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동향은 해마다 이즈음이면 내년도 복지예산에 대한 분석 글을 싣곤 했다. 살펴보면, 복지예산의 방향과 내용이 만족스럽다는 글은 그간 거의 없었다. 아마도 보건과 복지 분야에 대한 공적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개혁적 성향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다 보니 복지동향의 입장에서는 차년도 복지예산의 짜임새가 마음에 들기보다는 늘 적절치 않게 보이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최근 전체 예산 규모의 증가에 비추어볼 때, 늘 보건복지예산은 증가율이 큰 분야였다. 일견 예산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정부가 해당 분야를 정책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긍정적 신호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간 누적된 우리나라의 복지 취약성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유발해 온 만큼 시급한 사회정책의 확장이 필요했다. 뒤늦게 수습하자니 예산이 증가한다고 해도 늘 불충분한 수준이었고, 혼란스러우면서 부적절한 정책의 방향에 대한 비판도 비등했다.
이번에는 어떨까? 2024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2023년 대비 12.2% 증가하였고,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은 13.7%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예산의 증가율이 2.8%가량이라는 점에 비추어본다면 보건복지예산은 올해도 다른 분야보다는 더 많이 증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 정부는 무책임한 감세에 연구개발예산 일괄 감액 논란 유발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예산내용을 제시하기 어렵다. “새고 있는 낭비 예산을 잡겠다”는 그야말로 포퓰리즘(?) 구호에 기대어 복지와 민생, 연구개발 등 분야는 삭감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보건복지부는 “약자복지는 더 두텁고 촘촘하게, 미래준비는 더 탄탄하고 꼼꼼하게” 라는 슬로건과 함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은 ①약자복지 강화, ②저출산 극복, ③지역완결적 필수의료 확립, ④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네 가지 핵심 분야에 역점을 두고 편성하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적 위기와 사회정책 시급성에 비추어 네 번째의 보건 산업 글로벌 경쟁력이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핵심 분야가 되어야 한다고 설정한 것이 씁쓸하다.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이에 초점을 두어 편성했는지, 아니면 예산을 짜놓고 나서 개중 이야기할만한 것들을 찾다 보니 (다른 좋은 이야기를 할 것이 없어) 그나마 부각된 내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국민연금과 관련된 논란, 대규모 감세, 세수부족 현실화에 따른 여러 민생예산의 감축,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 등의 과정이 있었다. 보수성향의 정부가 국민의 복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다양한 측면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교과서에 사례로 실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복지동향에서 살펴본 2024년 보건복지 예산 역시 불만족스럽다. 불만족스럽다는 온건한 표현으로는 실망감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몇몇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본 보건복지 예산의 내용에서 각 영역의 필자 모두가 정부의 복지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그토록 강조하며 보강하겠다는 소위 ‘약자복지’ 슬로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약자복지의 대표적 부분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분야에서는 기준 중위소득 인상 및 선정기준 상향에 따른 생계급여 예산 증가, 선정 기준 상향 조정, 생계급여 지원기준이 인상, 의료급여에서 중증장애인 가구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미적용하고 부양의무자 재산 기준을 완화, 주거급여의 선정기준 상향과 최대급여액 인상 등의 개선이 나타났다.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료급여 예산이 감소했고 부양의무자 기준은 ‘완전’ 폐지가 아닌 ‘일부’ 미적용으로 제한하여 의료 안전망 강화는 요원해 보인다. 또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예외 규정 기준이 여전히 남아 있고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던 자활급여의 낮은 단가 문제도 여전하다.
보육이나 아동 분야 예산에서는 대통령의 공약인 부모급여 신설로 ‘현금을 제공’하는 복지 부분의 예산 비중이 높아졌다. 현금복지를 비난하며 약자복지, 서비스복지라는 정부의 복지에 대한 기본 방향을 선언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보육과 돌봄의 사회화보다는 오히려 재가족화 방향의 위험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보육교사 대 아동 비율과 같이 정부가 정권 초에 강조했던 사안에 대해서도 아무런 계획이나 예산의 뒷받침을 찾아볼 수 없다.
노인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전체 복지 분야에서 차지하는 노인 분야의 예산 비중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기초연금 관련 예산이 노인복지예산의 78.8%를 차지하여 전체 노인복지예산에 대한 기초연금의 지배력이 압도적이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의 예산이 비교적 크게 증가하였지만, 공공요양시설 등 공공인프라에 대한 예산에서는 소극적 자세가 눈에 띈다. 노인복지예산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나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 담긴 고령사회 대응 전략과 조응하지 않는다고 평가되고 있다. 최근 사회서비스는 노인을 중심으로 화두가 되는 부분이 많은데 사회서비스 고도화라는 정부의 최근 정책선언은 노인에 대한 복지예산 어디에서도 그 실체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복지예산의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장애인활동지원의 경우 이전까지의 증가율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많은 장애인복지사업의 예산이 소비자물가변동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증액 혹은 절대 액수의 삭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정부가 강조하였던 대표적인 정책인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경우 지자체 중에서 8곳만을 지정하여 모의 적용하는 것으로 전국의 전체 해당자 규모가 210명에 불과한 수준이라 정책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분야에서는 논란을 빚고 있는 중앙사회서비스원 설립 운영에 관한 예산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회서비스원 관련 내용을 예산에서 찾아볼 수 없다.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현장 사회서비스원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 채, 중앙사회서비스원에 대해서만 책임지려는 예산이라면 애당초 사회서비스원의 존재 의미가 없다. 지역사회통합돌봄과 관련된 지원예산도 이전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노인 의료와 돌봄의 통합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업내용을 제시했으나 결국 이전 정부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예산으로 시범사업만 반복할 뿐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일반회계 예산이 지속적으로 누락되고, 공공의료예산이 삭감되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코로나19로부터 정부는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바이오·디지털 헬스 부분에 대한 연구 사업비는 신설 및 증액하고 있다. 보건의료산업화에 집중하면서 공공의료 폐기 및 건강보험 방조라는 점에서 의료민영화예산안이라 평가된다.
사회서비스와 보건의료 분야의 예산은 전반적인 취약성 속에서 산업투자와 같은 부분만이 강조되고 있어, 수요자인 국민보다는 업자를 위한 예산 편성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정부가 혁파하겠다고 수시로 강조하는 이권 카르텔의 정점이 이번 예산안에서 보이는 듯하다.
이번 복지동향의 예산분석 원고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음이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각 분야의 보건복지예산 분석내용을 통해 현재의 쟁점 사항과 정책 방향에서의 우려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산안을 통해 읽히는 정부의 약자복지와 서비스복지는 보건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또 다른 방향이나 노선이라기보다는, 보건복지 예산투자를 줄이고 사회적 위험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에 맡기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든다. 약자복지가 약한 복지와 동의어가 되고, 서비스복지가 사회서비스의 시장영리화로 둔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의 보건복지 예산안에 대해 시민사회가 환영하고 기대하는 때가 언젠가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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