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8-01   577

[편집인의 글] 에너지복지와 불평등에 대하여

이주하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기후위기 시대에 폭우에 이은 폭염이 시작되면서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은 노벨 화학상 내지는 평화상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에어컨도 발명하지 못한 에디슨이 무슨 발명왕인가란 인터넷 유머/드립/밈이 생각났다. 네티즌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에어컨 발명가는 미국인 윌리스 캐리어로 1902년 25세 나이에 더위가아닌 인쇄소 제습 때문에 처음 에어컨을 만들었다고 한다(이후 캐리어 에어컨 회사도 설립). 캐리어가 노벨상을 타지 못한 이유로는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무더위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인터넷 유머도이어졌지만,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기본권 보장에 있어서도 ‘우등생’이다.

주지하듯이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균등하지 않다. (기획글에서도 지적되었듯이) 폭염주의보가 발생할 때 마다 반복되는 뉴스 장면은 에어컨이 없이 선풍기나 부채에의지하거나, 간혹 에어컨이 있더라도 전기세 걱정에 사용하지 못하는 쪽방촌 주민들의 힘겨운 현실이다. 최근 들어 대형마트 주차장의 열기를 못 견디어 금방 에어컨을 찾게 되는데, 폭염에도 불구하고 원가절감 차원에서 에어컨이 제대로 가동되진 않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약 10시간 동안 17km(전날은 26km) 카트 정리를하다가 쓰러진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숙연해지게 된다. 폭염을 대처하기 위해 (특히 개도국과 빈곤층에게 필요한) 에어컨 보급률 증가는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승으로 지구 온난화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은 기후위기문제 해결의 딜레마이자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국가 간 및 국가 내 불평등 문제를 상기시켜 준다.

이와 같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다각도에서 고찰한 기획원고 1(조천호 前국립기상과학원장)은 명징한 수치들로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세대는 자기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로 인한 피해를 더 심각하게 겪게 되는 ‘세대별 불평등’에 놓여 있는데, 일례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으려면, 미래세대(1997~2012년생)는 기성세대(1946~1964년생)가 배출한 양의 1/6 정도만을 배출해야 한다. 전 세계 기후 피해의 약 75%는 빈곤국에서 발생하지만, 온실가스의 약 80%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이 배출하는‘지역별 불평등’도 문제이다. 소득 불평등이 탄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계층별 불평등’ 역시 심각한데, 최상위 소득층 1%의 탄소 배출량은 하위층 50%보다 75배 이상 많으며, 상위 10% 소득층이 유럽인의 평균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 나머지 90%가 전혀 줄이지 않아도 전 세계 배출량의 1/3을 줄일 수 있다.

기획원고 2(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는 전기·가스요금 폭등의 구조적인 원인에는 현 정부나 요금인상론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와 민자발전사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2022년 초와 비교해 가정용 전기요금은 37%, 가스요금은 46% 폭등하였는데,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뿐 아니라, 잘못된 직수입 제도와 대기업 독과점자본의 수익 극대화 전략에 기인하는 것이다. SK, GS, 포스코 등 3대 민자발전사의 2022년 영업이익 합계는 약 2조 3천억 원으로 2020년의 약 6천억 원 대비 4배 정도로 증가하였는데, 전기·가스요금의 무차별적 인상이 아니라, 이들 민자발전사의 초과이윤을 통제하고, 직수입 제도 폐지와 민자발전사 재공영화를 적극 고려해야한다.

기획원고 3(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에너지 공급의 비용을 낮추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에너지복지 재구성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수송용 유류세 인하의 ‘역진성’ 문제처럼 일괄적인 전기요금인상 동결은 결국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현

재 요금 인하와 바우처 중심 에너지복지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였기 때문에, 에너지 공급 지원정책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에너지 기본권 논의를 확대하여 에너지 효율 향상과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방안이 시급한 것이다.

기획원고 4(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는 주거취약계층이 쪽방, 고시원과 같은 비적정 거처나 에너지효율이 낮은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과 주택개량 지원의 대폭 확대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사회주택을 중심으로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을 시행한 유럽 국가들과 달리 한국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개량을 위한 지원에 인색하며, 노후주택 개량은 등한시한 채 에너지바우처만 확대하고 있다. 올해 초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하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사용료 지원 대신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라고 요구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들은 에너지빈곤의 원인으로 높은 에너지 비용, 낮은 가계소득, 취약한 에너지 효율이라는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빈곤을 해결하고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정책, 복지정책, 주거정책 간의 제도적 연결성 속에서 총체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선진국은 에너지빈곤에 대해 명시적 초점을 두고 있는 자유주의 복지국가보다 에너지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데, 이는 바로 에너지 비용을 보장하는 관대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회주택 공급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켰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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