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9-01   257

[편집인의 글] 시간 빈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어디에?

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시간은 성별, 연령별, 직업별, 계층별로 사용되는 양과 질이 큰 차이를 보인다. 직장에서 돌아와 가정에서도 쉴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 노는 시간 없이 학원을 전전하는 아동, N개의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이성 교제 시간을 포기한 청년, 여가시간을 고독의 시간으로 보내는 은퇴 노인 등 다양하다. 누구는 시간 사용을 온전히 스스로 정하는 자율적 주체로 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선택권을 빼앗긴 채 예속된 시간으로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유롭지만 공허한 시간을 보낸다. 시간 빈곤은 소득과 같이 물리적 절대량의 부족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결정권 및 삶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경험이다.

시간 사용의 불평등을 간명하게 볼 수 있는 단위로 그동안 국가를 주목해 왔다. 개인이 사용하는 시간은 역사, 문화, 노동, 성평등, 복지와 같은 사회 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다 보니, 오늘날 어느 국가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시간 사용은 큰 편차가 확인된다. 자주 인용되고 있는 사실 중 몇 가지만 언급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중남미를 제외하고 노동시간이 가장 길며(연 1,915시간 vs. 1,716시간 2021년), 수면시간은 최하위(주중 6시간 42분, 평균 7시간 51분 vs. 8시간 22분, 2016년)이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가장 긴 반면, 방과전후 신체활동 시간은 가장 짧고(주 당 60시간 이상 공부 학생 비중 23.2% vs. 13.3%, 2015년), 남성의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OECD 평균의 1/3 수준이다(45분 vs. 138분, 2014년).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점차 한 사회 내에서도 개인 간의 시간 결핍과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유연노동화, 일하면서도 자기계발에 몰두해야 하는 능력주의 문화, 촘촘하게 마련된 사회 배제의 구조는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하층에 있는 이들의 시간 결핍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무리 일해도 쉴 시간이 생기지 않고, 아무리 쥐어짜도 취미활동 시간을 챙길 수 없으며, 미래의 존엄한 삶을 꿈꾸게 하는데 필요한 일과 행동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이들이 주변 곳곳에 있다.

복지동향 본 호가 다루는 주제는 시간 빈곤이다. 노혜진 교수는 한국이 가족시간과 노동시간 둘 모두에서 보장수준이 낮은 유형에 속한 국가이며, 그중에서도 여성, 저학력, 장애인, 임시일용직, 이혼/사별, 소득빈곤층, 미취학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재량시간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사회정책이 시간 재분배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제언하였다. 김미숙 소장과 배화옥 교수는 한국 아동의 유달리 과도한 학습시간과 미디어 사용시간을 보이는 반면 부족한 수면시간과 친구와의 활동시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소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권고를 참고하는 개선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김진욱 교수는 청년의 시간결핍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들이 유급노동, 무급노동, 학습 등 다른 필수적 활동에 따른 시간결핍을 경험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이에 부모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 청년들에 대한 시간지원 정책으로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지원의 유효성을 주장하였다. 김상문 교수는 개인적 의지로 시간을 구조화하고 있는 은퇴 후 노인들의 시간 사용을 살펴보았다. 노인 셋 중 하나가 저녁에 혼밥을 하고, 여전히 유급노동에 머물며, 재량시간의 절반 이상은 방송시청이다. 젊을 때 짊어진 일과 육아라는 외적 규율에 따른 시간 사용 대신 개인유지와 재량의 시간이 증가하지만 유의미한 사회적 참여와 교제가 없을 때 노년기의 시간은 매일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야 하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기고자의 지적은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정형준 전문의는 일상의 건강과 사회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수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불면의 불평등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용 중에서 한국의 교대근무, 장기노동, 유연노동 그리고 이에 따른 운동 부족과 불규칙 식사가 잠들지 못하는 질병의 문제뿐 아니라 안전사고와 재해로 직결되는 사회문제라는 지적이 가슴에 와닿는다. 산업재해 초일류 한국이라는 오명의 배경에는 불면의 환경이 있고, 따라서 산업보건체계가 노동자의 적정한 수면을 보장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정치·사회·경제 온 영역에 위기와 붕괴 담론이 넘치는 지금, 복지동향은 가장 미시적인 또는 기초적인 ‘개인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보고자 하였다. 물리적으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이 시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시간을 모두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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