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9-01   310

[복지톡] ‘다시 입기’로 만드는 새 문화

정주연 | 다시입다연구소 대표

인터뷰 및 정리 | 김지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입을 옷이 없어!” 한때 옷장을 열며 자주 했던 불평이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입을 옷’이 없는 게 아니라 ‘오늘 입고 싶은 새 옷’이 없다는 걸.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불평하며 문을 닫을 때 넘치는 옷에 옷장이 한 번에 닫히질 않았으니까. 각종 쇼핑 플랫폼들이 휘황찬란하게 세일 종료 임박 광고를 할 때 괜히 초조함을 느끼기도 했고, 새 옷을 싸게 살 때 느꼈던 의아함은 즐거움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빠르게 만들어지고 그보다 더 빠르게 버려지는 ‘새 옷’을 산다는 건 나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생각보다도 더 큰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일이었다. 여기 그 연결고리를 쉽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착용한 물건으로 자신의 역사를 기억할 쉽고 재밌는 방법을 제안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다시 입기’라는 새로운 문화를 이어가는 다시입다연구소의 정주연 대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개인의 문제라고 느꼈던 일들이 단순히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개인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나를 위함이 사회를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나와 사회 모두를 위한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고 싶은 정주연입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패션기업이 올해의 유행을 선언하면 소비자들이 좇아가는 거죠. 그런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런 소비문화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곳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일단 문제점을 인식한 뒤, 실천에 가치를 둡니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잖아요. 멀쩡한 옷이 있다면 교환을 하거나 수선을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순환시키고 재사용을 이끌어내려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오래 입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옷을 단순히 물건으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워요. 옷과 내가 함께한 순간과 역사를 기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서 수선한다면 거기에서 오는 힐링,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옷과 나의 관계는 더욱 특별해지고 오래 입으려고 마음먹기 어렵지 않죠. 옷을 나의 역사가 투영된 물건으로 다시 만나게 하는 문화를 만드는 곳입니다.

대표님이 처음 패스트패션 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패스트패션이라는 세부적인 주제에 꽂혔던 건 아니에요. 소비문화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이었죠. 소비해야만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끝나지 않겠다고 느꼈던 때가 있어요.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 속해 같이 굴러가듯 움직인다면 불행할 것 같았고요. 소비와 돈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비하는 행위가 환경파괴를 비롯해서 우리를 파괴하는 원리로 돌아가는 걸 보고 소비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인간은 왜 소비를 해야 하고 더 좋은 물건을 가지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공부하던 중 소비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다음으로 인간 소비의 중심을 차지하는 게 뭘지 고민했어요. 외신을 보던 중 청년들이 ‘소비를 부끄러워하라’라고 적힌 슬로건을 들고 환경운동을 하는 사진을 보았어요.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패스트패션 문제 해결에 뛰어들게 되었네요.

최근 국회에서 ‘패션기업 의류재고 폐기금지 법률’제정을 위해 토론회뿐만 아니라 의류교환 행사랑 패션쇼를 하셨어요.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해요!

패스트패션 이슈와 관련해 열성적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해외 단체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에서 ‘소비=멸망’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뛰어들었다 끌려나가는 모습을요. 우리는 패션쇼에 난입하진 않지만 패션쇼를 열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은 천 포스터를 들고 런웨이를 한 거죠.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붕괴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어요. 의류 산업, 특히 패스트패션이 환경, 사람, 노동 등 사회의 여러 영역에 미치는 악영향이 방대한 것 같아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크게 환경문제와 사회문제로 나눠서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환경문제부터 살펴보자면 패션산업은 전세계 탄소배출산업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산업군이 있는데 그중 고작 한 가지 산업이 10%를 차지하는 게 참 기이하죠. 의류산업은 석유화학산업 다음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이에요. 전세계 폐수의 20%는 패션산업이 만들어내고 있고요. 면이나 합성섬유로 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화학약품과 염료들은 환경뿐만 아니라 만들고 입는 사람들의 몸에도 해롭습니다. 요즘은 합성섬유율이 높아지고 있어서 혼방 소재의 옷이 많은데 합성섬유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 중에 미세플라스틱이 퍼져나가요. 그걸 다시 인간이 흡입하기도 합니다. 빨래할 때마다 흘려보내진 미세플라스틱은 전부 바다로 가요. 이렇게 의류산업과 연결된 환경문제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

폐기문제도 심각해요. 매해 1000억벌 이상이 만들어지는데 거기서 73%가 소각되거나 매립되어 폐기되고 있어요. 옷을 몇 번만 입고 버려서 가능한 거죠. 그 중에는 유행이 지나거나 싫증나서 버리는 경우도 많죠. 매초마다 2.6톤 트럭을 가득 채울만큼의 옷들이 버려지고 있어요. 너무 심각한 문제죠. 이건 사회적인 문제랑도 연결되어있어요. 옷이 많이 버려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버려지는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인데요.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이 가능한 이유는 기업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에 있는 인건비가 싼 공장을 찾아서 협상을 합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아동노동 문제도 심각해요. 전세계 거의 모든 아동노동은 패션산업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을 만큼이요. 목화를 재배하는 일부터 옷을 물들이는 일까지 아이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성평등 문제도 심각합니다. 의류노동자의 80%가 여성이에요. 학교도 못 가고 밤낮으로 옷을 만드는 여성들이 많아요. 그들의 낮은 인건비와 과도한 노동으로 얻게 되는 이득은 모두 기업이 취하고, 우리는 가성비 좋은 옷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싸면 쌀수록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고 만든 옷은 아닌지 의심해야 해요.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붕괴사건은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동 환경이 빨리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이런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비영리단체가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요. 아직 남은 문제가 많죠.

