 위한 주택개량 지원사업을대폭 확대해야 한다. 일부 소유자가 개발이익을 독점하는 기존 정비사업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적정 에너지효율 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해서 에너지사용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고시원, 쪽방 등 비적정 거처 대부분은 에너지효율을 위한 개량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진다. 서울 일부 자치구에서 개량 사업을 시행 중인 반지하주택도 마찬가지다. 비적정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해서는 적절한 에너지효율과 주거품질을 갖춘 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의 비적정 거처 해소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사용료 지원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올해 초 동자동 쪽방 주민은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사용료 지원 대신 중앙정부가 약속한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화장실이 빙판으로 덮일 정도로 한파에 취약한 곳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거권이 보장되는 주택이다.
| 참고 문헌 |
박은철·정다래, 2022, 시공지원형 주택개량 프로그램 개선방안, 서울연구원.
Balakrishnan Rajagopal, 2022, Towards a Just Transformation: Climate Crisis and the Right to Housing, UN General Assembly, Human Rights Council(A/HRC/52/28).
Eurpoean Commission, 2018, Policy Measure Fact Sheet – The Netherlands: Block-by-Block(Blok voor Blok), European Construction Sector Observatory.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2020, 2020 Global Status Report for Buildings and Construction: Towards a Zero-Emissions, Efficient and Resilient Buildings and Construction Sector.
Ugarte, S., van der Ree, B., Voogt, M., Eichhammer, W., Ordoñez, J., Reuter, M., Schlomann, B., Lloret Gallego, P. and Villafafila Robles, R., 2016, Energy efficiency for low-income households, European Parliament.
1)에너지자립률은 에너지의 소비량 대비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한 자체 생산량을 의미한다.
2) 일반적인 현실화율을 고려하면 공시가격이 1억 5천만원인 주택의 시세는 약 2억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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