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2-18   2785

[판결비평] 김용판 1심 재판① 진실이 무슨 다수결 투표로 결정되는 것인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를 축소,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지난 2월 6일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검찰의 유력한 증거였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이 다른 17명의 경찰들의 진술과 배치되어 권은희 과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 서울중앙지법의 무죄 판결에 대한 비평문 두 편을 소개합니다.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김용판 1심 재판 ①] 

진실이 무슨 다수결 투표로 결정되는 것인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2. 6.선고 2013고합576 판결(공직선거법위반 등) 

재판장 : 이범균, 배석판사 : 이보형, 오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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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철 / 변호사 

 

 

 

1. 2012년 12월 11일 오후 6시 40분 경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벌어진 국정원 여직원(김하영)의 대선개입 의혹 사태는 지금도 온 나라를 흔들고 있는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사태의 거대한 시발이었다. 관할인 서울 수서경찰서의 권은희 수사과장은 그 다음날인 12일 김하영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에 신청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울지방경찰청의 청장으로 재직하던 김용판이 수사에 개입하여 사안의 진상을 은폐하고자 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에 의하면 김용판은 수사팀을 강압하여 김하영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못하게 하고, 김하영이 제출한 노트북에서 나온 중요한 증거자료를 보안을 이유로 수사팀에게 알려주지 않고 은폐하였고, 후보자간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12월 16일 밤 11시에 국정원 여직원이 선거개입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는 거짓수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하게 하는 등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의 진상을 은폐하고 거짓수사결과를 발표하여 특정후보(박근혜)에게 유리하게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김용판은 이러한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익히 알려진바와 같이 재판부는 김용판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2. 무죄를 선고한 이 판결문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면, 권은희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법정에 출석한 18명의 경찰관 가운데 오로지 권은희만이 김용판의 선거개입과 직권남용을 증언하였다. 나머지 17명의 경찰관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17명의 진술을 받아들이면서 권은희의 진술은 이들 17명의 진술에 배치되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17명의 진술을 진실하다고 본 근거는 이들 진술이 ①매우 구체적이고, ②그 내용이 서로 일치하며, ③기록상 그 각 진술이 허위라고 의심할 자료가 없고, ④이들 17명이 허위의 진술을 할 만한 동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판결문 83쪽). 그런데 재판부가 든 위 4가지 이유 중에 ①②는 사실이나, ③은 거짓이다. 다음은 법정방청기자의 말이다.

 

“경찰은 한결같이 입을 맞추고 나왔다. 어떤 경찰은 메모까지 들고 법정 증언대에 섰다가 재판장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입 맞추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다. 한 경찰 간부가 통화한 시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증언을 하자 재판부가 “상세 답변이 나오는 게 오히려 상식에 안 맞는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시사주간지 시사인 335호, 2014년 2월 13일자).”

 

경찰이 허위의 진술을 할 동기가 없다는 ④의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다. 17명의 경찰관은 잠재적으로 김용판과 공범의 성격을 갖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당시 서울청의 수사부장(최현락), 수사과장(이병하)은 검찰로부터 피의자로 조사받았던 사람이었다. 공범이 죄를 자백하겠는가? 또한 법정에는 늘 경찰청 정보관이 나와 재판내용을 기록한다고 했다. 정권이 김용판 재판을 못마땅해 할 것임은 상식적으로 뻔한 일이다. 허위진술의 정황은 너무 역력했다. 반면 권은희야말로 허위의 진술을 할 이유가 없다. 권은희가 김용판의 직권남용을 통한 선거개입행태를 폭로한 것은 박근혜 정권 출범 후인 2013년 4월 19일이다. 승진 등 경찰 내에서 영달을 노렸다면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했다면 대선 전에 이를 폭로했을 것이다. 강남4서(서초서, 강남서, 수서서, 송파서) 가운데 강남서를 제외한 3서의 수사과장을 지낸 경찰 내 촉망받는 엘리트가 무엇 때문에 이런 거짓을, 그것도 선거가 끝난 이후 폭로한단 말인가?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17명의 진술이 ①매우 구체적이고, ②그 내용이 서로 일치한다는 시정도 오히려 17명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 보아야 할 사유다. 조직의 상급자의 죄의 유무를 가리는 사건에서 하급자들의 진술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말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그러한 의심을 표방하고도 판결문에서는 이 거짓 진술을 진실이라고 판단해버렸다. 무엇때문이었을까?

 

 

3. 형사소송법에 ‘자유심증주의’라는 것이 있다(형사소송법 제308조). 쉽게 말하면 어떤 증거에서 어떤 사실을 인정할지는 법관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건 근대 시민혁명의 소산이다. 그 이전에는 법정증거주의라고 하여 어떤 증거가 있으면 그 증거가 나타내는 바를 증거로 반드시 채택했어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백이다. 일단 자백이 있으면 그 자백한 바에 따라 유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잔학한 고문이 횡행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법정증거주의를 버리고 자유심증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법관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독립된 위치에서 모든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것이 진실을 찾는데 있어서 합당한 것이라는 역사적 경험과 반성적 성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심증주의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법관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용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증거들을 종합하여 찾아내는 통찰력, 그렇게 찾아낸 진실을 판결문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기는커녕 눈에 보이는 진실조차 외면하고 증인의 뻔한 거짓말을 받아들여 진실을 저 멀리 쫓아내어 버렸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이번 판결은 법원이 그간 뇌물사건이나 성폭력 사건에서 보여준 판결 태도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뇌물사건처럼 뇌물을 건네는 장면을 본 사람의 진술은 신빙성을 높게 평가한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의 진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재판으로 인하여 앞으로의 성폭력 사건이나 뇌물죄 사건에서 무죄가 빈발하여 범죄자가 면죄부를 받는 일이 횡행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개인적으로 길지 않은 변호사 활동 기간 중 접한 판결문 중 가장 엉망이고 형편없는 판결이 바로 이 판결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는 통찰력은 고사하고 법정에서 자신의 입으로 지적한 증인들의 뻔한 거짓말마저 진실이라고 강변하며 써 내려간 판결문 한 장으로 권은희는 나라를 흔든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민주공화국을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벼랑 끝으로 자유심증주의마저 딸려간 사실을 이범균 판사는 알고나 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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