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9-01   718

[동향2] 청년이 제안하는 정신건강 정책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간호학과 교수

2021년 9월,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연구용역으로 전국 만 20~39세 청년 남녀 1,018명에게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우울증상이나 스트레스, 자살시도와 자살생각 등에 관한 질문과 더불어 자살예방 정책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묻는 주관식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문조사에 응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기타 의견’을 적는 란은 비워두게 마련이다. 당시 조사결과를 받아보고 놀랐던 것은 개인적 의견을 물었던 주관식 질문에 빼곡하게 적은 응답들이었다. 독립변수로써의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종속변수로써의 자살생각, 자살시도에 관한 연관성을 파고들어 분석하고, 더 나아가 성별, 연령군별 영향의 차이를 규명하는 분석 디자인을 고민하던 연구원들은 통계분석의 열의를 금새 잃어버렸다. 그 대신 ‘기타’ 항목을 세심히 읽고 하나하나 어떻게 실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고서나 학술논문, 기고문에서는 분석 결과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바빴다. 오늘 이 지면을 빌어 ‘조사 대상지’였던 청년들이 적어 내려간 정신건강 정책 제안을 다시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요하다고 인식한 자살예방 정책을 12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사회보장 정책 확대와 삶의 질 개선’, ‘심리상담, 정신 치료 확대’, ‘사회적 연대와 관심, 공동체 형성’, ‘사회 구조 개선 및 차별 완화’, ‘맞춤형 자살 대책 마련’, ‘자살예방 기관 확대 및 전문화’, ‘자살예방 교육과 인식 개선’, ‘안전한 가정과 사회’, ‘정신건강 증진과 인식 개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적극적 대응’, ‘교육제도 개선’, ‘언론 관련 개선’등이었다. 이중 가장 많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은 사회보장 정책 확대와 삶의 질 개선이었다. 경제적 지원, 사회 안전망 강화, 주거 안정과 같은 부동산 정책, 일자리 창출, 여가활동 지원, 근무시간 단축 등의 정책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현실적 어려움을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자살 예방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두 번째로 많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은 심리상담 및 정신 치료 확대이며 상담과 치료 접근성 강화, 상담과 치료 질 개선, 전문성 강화, 상담 및 치료의 확대이다. 심리치료가 ‘터부’시 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양질의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상담 치료는 공공성을 대폭 확대하여 청년들에게 비용 부담을 줄이고, SNS이나 어플을 통해서도 언제나 쉽게 접근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정신건강의학 진료 후에는 사보험 가입 제한 등의 문제도 존재하므로 치료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이 없도록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세 번째로 높게 나온 것은 사회적 연대와 관심, 공동체 형성 정책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며 좋은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청년들이 서로 힘든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지지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는데, 되짚어보면 청년에게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현재 없다는 의미이다. 자살예방, 필요한 사람이 찾도록 만들지 말고, 이웃과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방향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경쟁주의적인 사회를 개선할 수는 없을까요? 라고 쓰여진 청년의 설문응답지가 가슴을 후벼판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허탈감을 유발하는 각종 지원제도들의 개선,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 이런 것들이 왜 요원하게 느껴지는지 묻고 있었다. 구체적인 제안으로 들어가면, 맞춤형 자살예방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청년 자살 원인을 세밀히 분석하여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주기적으로 고위험군 스크리닝도 좋지만, 청년들이 정작 필요할 때 검사와 상담을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정도의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특히 1인 고립 가구와 같이 사회로부터 단절된 외로움을 느끼는 청년을 위한 모임 구성이나 건강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자살예방 기관의 확대 및 전문화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는데, 전문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의견과 함께,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전문시설과 인원을 충원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였다. 전화 상담을 통해서 유입되는 내담자들의 사후관리도 도입해야 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안전한 가정과 사회를 통해 자살의 촉발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데, 학교 폭력, 성폭력, 성희롱,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등 각종 폭력범죄 처벌 강화,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가정폭력, 학교폭력 예방책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악플과 같은 사이버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보호받는 사회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 외 수많은 의견들 속에서 언급하고 싶은 청년의 목소리는, 지방자체단체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며 정부 부처에서 자살 예방 부서를 신설하고 범정부차원에서 자살률 감소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또한 교육제도 개선을 통해 학령기 학생들의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야 하며, 인성교육과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를 수 있는 철학 교육내용 등이 의무 교과과정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우리는 청년건강에 대한 관심이 아직 부족하다. 관련하여 충분한 예산이나 촘촘한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2020년에 제정된「청년기본법」을 바탕으로, 기존의 정책을 개선하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등 청년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2021년 청년정책 시행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시행계획은 1. 참여와 주도, 2. 격차해소, 3. 지속가능성을 3대 원칙으로 일거리, 주거, 교육, 복지·문화, 참여·권리 5개 분야에서 20개 중점과제 및 308개 세부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 2022년 청년정책 시행계획 과제 수와 예산에 관한 내용을 확인해보면, 일자리 분야가 115개로 전체 37.3%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산은 주거관련 예산이 전체의 36.5%로 가장 크다. 건강이 포함된 복지·문화 분야는 전체 예산의 4.9%(11,623억 원)가 배정되었고 참여·권리 분야는 0.3%였다. 중앙부처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책은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 청년층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마인드링크), 2030 무료 건강검진(청년 신체건강 인프라 확대),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제도, 직업 트라우마 센터 운영, 병역 이행 중 사회복무요원 건강보험료 지원 총 6가지이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통해, 비어있는 정책과 손대지 않았거나 못했던 부분들을 함께 자각하고,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공동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WHO는 자살 수단의 접근성 제한, 언론의 책임감 있는 자살 관련 보도, 의료와 복지, 여러 사회시스템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몇해 동안 감소하지 않는, 오히려 증가하는 청년 자살률은 지금까지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청년에게 맞는 자살예방 정책, 건강복지 지원, 형평성 있는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이 지금 당장 연구되고 시작되어야 한다. 

설문조사의 단 한 줄 문항 속에 가득 적힌 청년들의 손끝에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살 예방정책, 단일 정책만으로는 청년자살 위험을 낮추기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모두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메시지를 청년 자살사망률이 말해 주고 있다. 모든 정책에, 모든 세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의 불행은 청년들만의, 남성들만의, 여성들만의 불행일 리가 없다. 한 세대의 절망은 모든 세대의 불행으로 상호 확산된다. ‘아무도 경청해주지 않는 삶’으로 표현되는 청년의 일상을 더 나은 하루로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를 다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

김문길, 청년정책의 패러다임과 중장기 정책 방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

2021년 청년자살예방을 위한 청년정신건강 실태조사,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중앙대학교, 2021

관계부처합동, 2021년 청년정책 시행계획, 2021.4

보건복지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1~’30) 

보건복지부, 제2차 정신건강종합대책(‘21~’25) 

전진아 외(2019). 수요자 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 접근성 강화 전략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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