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2-01   436

[복지칼럼] 취약계층을 향한 위험한 호명 ‘약자’

김윤민 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 정부는 ‘약자복지’ 기조 하에 두터운 사회안전망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약자의 삶에 복지의 힘을!” 이라는 제목의 정부 홍보 영상에서는 ‘기초생활 보장수준 대폭 강화’, ‘생계급여 역대 최고 인상’등을 제시하며 제대로 된 ‘약자복지’가 시행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2024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2023년 기초생활보장 본예산보다 8.8% 증가하였고, 2024년 생계급여 예산은 전년 추경 대비 약 25.4% 상향 조정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단편적으로 접근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이 관련 법에서 명시하는 최저생활 보장(제1조, 제2조)과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 유지(제4조)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를 일부 보완할 것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정부 보고서와 홍보 영상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약자’라는 표현이 복지정책의 지원을 받는 이들을 ‘공식적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로 규정하는 상황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는 ‘약자’라는 언어가 형성할 지배담론이 수급의 권리성을 훼손하고 낙인을 심화시켜 ‘우리’와 다른 ‘타자’로 취약계층을 구별 지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기인한다. 

언어의 강력한 영향력

특정 대상 또는 현상을 정의하는 방식과 내용은 사회·정치적이며 문화·규범적인 맥락에 기반하고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언어’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현상과 문제의 ‘사실’ 자체보다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고 정치적이며 권력적이고 사회적 힘을 가진 담론으로 진화하여 특정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강력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Foucault, Burchell, Gordon, & Miller, 1991). 특히 특정 사회 현상에 명칭을 부여하고 유형화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들은 근거 없는 의심을 담론으로 고착시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Edelman, 1998). 일례로 1986년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수급자를 복지에 중독되었다고 표현하고 의존의 거미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선언하였다(Rank, 1994). 이러한 언어는 수급자가 중산층과 근로 계층의 안락과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동시에 의존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독립성과 자율성이 결여된 이들이라는 인식을 형성하였다(Rogers-Dillon, 1995; Stuber & Schlesinger, 2006). 이와 같이 특정 복지의 언어는 수급자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거나 복지정책 축소라는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약자’라는 언어는 어떠한가? 정부의 기대와 같이 약자의 삶에 복지의 ‘힘’을 보태는 언어로 기능할 것인가? 오히려 약자라는 낙인(stigma)을 부여해 삶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언어로 기능할 것인가? 

수급의 권리성 훼손

구(舊)법인 생활보호법이 자선, 시혜와 같은 소극적 개념이었던 것과는 달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의 권리성을 인정하며 복지 정책의 발달 과정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추동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수급의 권리성은 노동을 전제한 급여 제공, 대상자 선정 기준의 엄격성 등으로 인해 기존 생활보호법에서 사용되었던 ‘보호대상자’, ‘보호기관’의 용어를 ‘수급권자’, ‘보장기관’으로 변경한 수준에 그쳤다는 한계 또한 갖는다.

이에 더해 언론은 수급자의 ‘타자성’을 강조하며 사회구성원을 ‘수급자’와 ‘비수급자’로 양분하고 탈수급을 통해 시장 질서에 편입하는 삶을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표상으로 재현한다. 언론에서 우리와 다른 이방인이자 타자로 수급자를 재현함에 따라 일부 수급자의 부정성은 수급자 집단 전체의 특성으로 확대된다(김윤민, 2016). 그 결과 수급자는 낙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수급받는 상황에 대해 창피함과 수치심을 느끼거나 사회에서 낮게 평가받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수급 자격 적정성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경험하기도 한다(김윤민, 2023). 정부가 ‘약자’라는 언어로 취약계층을 규정하지 않아도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약자’이고 ‘타자’이며 ‘이방인’인 것이다. 

약자라는 호명이 형성한 질문: 누가 약자인가

우리는 IMF, 기후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경험하며 사회적 위기의 다양성을 목도했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구성원 어느 누구도 위기에서 완벽하게 안전할 수 없으며, 위기의 원인이 개인의 결함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복지정책 논의는 보편적 복지, 기본소득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다름을 인정하고 배제가 아닌 포용의 가치를 고민하며 사회안전망 강화로 향하는 경로에 진입하였다. 현 정부 또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논한다. 문제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이르는 ‘과정’의 위험성에 있다. ‘약자’의 등장은 누가 약자인지 질문하게 하고 사회안전망 강화를 ‘약자만을 위한 정책’으로 축소시킬 것이다. 

강자와 약자로 양분된 사회는 통합이 아닌 분리, 포용이 아닌 배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Bauman, 2005). 지금은 견고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과정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사회안전망 강화가 약자인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협한 접근을 경계하고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공론화할 수 있는 시도가 요구된다. 


| 참고 문헌 |

김윤민. 2016.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대한 담론 분석.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윤민. 2023.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낙인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 비판사회정책, 79, 155-189 

Bauman, Z. 2005. 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 Milton Keynes: Open University Press 

Edelman, M. 1998. Language, myths and rhetoric. Society 35(2), 131-139 

Foucault, M., Burchell, G., Gordon, C., & Miller, P. 1991.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With two lectures by and an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Rank, M. R. 1994. Living on the edge: The realities of welfare in Americ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Rogers-Dillon, R. 1995. The dynamics of welfare stigma. Qualitative Sociology, 18(4), 439-456

Stuber, J., & Schlesinger, M. 2006. Sources of stigma for means-tested government programs. Social Sciences & Medicine, 63(4), 93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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