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6월 2016-05-30   961

[특집] 고장 난 나라,  침몰하는 사회 

특집1_고장 난 나라, 빗나간 애국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고장 난 나라, 
침몰하는 사회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우리사회가) 예전에도 이렇게 엉망이었어요? 5년 전에만 알았어도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텐데….”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선 한 어머니의 고백이다.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이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와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인명을 고려하지 않은 증개축이 배경으로 작용한 해양사고에서 정부는 아무도 구하지 못해 사고를 참사로 만들었다. 생존한 세월호 승객들은 스스로 탈출한 이들이었다.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들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지만, 모든 국가 구조시스템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날 재난을 당한 승객들에게는 과학기술도 문명도, OECD에서 가장 중앙집권화 된 정부도, 연간 35조의 국민세금을 소비하는 군대와 경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참사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일이 언제든 자신과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소름끼치게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는 헌법이 약속하고 있는 국민의 안전과 존엄이 국가에 의해 어떻게 취급받아왔는지 보여주었다. 참사는 영리 추구를 다른 가치보다 앞세우는 부패한 사회체제가 어떻게 구성원의 삶을 파괴하는지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우리의 미래에 눈을 돌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고장 난 나라의 불행한 국민들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미래는 이미 빨간 등이 켜진 지 오래다. 각종 통계가 여실히 붕괴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특히 노인자살률은 2등과 2배 이상 차이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6%(2011)로 OECD평균(13.5%)의 3배에 해당한다. 현재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2100년 우리나라 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할 거라고 한다. 10대 재벌그룹의 매출액은 2012년 국내총생산(GDP)의 84%에 이르지만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91개 기업의 고용인원은 전체 취업인구의 2.5%에 불과하다. 2014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통계청의 보수적인 계산으로도 전체 취업인구의 1/3인 600만에 이르고, 그들은 정규직 대비 평균 55%의 임금만을 받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가와 정치는 고장 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국가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국가, 가져가기만 하고 주는 것은 없는 정부, 해를 끼치지 않으면 다행인 공권력이다. ‘멸사봉공’을 늘 강조하던 국가는 사실상 대부분 소수 특권층의 사적이익을 위해 불공정하게 작동한다. 모든 일에 ‘국가이익’, ‘국가경쟁력’, ‘국가안보’를 내세우지만 정작 이런 언어들은 국가의 실제 구성원인 시민들의 행복과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하기 위해 주로 동원된다. 

고장 난 나라의 공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공격에 가장 유능하다.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고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정부,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고 가난한 시민들을 매수하여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도록 조직하고 선동하는 공권력.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정부가 가장 효과적으로 해냈던 일 역시 성난 가족들의 행진을 봉쇄하고 그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따돌리는 일, 그리고 추모에 동참하는 학생들에게 리본패용을 금지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이었다. 

 

정치 부재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유착
‘정치 부재’는 고장 난 나라의 특징 중 하나다. 공동체의 절대 다수가 불행하고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면, 대의장치인 정치가 다수의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하지만 우리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이 없고 다수의 이해관계도 정책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진영화되고 소모적 이념대결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보수언론의 비난은 진실의 일면만을 담고 있다. 

진영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념과잉보다는 이념의 부재가 더 문제다. 국회는 오히려 낡은 냉전적 잣대에 의해 정책적 다양성과 상상력을 거세당하고 있다. 정치가 대결적으로 보이는 것은 정책 경쟁이나 이념적 다양성 때문이 아니라 주로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이념이나 정책으로 구분될 수 없는 허구적 지역대결구도 때문이다. 정당지지와 득표가 제대로 연계되지 않은 지역구 1위 당선 위주의 선거제도는 정치생태계의 다양성을 제약하고 유권자 투표의 상당수를 사표로 만들어 표의 등가성을 침해한다. 

고장 난 나라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선출되지 않은 관료권력, 경제권력, 지식기술권력의 유착이다. 우리 헌법은 3권 분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권력이 비대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고, 그 제왕적 대통령은 관료권력에 얹혀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사정기구(검찰과 경찰, 감사원, 금감원, 공정위 등)와 안보기구(국정원, 군)들은 정권의 시녀를 자처하면서 동시에 정권을 주무른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도 관료권력만큼은 변치 않고 강화되어 왔다. 유착의 주도세력이 군부독재에서 기업권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규제개혁 작업도 선출되지 않은 관료권력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비껴간다. 

게다가 정보화와 그로 인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는 시민에 의한 정부통제보다 시민에 대한 국가관료 기구의 통제를 더욱 확대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은 이미 미국에서는 폐기된 제도로, 국가기구가 외부의 위협을 빙자해 국민의 사생활을 무제한으로 엿보고 통제할 수 있는 국민사찰법이다. 미국 CIA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특정인의 미래행동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인 Recorded Future에 직접 투자했고 최근 상용화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가 이미 공안기구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국가기구 전 부문에 만연한 ‘전관예우’는 관료권력을 재생산하고 나라 전체를 유착공화국으로 만든다. 공론장은 과두제를 형성한 언론권력으로 인해 늘 기울어져 있고 지식사회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포획되어 독립성을 잃는다. 언론과 지식사회는 사회가 침몰해도 결코 경고를 발하거나 탈출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모든 권력의 대물림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로 고위관료, 법조인, 경제, 정치엘리트, 지식인과 언론인이 될 수 있는 계층과 지역이 고정되어 결과적으로 권력이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배타적 네트워크로 유지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참여와 연대로 재난자본주의 넘어서야
공적인 시스템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구성원들이 느낄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난제는 절망의 내재화다. 극단주의와 혐오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도록 이끈다. 극단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사회 전반에 ‘죄수의 딜레마’를 야기한다. 공동의 약속을 통한 공공성 실현에 대해 불신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직후 서울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는데, 안전한 객차에 머물라는 방송을 듣고도 승객들은 모두 객차 밖으로 나왔다. 이같은 ‘신뢰적자’는 장차 사회양극화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사회심리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에 세금이나 사회보장비를 내면 과연 공공성 혹은 안전한 삶으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직면한 자연적·사회적 재앙에 책임이 있는 소수특권층들이 원하고 반기는 상황이다. 권력자들은 임기응변을 통해 개혁을 회피하면서도 그 책임을 시민들에게 더 손쉽게 떠넘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재난자본주의는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피난민 정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탐욕의 질서를 더 공고화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의 진상과 책임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한 확실한 수단을 찾아 필요한 개혁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경우, 절망은 더욱 깊이 내재화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면서 안전하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공감하고 연대하고 감시하고 저항해야할 ‘의무’도 일깨웠다. 중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난자본주의를 넘어설 힘은 참사의 폐허 위에서 재난유토피아를 만들어온 시민의 참여와 연대에서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함께 침몰한다. 

 

“불평등은 단순히 자연력이나 추상적인 시장의 힘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다. 대부분 과학 기술과 시장의 힘,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힘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견인하는 정부 정책에서 비롯한 결과다. 정책을 바꾸면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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