리사이클과 업사이클도 요즘 많은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재활용(recycle)과 새활용(upcycle)과 재사용(reuse)의 차이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재사용이 재활용과 새활용보다 더 나은 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재활용은 폐페트병으로 옷을 만들 듯 버려진 제품을 분해하거나 가공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활용은 옷으로 가방을 만든다거나 프라이탁처럼 방수포로 가방을 만드는 것처럼 기존 재료를 보강하거나 가공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에요. 재사용은 간단히 말하자면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버려진 물건을 정제하거나 가공하는 게 아니라 버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죠. 재사용은 재활용이나 새활용처럼 용도를 변형시키지도 않아요. 그래야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도 줄일 수 있거든요. 옷이든 뭐든 원형을 고수하면서 순환되고 사용하는 게 재사용입니다. 다시입다연구소에서는 옷에 얼룩이 생기면 수를 놓아 가린다거나, 찢어지면 뜨개질을 해서 모양을 만드는 재사용을 권장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을 ‘지속가능한 의생활’이란 무엇일까요? 패스트패션 소비에 영향을 받을만한 요소가 일상에 많은 것 같아요. 소비하기 전에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점검해보면 좋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옷을 사지 않는 거예요. 안 사는 게 어렵다면 살 때 매장에 가서 직접 입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 소재나 디자인 면에서 몇 번이나 이 옷을 입을 수 있을지 질문해보는 것도 좋아요. 유행에 민감한 옷은 자주, 오래 입기 쉽지 않으니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을 사거나 견고한 소재로 만들어진 옷을 사는 게 좋아요. 합성섬유율이 높으면 옷이 쉽게 늘어져서 그렇진 않은지 라벨도 잘 확인하셔야 해요. 꼭 새 옷이 아니더라도 좋은 옷들이 많고 중고거래 플랫폼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중고의류를 사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나 한복처럼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들은 사지 않고 대여하는 게 나아요. 마지막으로 빨래를 자주 하지 않는 것도 지속가능한 의생활을 위한 하나의 팁이 될 수 있어요. 빨래할 때마다 옷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도 줄일 수 있고 옷도 더 튼튼하게 오래 입을 수 있어요. 옷에 이물질이 묻었다면 그곳만 빨면 됩니다.

현재 산업구조에서 어떤 규제가 필요하고,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시급한 일이 되게 많다고 느껴요. 현재 저희 연구소에서 힘쓰고 있는 활동인 ‘패션기업 의류재고 폐기금지 법률’도 필요한 정책 중 하나입니다. 많은 패션 기업에서 재고를 팔지 못한 옷들을 다 소각시키는데 이건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프랑스는 2022년부터 재고 물품 소각이 금지됐어요. 스페인도 2024년부터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이런 대량 소각 문제의 원인은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생산량이죠. 적정량의 옷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런 노력을 하는 기업에 혜택을 준다거나 폐기 처분량이나 폐기 이유 등을 공개하고 폐기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요. 지금은 너무 암암리에 버리거든요. 이런 문제를 양성화하는 작업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브랜드 매장마다 수선실을 두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U(유럽연합)는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 관세를 더 부과할 예정이라고 해요. 2026년부터 이런 내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할 예정이고 심지어 시행 시기를 앞당긴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어요. 아무리 고급스럽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라도 관세를 더 매겨서 더 비싸게 판매가 되는 거죠. 관세가 부담된다면 기준에 탄소배출량을 맞춰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지금처럼 환경을 의식하지 않고 제품을 만드는 산업은 더 이상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선언인 셈이죠. 기준에 저촉되는 제품이 EU국가로 수출이 어려워지면 우리나라도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품목이 생기겠죠. 대비책 없이 그때 가서 타격을 입게 되면 그 여파로 일자리도 많이 축소될 거예요. 우리나라가 먼저 선두에 나서서 환경을 위하는 디자인, 소재, 유통, 폐기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을 서서히 해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활동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을 소개해주세요.

옷 교환행사에서 인상적이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행사를 하다보면 옷을 단순히 물건으로만 보지 않고 나의 역사의 한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을 간혹 만나게 돼요. 그분들은 입양을 보내는 느낌이라고 하면서 옷을 내놓으시죠. 가져가는 사람의 얼굴을 봐야 안심이 된다고 하시면서 누가 본인 옷을 가져가시는지 지켜보며 기다리세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제 소중한 오래된 옷들과 추억도 기억이 나곤 해요. 이런 교환행사에 나오는 옷들을 보면 요즘 헌 옷은 헌 옷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격표까지 붙어 있는 옷들도 많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옷들을 보면서 중고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이 깨지는 거죠. ‘새 옷’보다 ‘새로운 옷’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고 더 이상 새 옷을 안 사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볼 때 보람 있어요. 특히 아이들이랑 같이 했던 행사도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1:1 맞교환 방식으로 진행되는 행사이다 보니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교환이라는 대안적인 방법으로 의류를 소비할 수 있고, 나의 필요성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며 돈이 아닌 다른 것도 재화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방식에 놀라워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내가 옷을 더 깨끗하게 입어서 다음에 내놓으면 가지고 싶은 옷을 가질 수 있겠다.”라고 말하더군요. 순간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지동향 구독자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환경은 우리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고, 우리 개개인은 사회와 무관하지 않아요. 의생활 하나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바로 인간과 비인간이 조화롭게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지속가능한 의생활을 하는 일이 당연하겠죠. 옷을 입는 작은 행위만으로도 나와 내가 원하는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생활을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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