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1-01   458

[편집인의 글] 저출생의 진짜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얼마 전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의 출생률을 접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의 반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한겨레, 2023. 8. 25).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위기’가 되었지만 제3자가 접했을 때 보이는 솔직한 반응은 그 위기의 심각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들이 다시 상기되었다. 이럴 때마다 출생률 제고야말로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보인다.

하지만 출생률이 줄어든다고 대한민국이 사라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줄어들 뿐이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대한민국을 채워갈 수 있다. 어쩌면 저출생의 위기를 자꾸 국가 소멸의 위기인 양 말하는 것은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민족주의’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치 이 땅의 여성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출산과 양육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듯한 논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구 감소가 진짜 문제일까?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인구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많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도, 얼마나 많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한편으로는 인구 감소가 필요하기도 하다. 문제는 결과적인 인구 감소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 환경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의 행복을 자신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환경은 급격한 경제적 성공을 거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장 근로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노혜진, 2023)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논의되고 있다. 생산의 효율성에 젖은 나라에서 여전히 돌봄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주변 문제다. 경쟁력이라는 최고 가치 아래 아이들의 경쟁 비용은 부모의 물적자원과 아이들의 정신적 자원을 끝없이 갉아먹는다. 이런 사회에 또 다른 생명을 밀어 넣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저출생은 인구 감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기 좋지 않은 환경의 문제라는 생각이 우리나라 정책에 적용되기까지는 저출생 정책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10년이 걸렸다. 출생률 제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질 제고로의 방향 전환을 기조로 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근거법이 제정된 지 10년 만에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출생률 제고에 대한 퇴행적 집착은 끈질기게 다시 튀어나온다. 지자체마다 출산하면 돈 준다는 정책이 줄을 잇다가 급기야 얼마 전 인천시는 “2024년부터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겠다.”라는 ‘정책’을 발표했다(머니투데이, 2023.12.19.).

김아래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퇴행이 윤석열 정부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수정 방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출생 대응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최영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부모와 아동을 위한 돌봄권과 돌봄의 사회화의 통합적인 접근을 제안하고 있다.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육아휴직 제도의 문제를 진단하며 부모의 돌봄 권리와 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시간 주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유진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은 여전히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묶여있는 저출생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며 다양하고 친밀한 결속을 인정하는 새로운 가족정책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들을 통해 저출생 정책의 퇴행이 아닌 진전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 참고 문헌 |

노혜진 (2023)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 보건사회연구. 43(2). pp. 192-214

머니투데이 (2023.12.19.) ‘애 낳으면 1억’ 인천시 파격에…비웃음 샀던 허경영 공약 재조명

한겨레. (2023. 8. 25.)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미국 교수가 머리 부여잡은 ‘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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